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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한국와이퍼 사태' A to Z… 외국자본 먹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다

 

'기업이 없으면 노동자도 없다.' 기업 경영권 보장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이 명제를 '한국와이퍼 사태'에 적용하면 오류에 빠진다. 기업이 '청산과 해고 통보'라는 경영권 행사에 앞서 담보했어야 할 신의성실의원칙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한국와이퍼 사태'에는 여러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기업 청산을 계획하던 중 맺은 단체협약, 이 단체협약을 무시한 채 시행한 대량 해고, 외국 자본이 투자 혜택만 받고 사회적 책임엔 소홀한 점 등등. 노동자들이 해고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가동이 멈춘 기계 옆에서 숙식하며 농성을 벌이는 이유다.

최근 법원은 한국와이퍼의 해고 통보가 부당하다는 취지 판결을 냈다. 국회도 관련 법 개정 작업에 착수하며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언뜻 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한국와이퍼 사태'를 그 시초인 2018년부터 올해까지 발단 과정을 톺아보며 쟁점과 전망을 짚었다.

 

발단① 매각 대상에서 제외된 한국와이퍼... 기업 청산 절차 들어가며 대량 해고 통보

 

지난해 7월 일본 자동차 부품 기업 덴소의 국내 사업 총괄회사인 덴소코리아는 자동차 와이퍼 사업을 정리하겠다고 발표한다. 덴소코리아는 누적된 적자와 전기차 등 신산업 전환을 이유로 와이퍼 사업을 디와이오토에 매각한다고 밝혔지만, 한국와이퍼는 매각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렇게 한국와이퍼는 고용승계 없이 청산에 돌입한다. 노동자 284명은 9월 내로 조기 퇴직을 신청하라 통보받았고, '한국와이퍼 사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발단② 모기업 덴소를 뿌리로 복잡하게 얽혀... 내부거래로 손익 결정되는 구조인 한국와이퍼

 

한국와이퍼 매출, 덴소코리아에 '좌지우지'
"단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특수한 관계"

 

'한국와이퍼 사태' 첫 단추는 덴소코리아다. 한국와이퍼 매출은 계열사 덴소코리아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구조다. 한국와이퍼와 덴소코리아는 지분 상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모기업인 일본 덴소를 매개로 내부거래를 하는 등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한국와이퍼는 일본 덴소가 38.25%, 덴소와이퍼시스템즈가 61.75% 지분을 가진다. 덴소코리아의 지분 100%는 일본 덴소가 소유했다.

 

 

일본 덴소의 국내 와이퍼 사업을 총괄하는 덴소코리아는 와이퍼 납품 영업권을 쥐고 있다. 와이퍼 생산 체계는 크게 와이퍼 모터, 와이퍼 암, 와이퍼 링케이지로 구분된다. 와이퍼 모터는 덴소코리아, 와이퍼 암은 한국와이퍼, 와이퍼 링케이지는 협력사인 EHE에서 만들었다.

그간 한국와이퍼는 이 부품들을 조립해 덴소코리아를 통해 현대자동차에 납품해왔다. 한국와이퍼 매출 대부분이 계열사와의 거래로 이뤄진 까닭이 이 때문이다. 최근 3년간 한국와이퍼 전체 매출 83%가량은 덴소코리아 등 계열사와의 거래였다. 이런 구조를 근거로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측은 "덴소코리아에서 한국와이퍼 단가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특수한 거래 관계"라고 설명한다.

 

발단③ 2018년 처음 불거진 '기획폐업' 의혹, 2021년 노사가 '고용보장 연대책임' 맺으며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2021년 초, 신차 물량 없는 상태임에도 생산량 늘려
노조, 청산 고려하는 회사가 재고 찍는 상황 의심
"청산·매각·공장 이전 노조와 합의" 협약서 체결

 

1987년 설립된 한국와이퍼에 처음 노조가 생긴 지난 2018년은 노동자들에겐 의미심장한 해였다. 이 시기부터 신차 수주가 없어 물량감소에 따른 폐업과 구조조정 우려가 곳곳에서 나왔다. 그해 7월에는 와이퍼 링케이지를 생산하던 덴소오토모티브 홍성공장이 폐업했다. 여기서 만들던 부품은 일본 덴소가 EHE라는 협력업체를 세워 재생산했다.


