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대를 아울러 학교하면 떠올리는 건 여전히 교과서다. 교과서는 근대 교육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의미의 학교(1895년 ‘소학교령’ 발표)가 도입되면서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이 교과서다. 근대 이전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학교 역할을 한 서당 등에서 수백 년 동안 주로 쓰던 교재는 성리학의 거두 주희가 엮은 ‘소학’(小學)이었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은 오늘날 교육부에 해당하는 학부가 1895년 8월 간행한 최초의 국어 교과서이자 국정 교과서다. 제목에 ‘소학’이 붙었지만, 성리학의 ‘소학’ 내용은 이 책에 없다. 책 제목에서 주목할 부분은 ‘국민’이다.
이 책은 당시 민족주의 성향을 띤 개화파 조선 정부가 근대 이전 시대 통치 대상인 ‘신민’(臣民) 개념을 근대적 의미에서의 ‘국민’으로 전환하고자, 그 국민으로서 배워야 할 이념적·정치적 내용을 반영한 교과서다.
‘국민소학독본’은 가로 18.3㎝, 세로 28㎝ 크기에 144쪽 분량이다. 한지로 제본한 전통적인 선장본이다. 학부인서체 목활자를 사용해 국한문혼용체로 간행했다. 전통적 형태의 책으로 펴낸 근대적 의미의 교과서이면서 국한문혼용체를 썼다는 점은 이 책의 과도기적 성격을 잘 드러낸다. 책은 국어·수신 교과서로서 총 41과로 구성됐고, 전통 문물과 신문물을 함께 소개한다.

강진호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상허학보’ 36집(2012)에 게재한 논문 ‘국어 교과서의 탄생과 근대 민족주의 - 국민소학독본(1895)을 중심으로’를 보면, ‘국민소학독본’은 일본이 1888년 간행한 ‘고등소학독본’과 수록 단원·내용이 80% 이상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소학독본’은 일본의 교과서를 베끼다시피 한 책이지만, 그렇다고 책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판단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이 민족국가와 자주독립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책의 첫 단원인 ‘대조선국’(大朝鮮國)은 비록 일본 교과서의 첫 단원 내용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긴 했으나, 그 내용에선 독립국으로서 조선의 위상을 강조하고자 했다. 또 일본 교과서에 없는 ‘세종대왕’ ‘을지문덕’ 등 단원이 추가됐으며, 미국의 독립 역사를 다룬 ‘아미리가 독립’을 3개 단원으로 상당 부분을 할애해 새로 썼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강 교수는 논문에서 이 책에 대해 “당대 민족주의의 큰 흐름 속에서 탄생한 근대적 기획의 산물”이라고 했다.
현재 한국의 공교육 체계에서 국정 교과서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초등학교 1~6학년은 모두 ‘국어’ 과목에서 국정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 말과 문화를 국가가 지향하는 바대로 가르쳐서 국가가 원하는 국민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교과목은 ‘국민소학독본’의 시대나 지금이나 ‘국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조선 ‘소학교령’에 의해 1896년 인천부공립소학교(현 인천창영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인천에서도 처음으로 근대적 의미의 공교육이 시작된다. 인천부공립소학교 학생들도 ‘국민소학독본’으로 공부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소학독본’ 이후 편찬되는 교과서(독본)들은 일본의 정치적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다. ‘국민소학독본’은 한일 강제병합 직후인 1910년 11월부터 발행이 금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