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강릉 18.9℃
  • 맑음서울 12.7℃
  • 맑음인천 13.4℃
  • 맑음원주 11.0℃
  • 맑음수원 10.1℃
  • 맑음청주 12.8℃
  • 맑음대전 10.5℃
  • 맑음포항 13.4℃
  • 맑음대구 11.2℃
  • 맑음전주 12.0℃
  • 맑음울산 11.0℃
  • 맑음창원 12.5℃
  • 맑음광주 12.0℃
  • 맑음부산 13.8℃
  • 맑음순천 7.2℃
  • 맑음홍성(예) 10.5℃
  • 맑음제주 13.7℃
  • 맑음김해시 11.4℃
  • 맑음구미 10.0℃
기상청 제공
메뉴

(부산일보) 자연이 시간 들여 조각한 돌의 생애…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돌과 바위, 암석은 유한한 인생에서 무한한 시간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예로부터 바위를 기원의 대상이나 신령의 상징으로 삼고, 세계의 기암 괴석이 사랑받는 명승지가 된 까닭이다.

 

유네스코가 과학적 중요성뿐 아니라 생태학적, 고고학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살펴 세계지질공원을 정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돌의 생애를 따라 경북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을 다녀왔다.

 

내륙형 국내 첫 세계지질공원 인증된 청송군 24개 지질명소

화산재 굳어 만들어진 주왕산 용추협곡, 유모차 끌고 갈 수도

신성계곡 녹색길 백미는 회색빛 바위가 산맥처럼 솟은 백석탄

 

■신성계곡 녹색길의 반짝이는 흰 돌

 

청송은 첩첩산중 인구 2만 5000명의 작은 도시다. 이춘규 해설사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추진한 배경에는 인구소멸 위험 지역인 청송을 지키려는 노력도 있었는데, 인증 이후 관광객이 연 200만 명에서 배 이상 늘었고 주민들의 자부심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특히 신성계곡 녹색길 탐방로가 새롭게 조성되면서 주왕산에 집중된 청송 관광이 다양해지는 효과도 있었다.

 

주왕산 권역의 첫 장면이 화산 폭발이라면 신성계곡 권역은 공룡이 거니는 풍경이다. 1억 년 전 신성리 일대는 숲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평원 안에 얕은 호수가 있는 곳이었다. 여기에 자갈과 모래, 진흙이 쌓이고 굳어져서 만들어진 퇴적암이 풍화와 침식, 융기를 거치면서 또다른 모습의 경관이 형성됐다. 신성계곡 녹색길은 길안천 계곡을 따라 걸으면서 지질명소를 탐방하는 길로, 전체 11.8km 구간이 세 구간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3코스는 안덕면 지소리 청송반딧불농장에서 고와리 목은재휴게소까지 이어지는 4.7km 구간이다. 농장에서 출발해 징검돌다리를 건너면 산 아래 분재처럼 모양을 잡은 사과나무들이 늘어선 하천과수원길이 나온다. 막 피기 시작한 꽃을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농장 주민이 “(4월) 25일부터 5월 5일 쯤이면 벚꽃처럼 만개를 한다”고 귀띔을 했다. 이 주민을 끝으로 3코스 내내 사람의 흔적은 전혀 보지 못했다.

 

하천과수원길 종점에서 잠수교까지 1.5km 구간은 하천과 나란히 산 둘레를 따라 걷는 산길 구간이다. 덤불을 헤치고 돌부리를 피해서 가야하는 좁은 산길이고, 짧은 바윗길도 포함돼 산책보다는 등산에 가깝다. 산길의 후반부에 이 길의 백미 백석탄이 나타난다. 암산 봉우리의 미니어처 같은 옅은 회색빛 바위들이 산맥처럼 솟은 위로 흰 물결이 부서지는 모습은 어디에도 비슷한 풍경이 없을 것 같은 장관이다.

 

백석탄은 ‘하얀 돌이 반짝이는 여울’이라는 뜻. 바위 위에 침식으로 생긴 오목한 구멍(포트홀)을 비롯해 암석 조각이 다시 퇴적되는 이암편과 줄무늬(층리), 생물체의 활동 흔적 같은 퇴적암의 지질 현상을 볼 수 있다. 백석탄을 맞은편에서 보려면 백석탄길로 되돌아오는 대신 건너편 930번 지방도로로 걸어오면 된다. 또다른 지질명소인 붉은색 바위 절벽 만안자암 단애와 신성리 공룡 발자국은 차로 이동해야 한다.

 

■구두 신고도 가는 주왕산 탐방로

 

2017년 국내에서 두 번째, 내륙형으로는 최초로 인증된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면적은 청송군 행정구역 전체다. 주왕산 권역과 신성계곡 권역을 중심으로 24개 지질명소가 청송 전역에 흩어져있다. 우리나라 3대 암산 중 하나인 주왕산의 여러 탐방 코스 가운데 주방천 계곡을 따라 대전사에서 용추협곡까지 이어지는 2km 구간은 유모차나 휠체어 이용자도 갈 수 있는 무장애 탐방로다.

