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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프랑스 르몽드지, 尹 계엄선포에 5·18 집중조명

학살상처 간직한 광주 시민들
“다시 감옥에 갈 각오로 나서”
프랑스 파리=정상필 통신원

프랑스 대표 정론지 ‘르몽드’가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를 계기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르몽드는 지난달 24일자 국제면(7면)에 “한국에는 광주 대학살의 상처가 또렷하게 남아있다”라는 제목의 톱기사를 냈다. 기사는 5·18 국립묘지의 영안소 사진과 함께 전체 페이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일본 주재 특파원 필립 메스메르 기자는 지난 12월 중순께 광주를 직접 방문해 5·18 재단 관계자 등을 만나고 현장을 다니며 직접 취재한 내용을 기사화했다. 기사는 전일빌딩 내부의 탄흔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광주 시내 중심가에 있어 시민군이 점거했던 전일빌딩에는 군용헬기에서 발사된 총탄에 의해 갈라진 흰색 석고벽이 학살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반응을 담고 있다. 5·18의 당사자인 박강배 5·18재단 이사는 “80년 당시의 일로 다시 감옥에 돌아갈 걸 걱정했다” 며 “주변 사람들에게 군인이 올 테니 문을 닫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즉각 단체장을 소집하고 광주에 군대(계엄군)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50대의 다부진 체격을 가진 시장은 윤 대통령과 그의 ‘광기’를 날카로운 언변으로 지적했다”고 적었다. 기사는 왜 광주사람들이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이처럼 트라우마와도 같은 반응을 보였는지 설명하기 위해 1980년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다.

박정희 사망과 서울의 봄, 예술가들과 학생들의 저항 운동, ‘서울의 봄’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전두환 군부 그리고 광주 대학살.

메스메르 기자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장소인 5·18민주광장에서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광주시민들의 촛불이 타올랐다고 설명했다. 촛불 시민 중에는 5·18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 선두에 있었다며 그들의 증언을 소개했다.

1980년 학생 지도부에 있었던 송선태 전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끔찍했던 1980년 봄, 상무대 감옥에 3000명 이상 수감됐는데 30명이 들어가는 공간에 150명을 밀어 넣었다. 하루 16시간을 무릎 꿇은 자세로 있어야 했고, 움직이면 군인들이 때렸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입었고,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덧붙였다.

원순석 현 이사장은 “군부는 김대중이 광주시민들을 지원했고, 북한의 정보부에 의해 조종되었다는 식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며 “우리는 그들의 시나리오에 맞는 말을 할 때까지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특집 기사는 광주 출생인 노벨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을 소개하며 마무리됐다. “12살 때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 씨의 사진첩에서 훼손된 시신과 헌혈 행렬을 본 뒤 과거가 현재를 구원하고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적었다.

원 이사장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광주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도움이 됐고, 윤 씨의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동원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