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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이영철의 제주여행]섬 전체에 뿌리내린 숲…생명의 원천이 되다

(13)청정자연 곶자왈 上
4대 곶자왈 속한 올레 11코스
제주 허파 구실하는 숲 우거져 
15-A코스 애월 곶자왈 지대
난대림으로 천년기념물 지정

 

올레 11코스 후반에 지나온 신평곶자왈은 나처럼 소심한 이들에겐 혼자 걷기가 으스스한 구간이다. 방심하다간 길을 잃을 위험도 있다. ‘통신 불통’이라는 푯말도 자주 눈에 띈다. 깊고 깊은 숲길이다. 비 오는 날이나 해 저무는 시간이면 올레 노선을 벗어나 도로 쪽으로 우회하는 게 좋다.

곶자왈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며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을 걷는 동안 숲속에서 딱 한 사람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그냥 지나쳤다. 좁은 숲길 커브를 돌았는데 갑자기 100미터 앞에 누군가가 보여 순간적으로 움칠했다. 자그마한 키의 여성 복장이다. 내 발자국 소리에 상대방도 약간 당황한 모양새다. 뒤를 돌아본 건 아니지만 멈칫 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상대방 걸음이 갑자기 빨라짐을 알 수 있다. 긴장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냥 뒤돌아보며 서로 인사 한마디 하면 자연스러울 텐데…. 혼자 아쉬워하며 뒤를 따랐다. 걸음이 빠른 내가 상대방을 쫓아가는 형국이라 난처했다. 맑은 날이었지만 좁고 침침한 숲속이다. 여성 혼자로는 충분히 긴장할 만도 하겠다.

“저기요~ 제가 먼저 앞질러 갈게요~”

뒤쫓아 오는 남성의 목소리에 상대방이 뚝 걸음을 멈춘다. 그리곤 숲길 옆으로 가만히 비켜선다. 얼른 지나가라는 뜻인가 보다. 다가가는 내 쪽을 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좀 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며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냈다.

“수고하십니다. 혼자 다니기엔 좀 으스스한 곳이군요.”

“…”

아무 대꾸가 없다. 고개 숙인 채 그냥 서 있기만 하는 것이다. 모자를 눌러썼으니 얼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상대의 무반응에 무안하기보다는 싸늘하면서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간다. 도망치듯 스쳐 지났지만 잠시 동안 뒤가 몹시도 켕겼다. 숲속에서 처녀귀신 만난 느낌이었다. 처음 제주올레를 종주하던 어느 봄날 오후의 풍경이다. 몇 년이 지났지만 11코스에서 만난 신평곶자왈 밀림 속에서의 그때 그 싸늘했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올레 11코스의 이곳은 제주 4대 곶자왈 중 하나인 한경-안덕 곶자왈 지대에 속한다. 14-1코스의 문도지오름 주변까지 아우르며 제주 섬 서부의 허파 구실을 하는 거대한 숲 지역이다. 섬 동쪽의 구좌-성산 곶자왈 지대와는 위치상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구조다.

특히 이 일대는 도내 유일의 곶자왈 도립공원까지 조성되어 있어서, 다른 3개 곶자왈 지대에 비해선 도립공원을 찾는 관광객들 출입이 압도적으로 많다.

15-A코스의 애월 곶자왈 지대는 4개 지역 중 면적은 가장 작지만 한라산과 가장 가까운 위치이면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에 분포한다는 특징이 있다. 해발 800m가 넘는 노꼬메오름에서 발원하여 애월읍 납읍의 난대림 지대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이 일대 난대림은 제주 서부 지역 평지에선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상록수림이다. 아직까지는 자연림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5-A코스에서 가장 친숙하면서 대표적인 곳으로는 납읍초 뒤편의 금산공원(錦山公園)을 들 수 있다. 한림항에서 코스를 출발하면 11㎞ 지점에서 금산공원을 만난다. 10000여 평 넓이에 펼쳐진 이 공원 일대는 난대림 곶자왈로서 천연기념물 375호로 지정되어 있다. 올레 코스는 공원 안을 돌아 나오는 300m에 불과하여 10분 정도면 충분하지만 조금 더 여유롭게 머물다 나올 필요가 있다. 공기 좋다는 제주도지만 곶자왈 숲 속에서의 심호흡은 청정 그 자체를 들이마시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앞서 만났던 11코스와 14-1코스에서의 곶자왈보다는 덜 거칠고 덜 험한 만큼 숲 전체적인 분위기도 좀 더 편안한 느낌을 준다.
 