 

주왕산국립공원 입구 대전사 보광전 건물 뒤로 보이는 거대한 암석 봉우리가 주왕산의 지질학적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는 1번 지질명소 기암단애다. 대략 1억 년에서 6500만 년 전 주왕산 주변은 수시로 화산 폭발이 일어나 화산재가 500m 이상이나 쌓이고 거대한 암석 파편이 튀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화산재는 단단하게 굳어 응회암이 됐고, 용암이나 화산재가 식으면서 부피가 수축해 수직 방향 절리(틈)가 형성됐다. 폭 150m 7개 봉우리로 갈라진 기암단애를 비롯해 주왕산의 갖가지 바위들은 모두 응회암이 물과 바람, 중력을 만나 빚어진 작품들이다.

 

기암의 깃발 기(旗) 자는 신라 시대 장군이 당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여기 숨어든 주왕을 찾은 뒤 이 봉우리에 깃발을 꽂았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주왕이 역사적 개연성이 없는 허구 인물이라면 급수대 주상절리에 얽힌 전설의 주인공인 신라 귀족 김주원은 실존 인물이다. 그는 임금으로 추대됐으나 음모에 휘말려 주왕산 절벽 위에 대궐을 짓고 두레박으로 주방천의 물을 퍼올렸다고 전한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이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던 주왕산의 자연 성곽 같은 산세가 두 전설을 만들었을 것이다. 노인의 얼굴이 보이는 수직 기둥 시루봉과 신선이 노닐 것 같은 거대한 절벽 학소대를 지나면 용추협곡이 나타난다. 수직절리를 따라 물이 얼었다가 녹으면서 만들어진 협곡과 폭포에서는 바위를 쪼개고 바닥을 깎는 시간과 자연의 힘에 절로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이춘규 해설사에 따르면 무장애 탐방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하이힐을 신고도 대표적인 지질명소를 둘러볼 수 있어 가장 인기가 많은 구간이다. 여기에서 절구폭포, 용연폭포와 주왕굴, 무장굴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왕복 3시간, 5.3km 구간 주방계곡 지질탐방로가 완성된다.

 

 

 

■꽃돌과 백자, 그리고 야송미술관

 

청송의 돌은 산과 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왕산관광단지 안에 있는 청송수석꽃돌박물관과 청송백자전시관은 작지만 짜임새 있는 돌 관련 전시 공간이다. 꽃돌은 청송 구과상유문암의 또다른 이름이다. 규산 성분을 많이 포함한 마그마가 지표 근처에서 빠르게 식으면서 암석 내부에 한 점을 기준으로 결정이 방사상 형태로 자라는 구과상 조직이 만들어지는데, 이 단면이 꽃처럼 다양하고 아름다워서 꽃돌이라고 부른다. 약 5000만 년 전 지층의 약한 부분을 뚫고 관입해 형성된 꽃돌은 사람의 가공 과정을 거치면서 국화, 카네이션, 장미, 해바라기, 벚꽃 같은 다양한 꽃 모양이 드러난다. 자연의 비밀을 품은 꽃무늬는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하다.

 

500년 전통의 청송백자는 청송의 법수도석으로 만든다. 법수도석은 마그마의 열수가 응회암을 변질시켜 만드는 돌로, 청송에는 보통 백자를 만드는 고령토가 나지 않아 법수도석을 빻아서 백자를 만들었다. 백자전시관 옆 판매장에서는 전수자들이 만든 가벼운 백자를 직접 살 수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연행돼 사쓰마(현 가고시마현) 도자기를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로 만든 조선도공의 후예, 심수관가의 청송심수관도예전시관도 바로 옆에 있다.

 

청송 출신 동양화가 야송 이원좌 화백을 기념하며 폐교를 개조해 만든 군립청송야송미술관도 추천 장소다. 길이 50m, 높이 7m, 전지 400장 분량의 청량대운도만을 전시한 청량대운도전시관이 따로 있는데, 파리 오랑주리미술관 한 방을 꽉 채운 모네의 수련보다 몇 배는 큰 대작으로 경북의 또다른 바위 명산 청량산을 그렸다. 화백의 2주기 기획 전시에서는 주왕산을 그린 주왕운수도를 포함한 대표작들과 초기 볼펜드로잉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청송 지질 여행 팁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홈페이지(csgeop.cs.go.kr)에서 무료 지질해설을 신청하면 탐방로별로 자연과 인문을 망라한 해설과 함께 지질명소를 탐방할 수 있다. 코로나로 개인은 3~4인 규모로 탐방 5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 교육 목적의 단체는 5인 이상도 가능하다.

 

주왕산국립공원에 입장하려면 대전사 문화재관람료(3500원)를 내야 한다. 상의주차장 주차료는 5000원이다. 청송수석꽃돌박물관, 청송백자전시관, 청송심수관도예전시관,군립청송야송미술관은 입장료가 없으며 모두 월요일에 휴관한다.

 

만석꾼 청송 심씨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건축한 7개동 99칸 한옥 송소고택에서는 고택 체험과 숙박을 할 수 있다. 송소고택에 가기 전 식사는 사과솥밥과 코다리찜, 두부전골 등 정갈한 정식을 내는 두연을 권할 만하다. 군립청송야송미술관이 있는 신촌리에는 신촌식당을 비롯해 녹두 닭죽과 숯불 닭불고기를 파는 식당이 여럿 있다.

 

글·사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