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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뒷산에서 오감을 열고 느릿느릿 예술 체험

 

 

 

지역과 예술, 식물을 통한 치유를 결합한 색다른 실험이 부산에서 열렸다. 부산 동구 수정산 숲을 함께 걸으며 예술을 체험해 보는 프로젝트다. 지난 4일 오후 1시 30분께 수정산 등산로 입구에 시민 20여 명이 모였다. 문화예술단체 실험실 씨(Lab C)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을 받은 ‘소요의 시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3시간 넘게 함께 숲을 걸으며 예술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문화예술단체 ‘실험실 씨’

수정산 숲서 ‘소요의 시간’

가야금 연주·명상·전시…

숲 해설과 지역 예술 결합

 

 

■곁에 있지만 몰랐던 곳 알아 가다

 

숲 해설을 맡은 ‘딱따구리’(박미라 씨)와 함께 간단한 체조를 한 뒤 체험이 시작됐다. 잘 가꿔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마주하는 나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이팝나무는 꽃 모양이 밥풀 같은 모양새를 띠어 ‘이 씨들이 먹는 밥 나무’라는 뜻으로 이팝나무라고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고, 한·중·일에서만 자라는 나무다.

 

매화나무, 배롱나무, 편백 등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각종 식물의 이름이 붙은 이유, 특징, 유래를 알 수 있었다. 단풍나무의 씨는 멀리 퍼져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회오리 모양으로 회전하며 날아간다. 실제로 헬리콥터는 단풍나무의 씨가 퍼지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평소 등산을 할 때 스쳐 지나가는 ‘나무 1’일 뿐이었던 식물이 숲 해설로 생명을 얻었다. 첫 번째 쉼터에는 김진주 작가의 드로잉 작품 ‘수정산 그리고…’가 전시돼 있었다. 종이에 펜으로 그린 작품으로 수정산에 자생하는 식물이 주인공이다.

 

두 번째 장소는 선베드와 평상이 설치된 쉼터였다. 각자 자리를 잡고 편하게 누워 ‘식물이 되어 보자’는 주제의 퍼포먼스를 함께했다. 이때 가이드는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재은 무용가였다. 명상의 시간이자 각자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어 가야금 연주자 최경철의 가야금 공연이 이어졌다. 조용한 숲속에 울려 퍼지는 가야금 소리가 색달랐다.

 

한참 산을 오르다 보니 비석 몇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경부철도용지 비다. 일제강점기 경부선을 건설하며 필요한 물을 수정산에 흐르는 초량천에서 끌어 썼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이다. 돌에 빨간색 글씨로 ‘식수’라고 새겨진 비석도 있었는데 상수도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 산복도로 민가에서 식수로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작가가 해석한 부산과 숲, 현대인

 

산책과 동시에 다양한 예술을 체험할 수 있었다. 정만영 작가가 만든 막대기는 등산 스틱이자 자연의 소리를 증폭해 들을 수 있는 사운드 스틱의 역할을 했다. 정 작가가 수정산 등산로를 맨발로 걸으면서 느꼈던 땅의 질감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다.

 

강은경 작가의 ‘새는 바가지’는 구멍이 뚫린 바가지에 부은 물이 끊기지 않도록 참가자가 협력하는 퍼포먼스다. 물길과 수도를 직접 경험하는 방식으로 그동안 산을 오르며 지나쳤던 물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체험이었다.

 

산에서 식수를 얻을 수 있으니 산에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도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산복도로에 피란민이 몰려들었는데, 그곳에서마저 살 곳을 얻지 못한 사람이 산에 집을 지었다. 박미라 씨는 “남아 있는 평평한 땅과 제사를 위해 주로 집 옆에 심었던 밤나무를 보고 이곳이 집터였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희 작가는 헬륨 풍선과 실, 리본으로 집터의 문과 창문을 표현했다.

 

김덕희 작가의 ‘Calling Nature’는 투명한 인공 바위에 휴대폰을 넣은 작품이다. 바위 옆 인공 나무에는 이 휴대전화의 번호가 적혀 있고, 실제로 전화를 걸 수 있다. 김 작가는 “전문가 그룹과 함께 수정산 리서치를 하면서 자연과 사람은 어떤 관계인지 고민하게 됐다. 자연이라고 하면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이미지이고 그런 자연을 갈망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 착안했다”며 “자연이 있는데도 없는 것 같고 자연을 찾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전화를 거는 이미지로 형상화했다”고 전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온 전지 작가의 작품 ‘아-소리 나는 그 일들’ 20점은 산에서 내려가면서 볼 수 있도록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었다. 수정동과 수정산에 관한 구술과 기록을 바탕으로 과거 생활상을 종이에 그려 리넨에 인쇄했다. 꽃놀이 가는 마을 아낙들, 산복도로 출퇴근길 같은 풍경이다. 전 작가는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수정동 이야기를 글 없는 단편 만화, 그림 동화처럼 만들고 싶었다”면서 “며칠 전 태풍으로 작품이 떨어질까 걱정했는데 훼손되지 않았고 오히려 흙탕물을 입어 예스러운 질감이 됐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실험실 씨 김혜경 아트 디렉터는 “놓치기 쉬운 미시적 지역 이야기에 작가의 작업을 녹여 냈다”면서 “뒷산임에도 몰랐던 보석 같은 이야기를 수면 위로 올려 함께 공유하고 생태 체험도 할 수 있는 융복합 예술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실험실 씨는 10월 31일~11월 1일 가을 산책을 두 차례 더 연다. 10월 31일부터 11월 7일까지는 초량동 일식 가옥에서 ‘소요의 시간’ 결과물을 모은 아카이브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