20여 년간 한국와이퍼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은숙(54)씨는 "당시 2024년에 한국와이퍼가 청산된다는 이야기가 오갔었고, 공장이 이전한다는 말도 돌았다. (물량 수주가 줄어드는) 움직임에 고용 불안이 우려돼 노조에 가입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우려 속에 노사 간의 갈등은 지난 2021년 정점을 찍었다. 2021년 초 한국와이퍼는 신차 물량이 없는 상태임에도 생산량을 늘렸다. 노조는 청산을 고려하는 회사가 재고를 찍어내는 상황을 의심하고, 그해 8월부터 9월까지 한 달가량 부분파업을 벌였다. 납품 생산에도 하나둘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장은 "당시 고객사인 현대자동차에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앞두고 있었다"고 전했다.

노사는 협상 테이블로 나와 2021년 10월 15일 단체협약 효력을 갖는 '한국와이퍼 2021년 고용안정 협약서'를 체결한다. "회사는 청산, 매각, 공장 이전의 경우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당시 협약서에는 금속노조 관계자와 한국와이퍼 대표이사 외에 덴소와이퍼시스템즈 대표이사와 덴소코리아 대표이사의 날인도 담겼다. 두 관계사는 "연대책임자로서 보증하고 확약한다"는 부분에 서명했다.

 

쟁점① 일반적인 기업 청산·해고와 달라... 청산 계획 중 맺은 단체협약

 

 

이런 맥락에서 한국와이퍼 청산과 대량 해고는 일반적인 기업 청산과는 다르다. 열쇳말은 단체협약인 '2021 고용안정 협약서'다. 이는 청산을 염두에 두고 한국와이퍼가 노동자의 고용안정 보장을 성실히 이행하라 협의한, 노사 간 신뢰 회복을 목적으로 체결한 단체협약이었다는 점이다.

협약서에는 사측이 그간의 청산 계획을 시인한다는 점도 드러난다. 협약서 2조는 "회사는 청산검토 등 2020년 합의사항 불이행에 대해 사과하고 노사 간의 신뢰회복을 위해 다음과 약속한다"고 명시한다. 한국와이퍼의 기업 청산에 따른 노동자 대량 해고 절차를 단순히 기업 경영권 행사로 볼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고용안정 협약서, 노사간 신뢰 회복 목적 '체결'
사측이 그간 청산 계획 시인한다는 점도 드러나
법원, 대량 해고 부당 판단… 경영권 행사 '제동'

 

법원도 이런 '한국와이퍼 사태' 특징을 눈여겨보고 대량 해고가 부당하다는 취지 판단을 내렸다. 지난달 30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제10민사부(남천규 부장판사)는 '단체협약위반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협약이 체결된 경위와 문언의 내용을 보면 일반적인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을 염두에 둔 고용안정협약이 아니라 채무자(한국와이퍼)의 청산을 염두에 둔 고용안정협약으로 보이는 점"이라고 짚었다.

또 재판부는 단체협약을 맺은 목적을 "청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해고 등에 관해 채권자(노조)와 합의하도록 함으로써 고용 불안정을 해소하려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채무자(한국와이퍼)도 이를 수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결국 이런 여러 상황을 고려해 맺은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지난해 7월 7일 일방적으로 청산 계획과 대량 해고를 통보했기에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한국와이퍼 경영권 행사에 제동을 건 것이다.