 

곶자왈은 제주 섬에 생명의 물을 공급해주는 상수원 역할을 한다. 제주는 바다로 둘러싸였지만 정작 물은 귀하다. 삼다수는 유명해도 섬 지표면은 물기가 별로 없고 늘 말라 있다.

한라산에서 해안가까지 수십 개 하천들이 연결돼 있지만 비 많이 올 때나 하천이지 평상시엔 늘 바닥을 드러낸다. 제주의 삼다 중 하나인 구멍 숭숭 뚫린 돌들 때문이다. 화산석 현무암의 지질특성이 빗물을 지표면에 고이게 하지 못하고, 내리는 족족 땅 밑으로 새어들게 하는 것이다. 흡사 스펀지나 다름없는 토질이다.

이렇게 쉽게 지하로 스며든 빗물들은 자연 여과과정을 거치며 흐르다. 해안가에 이르러선 용천수(湧泉水)로 솟아난다. 고지대에서 내려온 수압에 못 이겨 지표 틈새를 찾아 분출되는 것이다. 옛 섬사람들은 이들 자연 샘물 주변으로 하나 둘 몰려들어 정착해 살면서 자연스레 촌락이 형성되곤 하였다. 용천수는 제주 섬 남부와 북부의 지리적 차이와도 연관이 있다.

한경, 한림, 애월, 조천, 구좌 등 북제주 쪽으로는 절벽이란 게 거의 보이질 않는다. 올레 12코스에서 산북으로 넘어와 15코스 종점인 고내포구까지 오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한라산과 이어진 대지는 멀리 오름들만 군데군데 보일 뿐 그저 완만한 경사를 이루다가 바다로 이어질 뿐이다.

산남인 서귀포시 쪽은 이와는 정반대의 대조를 보인다. 5코스 남원 큰엉에서부터 6,7코스 쇠소깍과 외돌개 앞 그리고 8,9코스 중문 주상절리와 박수기정과 용머리해안, 게다가 10코스 송악산 둘레까지 놓고 보면 온통 해안 절벽 투성이다. 완만한 산북과 거친 산남의 지세(地勢) 차이가 극명한 것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계곡과 하천을 통한 물 흐름의 많고 적음이다. 산북은 하천이라 해봐야 평상시에는 한결같이 메말라 있는 건천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산남은 다르다. 앞에서 본 6개 폭포 외에도 강정천, 안덕계곡, 돈내코 등을 통하여 늘 많은 양의 물이 흐른다. 산북과 산남의 강수량 차이도 하나의 원인이긴 하지만, 주로 곶자왈 면적의 많고 적음이 이런 물 흐름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게 정설이다.

제주도 면적의 6%를 차지한다는 곶자왈 숲은 70%나 되는 넓은 면적이 한라산 이북에 분포하기 때문이다. 산북의 대지에 모아진 빗물들은 대부분 지표보다는 지하로 스며들어 흐르다가 저지대 해안가에서 용천수로 샘솟는 것이다.

땅 밑을 흐르는 동안 여러 단계의 자연 여과 과정을 거치게 해주기에 제주 곶자왈은 제주 섬에 뿌리내려 살아가는 인간과 자연 모든 생명의 원천이요 저장 창고나 다름없다.

제주 섬의 대지를 으깨고 쪼개어 허물어나가는 개발의 광풍이 적어도 곶자왈 지대에서만큼은 향후에도 일지 않아야 하겠다.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