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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新팔도명물] 양평의 자랑, 토종배추·토종쌀

밥상의 기본 쌀과 배추, 선조들의 맛이 돌아왔다

 

10월 초 무더위에 가을장마, 갑작스레 닥친 한파까지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수확이 한창이어야 할 전국 산지의 배추가 밭에서 썩어가고 있다. 고온현상으로 배추가 성장을 멈추고 물러지는 '무름병'에, 배춧잎이 마르는 '갈색줄무늬병'까지 덮치며 배추농사를 포기하는 농가들도 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 김장철을 맞아 배추와 무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오르며 김장을 포기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 경기도 양평군에선 지난 8일과 9일 '토종배추 김장축제 및 나눔 행사'가 열렸다.

 

갑작스런 기후변화나 질병에도 영향받지 않고 자라 지역의 대표 농산물로 자리한 '양평 토종배추'가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 맑은 양평에서는 지금 토종배추뿐만 아니라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토종 쌀의 맛과 품질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며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이제 다양한 품종의 토종 씨앗상품들이 양평을 대표할 날이 머지않았다.

 

 

고소하고 아삭한 토종 조선배추

 

"옛날 양평에서 재배한 토종배추여서인지 재배는 수월했어요. 전국에 배추농사가 큰 피해를 보았다고 하는데, 우리 토종배추는 병충해에 강해 별 문제없이 자랐습니다. 기존 배추와 비교해 약간 속이 덜 찬다는 것이 흠일 뿐 배추의 식감은 아주 좋습니다."

11월 초 지평면 송현리 4천㎡ 밭에는 한국생활개선회 양평군연합회(회장·박성미, 이하 생활개선회)에서 지난 8월 말 심은 토종 조선배추, 구억배추와 곡성무, 횡성밑갓 등이 파랗게 너울거렸다. 

 

"토종배추, 병충해 강하고 식감도 좋아"
개량종과 달리 녹색잎 많아 영양소 풍부
명인 초청 '김장 행사'… 온라인 판매도


지역 내 토종품종 심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생활개선회 박성미 회장은 양평 토종배추와 토종 무·갓 등을 재배하며 느꼈던 우리 토종 씨앗의 우수성 자랑에 여념이 없다.

우리 토종 조선배추는 일반적으로 속이 노란 개량배추와 달리 속이 들지 않고 키도 50㎝ 정도로 더 크며, 속보다는 녹색 잎이 많아 비타민 C나 식이섬유 등 영양소가 풍부한 특징이 있다.

얼핏 보면 개량배추와 갓의 중간 형태이다. 맛도 단맛보다는 매운맛이 강하고, 수분이 적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뿌리인 배추 꼬랑이의 맛은 일품이다. 김치를 담갔을 때 해를 넘겨도 늦게까지 푸른빛이 살아있고 아삭아삭하며 고소한 배추의 향과 맛을 유지하는 게 특징이다.

지역 내 이런 토종배추의 우수성을 알리고 보급을 확대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근 생활개선회는 토종 배추의 맛을 살린 김장을 담그기 위해 김치명인 황미선 셰프를 초청, '양평 조선배추 김장 담그기' 강좌도 열었다. 강좌에 참여한 주부들은 황 셰프의 레시피에 따라 만든 배추김치의 아삭하면서도 깔끔한 맛에 감탄사를 연이어 터뜨렸다.

생활개선회 회원이기도 한 250여 주부들은 양평 조선배추로 담근 김치로 '토종 배추 김장축제'에 참여하고 나눔 행사도 가졌다. 나머지는 '양평농촌나드리' 온라인 매장을 통해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토종 쌀 350여 종 수확… 연말 시제품 출시

 

 

올가을 황금 들녘을 이루었던 양평군 청운면 가현리 '토종자원 거점단지'는 가을걷이가 막바지다. 9월 초 조생종을 시작으로 10월 말 만생종까지 총 350여 종의 토종 벼를 수확해 자연 건조하고 탈곡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양평에는 '토종자원 거점단지' 외에도 10여년간 토종 벼 지킴이로 활동해 온 '우보농장'(대표·이근이)과 협업, 12개 읍·면 20여 개 농가(농가당 4천㎡)에서 메벼와 찰벼 등 총 30여 개 품종이 재배되고 있다. 

 

'토종자원 거점단지'서 벼 350여종 수확
'우보농장'과 농가 협업 전통농법 재배
다양성·희소성 자랑… 연말 대표종 출시


이근이 대표를 비롯 농가들은 볍씨를 채취할 목적으로 품종마다 16.5㎡ 규모로 심고 섞이지 않도록 일일이 손으로 모를 내고,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나 유기질비료도 전혀 쓰지 않는 전통농법으로 재배했다.

주력 품종을 선정할 때도 20여 개 농가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했다. 독실한 천주교인에게는 천주도, 인재가 많이 나온 옥천면에는 용천, 동물이름의 흑저도·쇠머리지장·늦닭벼, 북한 품종의 북흑조·평양·해조, 과거 양평에서 재배된 노인도·강릉찰 등을 고루 나눠 심었다.

 

 

토종 쌀의 특징은 다양성과 희소성이다. 시중에서 개량종 고품질 쌀(10㎏)이 4만~5만원에 판매된다면, 토종 쌀은 15만~25만원으로 4~5배 높은 가격에 유통된다.

총 10만㎡ 논에서 수확한 토종 벼는 특성 연구를 통해 지역적응 품종을 선발, 양평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토종 벼 연말 시제품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클라우드펀딩(소액개인투자) 방식으로 생산을 확대해 나갈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 대표도 토종 품종에 대한 자랑이 이어진다. "품종마다 고유의 맛이 있고 색과 모양이 다 다릅니다. 또 저마다 독특한 유래가 있어 이야기하는 재미가 있어요. 게다가 그 쓰임도 모두 다릅니다." 토종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 보니 재구매율도 높다.
 

 

미래 100년 먹거리, 양평군의 '백년씨앗 천년틔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어느 때보다 '면역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네 식단은 유전자 변이 농산물과 각종 화학물이 첨가된 '초가공 식품'이 점유한 지 오래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먹거리만큼은 안전하고 가능하면 더 영양가 높은 특별한 것을 찾고 있다. 이런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양평군은 수년 전부터 토종 씨앗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郡,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수요 충족
토종종자 '백년씨앗 천년틔움' 확장 계획


정동균 양평군수는 이렇게 말한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 토종 씨앗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면,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다국적기업들이 한국의 종자회사를 대거 인수하면서 우리의 종자 주권이 사라졌다고 본다. 이를 되찾기 위해 양평군에서는 우리 땅에서 수백 년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이겨낸 38개 작물 67품종 198점의 토종 씨앗을 구해 이를 재배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양평군은 각종 중복규제 속에서 자구책으로 1998년 친환경 농업을 선포한 이후, 2005년 전국 최초로 '친환경 농업특구'로 지정되며 20여년간 친환경 농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정 군수는 2018년부터 토종 씨앗의 발굴과 보급부터 생산, 가공, 유통까지 아우르는 '토종자원클러스터' 기반을 구축해 양평군 친환경농업의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는 친환경 인증 농가 1천47가구가 있다. 토종 씨앗만 있으면 언제든 바로 전환이 가능하다. 이젠 100세까지 살려면 양평 농산물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양평군은 '토종자원클러스터' 거점단지를 통한 토종 농산물을 확대 보급하기 위해 '물맑은 양평'과 함께 토종 종자 이름을 '백년씨앗 천년틔움'이라 정하고 사업을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양평/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