 

쟁점② 외국인투자 촉진법 혜택만 받고 사회적 책임은 나 몰라라... 외교 문제로 비화 될라

 

 

'한국와이퍼 사태'에는 '먹튀'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외국인 투자 자본이 국내에 진출할 때 부여받는 혜택에 비해 사업 철수 시 구조조정 등에 따른 책임은 적은 탓이다.

해당 사태의 첫 단추이자 일본 덴소 자회사인 덴소코리아는 지자체와 정부로부터 159억원 상당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덴소코리아 등 외국인투자기업 지원 혜택 내역'에 따르면, 덴소코리아는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경기도에서 11억원가량 임대료를 감면받았다. 이외에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141억원가량 임대료감면, 충남시에서 5억9천만원가량 재산세와 취등록세를 감면받았다. 덴소코리아 계열사를 모두 합하면 지원 금액은 222억원에 달한다.

 

외국인 투자 자본, 국내 진출 혜택 비해 책임 적어
덴소, 200억 이득 봤지만 사용자 책임 다하지 않아
사태 길어질 경우 외교 문제 비화할 수 있단 우려도

 

이런 지원은 '외국인투자 촉진법'에 근거한다. 외국 자본 유치를 촉진해 국내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이 법 시행령 19조에는 일정 조건을 충족한 외국계 기업에 대한 국가 소유 토지 임대료감면 등을 명시한다. 하지만 이런 혜택에 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시하지는 않아 기업 청산과 해고에 따른 대규모 실업 등 후폭풍을 예방하기엔 부족한 실정이다.

일본 덴소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으로서 200억원 상당 이득을 봤지만, 정작 사용자로서 책임은 다하지 않았기에 '혜택만 먹고 외국(일본)으로 튄다'고 비판받는 배경이다. 와이퍼 사업 일부분을 매각한다고 밝히면서도 2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한국와이퍼는 손쉽게 청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일본 자본의 일방적인 청산과 대량 해고 여파로 '한국와이퍼 사태'가 길어질 경우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이에 지난 1일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주한 일본대사관에 방문해 해당 사태를 설명하고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전망 '해고 데드라인'은 사라졌으나 사측은 입장은 여전히 오리무중... 노조 "항소 대비하는 한편 고용승계와 고용노동부 대응 마련 촉구"

 

 

귀하와 회사 간의 고용관계는
2023년 2월 18일부로 별도의 추가 통지 없이
자동으로 종료됩니다

 

지난달 30일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서 한국와이퍼가 통보한 '해고 데드라인'은 사라졌다. 그에 따라 청산 절차로 인한 휴업 상태도 이어지게 됐다. 해당 법원 판결에서 1일당 5천만원 간접강제 신청은 인용되지 않았지만, 한국와이퍼는 조합원들에게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법원 판결이 나온 지 일주일이 넘었으나 사측은 여전히 가처분 인용에 대한 항소 등 관련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노조와 수차례 교섭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법원 판단에 따른 이의제기 여부나 해고 철회에 관한 논의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 한다.

법원 판결 나온 지 일주일 넘었으나
사측, '가처분 인용' 항소 입장 내놓지 않아
노조, 협약 위반 손배소 준비 박차 가할 전망
"고용부, 적극적 대응으로 노동자 보호해야"

가처분 인용과 별도로 노조는 사측 항소에 대비하는 한편 한국와이퍼의 '2021 고용안정 협약서'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 준비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장석우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만약 사측이 법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해고를 유지한다면, 1일당 5천만원 지급을 요구하는 간접강제 신청 등을 할 계획"이라며 "본안소송(손해배상소송) 관련해서는 가처분 인용과 동일한 판단을 받는 걸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률 다툼 외에 노조는 덴소코리아가 와이퍼 사업을 매각하기로 한 디와이와 논의하며 고용승계를 요구할 계획이다. 아울러 고용노동부에도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해법 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장은 "외국 자본이 국내 노조법을 우롱하는 행태에 대해 고용부가 이렇다 할 대응 마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용부는 고용승계 문제 해결, 외교부 같은 연관 부처에 논의 등 적극적인 대응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