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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폴란드 국왕이시여 그단스크를 구해주소서”

[유럽 인문학 기행-폴란드] 그단스크 시청의 사자 문장

먼 옛날 폴란드 북부 항구도시 그단스크에 다니엘이라는 조각가가 살았다. 그는 당시 사람들로부터 ‘최고 중에서도 최고의 조각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의 조각을 볼 때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였다.

다니엘이 가장 즐겨 다룬 소재는 그단스트의 상징인 사자였다. 그는 사자를 정말 생동감 넘치게 묘사했기 때문에 사자가 조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사자가 포효하지 않고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느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였다.

 

 

어느 날 그단스크 시장이 울리차 둘가 시장에 있는 시청 건물 정면에 그단스크의 상징인 사자 문장을 새로 새기기로 했다. 울리차 둘가는 ‘긴 시장’이라는 뜻이다. 시장이 길쭉하게 늘어졌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단스크를 상징하는 문장은 사자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면서 왕관을 보호하는 모양이다. 이 문장을 시청 건물에 새길 조각가는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시민의 사랑을 받는 다니엘이었다.

 

새 과제를 부여받은 다니엘은 열심히 일했다. 사자 문장을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조각에만 매달렸다. 그가 놀리는 끌이 돌을 긁어내는 소리와 망치가 끌을 때리는 소리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멈추지 않았다.

당시 폴란드 정세는 불안했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폴란드를 차지하려고 호시침침 노릴 때였다. 특히 그단스크를 노리는 나라가 많았다. 위치가 좋은데다 무역항으로서 그단스크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단스크와 폴란드를 무척 사랑하는 애국자였던 다니엘은 사자를 만들면서 나라 걱정에 시달렸다. 일을 하다가 끌을 멈추고 한숨을 쉴 때도 많았다. 그는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충실히 하는 게 애국이라고 생각하며 망치에 힘을 주었다.

‘내가 사자 문장을 정말 아름답고 훌륭하게 만들면 하느님이 폴란드를 지켜주실 거야. 내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멋진 문장을 만드는 것이야.’

 

 

마침내 다니엘의 힘겨운 작업이 끝났다. 시장은 새 사자 문장을 천으로 덮어 성대한 축하 행사를 열 때까지 아무도 못 보게 했다.

 

제막식이 열리던 날 그단스크 시민들은 아주 멋진 옷을 차려입고 시청 건물이 있는 울리차 둘가에 몰렸다. 마침내 시장이 줄을 잡아당겨 장막을 걷었다.

“아!”

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아름답고 훌륭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였다.

“아니!”

큰 탄식이 쏟아졌다.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뜻이었다. 한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다니엘이 실수한 것 아니야? 문장이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를 잊어먹은 건가?”

곁에 서 있던 다른 남자가 말을 이었다.

“이건 순 엉터리잖아!”

두 사자는 마주보고 있지 않았다. 한 마리가 머리를 뒤로 돌려 그단스크로 들어오는 입구인 ‘즈와타 브라마(황금 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노파가 한탄했다.

“이건 비극이야!”

시민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을 본 다니엘이 그들 앞에 나서 설명했다.

“맞습니다. 두 사자는 마주보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두 사자는 모두 황금 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황금 문은 왕이 살고 계신 크라쿠프로 이어지는 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제가 만든 사자는 폴란드의 왕이 달려와서 그단스크를 보호해주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설명을 들은 시민들은 황금 문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니엘은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지.”

하지만 그단스크 시민들이 기다리던 희망의 빛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그단스크는 결국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됐다. 사정은 폴란드도 마찬가지였다. 폴란드는 유럽 지도에서 사라져버렸다.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의 일이었다. 꽃이 화려하게 만개한 봄이었다. 발트 해의 거친 파도는 여전히 그단스크 항구의 부두를 철썩이고 있었다.

시청 건물에 붙어 있던 두 사자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고 갑자기 큰 소리로 포효했다.

“으르렁~ 으르렁~~”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폴란드는 부활했다. 그단스크는 다시 폴란드의 영토가 됐다. 시민들은 다니엘을 기억하며 환호했다.

“다니엘 만세!”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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