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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예술가의 작업실] (34) 임만재 도예가

흙이 예술로 도자의 꽃 피어나는 터전

40년 도자 연구 세월 쌓여 있는 김해 ‘정호요’
젊은날 이도 사발 매력에 빠져 2000년 문 열어
전국 돌며 찾은 좋은 흙으로 만들고 깨기 반복

 

사발은 단순 용기 아닌 사람들의 세월 담아와
요즘은 삶의 고단함 녹여줄 ‘보듬이’ 제작중
“도자기는 결국 자연, 전통·근본으로 가고파”

 

“도자기의 꽃은 사발이고, 사발의 꽃은 이도입니다.”

 

임만재(56) 도예가는 40여년 도자 외길을 걸어온 도공이다. 물레가 돌아가고 사발은 단숨에 형태를 갖춘다. 치듯이 빼어 올린 곡선에는 흙과 불의 시간이 응축되고, 은은한 유약의 빛이 그 선을 감싼다.

 

김해시 한림면에 위치한 정호요(井戶窯)는 사발 연구의 시간이 고스란히 쌓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전통 사발은 그의 손길을 거쳐 비로소 숨을 얻는다.

 

임만재 도예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물레를 돌려 사발을 성형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전통 사발을 빚어내는 공간

 

-정호요(井戶窯)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있다면.

 

△젊은 날 어느 작업실에서 처음 정호(井戶), 즉 이도 사발을 만났다. 어떤 분이 한번 만들어보라고 권했는데, 보고도 만들 수가 없었다. 그게 이도와의 첫 인연이었다. ‘보고도 못 만드는 그릇이 있다니.’ 그때부터 사발이 인생의 목표가 됐다. 반드시 이 사발을 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2000년 이곳에 작업실을 열면서 이도의 한자에서 이름을 따 ‘정호요’로 정하고 사발 연구에 집중했다. 그 연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발을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하다.

 

-두 개의 차실이 인상적인데.

 

△좌식 형태의 차실은 작업실을 만들 때부터 함께한 공간이다. 요즘 다리가 불편한 분들이 늘어나면서 고민 끝에 지난해 봄, 밭으로 쓰던 자리에 입식 형태의 차실을 마련했다. 차와 사람이 머물 수 있는 편안하고 소박한 차실을 좋아한다. 차를 마시려면 도구가 필요하고 그에 맞는 도구가 바로 도자기다. 18살 때부터 차를 마셨다. 도자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를 접하게 됐다.

 

-작업실에서의 하루 리듬이 궁금하다.

 

아침 9시쯤 작업실에 들어간다. 특히 겨울에는 오전 작업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몰두하려 한다. 하루 중 가장 맑은 시간이 오전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발을 비롯한 모든 성형 작업은 오전에 마친다. 보통 3~4시간 정도가 하루 작업의 핵심 시간이다. 그 시간을 가장 밀도 있게 쓰려고 애쓴다. 오후가 되면 차를 마시러 오는 이들이 있다. 거의 매일 차를 함께 나누며 하루가 흘러간다.

 

임만재 도예가의 차실./성승건 기자/

 

차실 한쪽에 각양각색의 사발들이 전시돼 있다./성승건 기자/

 

◇흙이 좋아서 시작된 40여년 도예 인생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고향은 전북 남원이다. 앞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뒤에는 지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열네 살 무렵 김해로 이사를 왔다. 당시 사촌 형이 김해 진례의 김해요에 다니고 있었다. 심심하면 일을 도와보라는 말에 작업장을 찾았고 처음에는 장작을 패는 등 허드렛일을 했다. 어느 날 작업실 문이 열리는 순간, 돌아가고 있는 물레를 보게 됐다. 그날 이후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물레가 빙빙 돌아가는 잔상이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길로 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까지 도자기 한 길만 걸었다.

 

-재료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고.

 

△한때는 미친 듯이 재료를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성형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을 만들었다면 그 몸에 맞는 흙과 유약, 거기에 어울리는 옷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국 안 가본 데가 없다. 좋은 흙이 난다고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다녔다. 그렇게 모은 재료로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했다. 깨고 버리고를 반복하면서 어느 순간 사발들이 자리 잡아 가기 시작했다.

 

마당 한편에 쌓여 있는 재료들./성승건 기자/

 

가마 입구에 장작이 쌓여 있다./성승건 기자/

 

◇도자기의 꽃 사발, 사발의 꽃 이도

 

-사발을 오랜 시간 붙들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사발은 묘한 힘이 있다. 한 번 빠지면 깊이 빠져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분명히 있다.

 

기술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더 매혹적인지도 모른다. 저처럼 만드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도전의 매력이 있고, 소장하는 이들에게도 저마다의 끌림이 있다고 본다.

 

사발을 만들면서 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고 이도라 할 수 없다.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을 때 비로소 나온 사발이 좋은 사발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이도의 매력은.

 

△도자기의 꽃은 사발이다. 사발의 꽃은 이도다. 이도는 굽이 작지만 매화피가 잡아주며 불안함을 상쇄하고, 넓게 퍼진 손태가 굵게 나면서 용솟음치는 기운이 느껴진다. 붉은빛과 흰빛이 어우러진 색감도 아름답다. 그릇이 주는 기운도 있다.

 

이도 사발의 자연스러움은 흐트러짐이 아니다. 삐뚤삐뚤하게 만든 것을 자연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연미가 아니라 단순한 흐트러짐이다.

 

진짜 자연미는 최고의 기술자가 난을 치듯 순간의 집중으로 사발을 쫙 빼어 올렸을 때, 그 완벽한 선 안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청자의 곧은 선을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관심 있는 연구나 시도가 있다면.

 

△차문화를 연구하시는 정동주 선생님과 이 시대에 맞는 사발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뜻을 모아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보듬이라는 사발이다.

 

보듬이 사발은 손으로 감싸 쥐듯 들고 마시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온기를 전한다. 또 굽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높고 낮음을 없애고 평등의 의미가 담겨 있다.

 

임만재 도예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물레를 돌려 사발을 성형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삶의 고단함, 사발에서 녹아내리길

 

-도예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제 그릇을 쓰는 이가 어디에 있든 그 그릇에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삶의 고단함도 찻잔에서 녹아내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든다.

 

사발은 단순한 용기나 기능만 있는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대마다 사람들의 삶을 담아왔다. 고단한 날에는 막걸리를 담았을 것이고, 또 어떤 날에는 차를 담아 마셨을 것이다. 사발이 없던 시대는 없었다. 그래서 사발은 우리 삶을 담았다. 그리고 그 세월을 담았다고 본다. 그 안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더 철저하게 전통으로 가보고 싶다. 전통을 기반으로 저만의 작업을 해왔지만, 이제는 그 뿌리를 더 깊이 파고들고 싶다.

 

도자기를 연구하다 보면 혼자 사색하며 옛 도예가들의 시대를 떠올려본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도구로 작업했을지 상상해 본다.

 

예컨대 우리가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더 좋은 흙을 찾는 것이지, 이 세상의 모든 흙은 도자기가 된다. 도자기가 결국 자연인 거다. 그래서 더 전통으로, 더 근본으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