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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가 끝나면 가고 싶은 곳]우즈베키스탄 부하라, 내 마음의 보석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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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 나는 카라쿰사막을 건넜다. 섭씨 54도, 버스 밖 온 사위가 간유리처럼 흐릿하게 이글거렸다. 지평선이 보이는 아득한 사막 여기저기 사금파리처럼 빛이 번쩍였다. 필시 죽어서 흰 뼈로 남은 짐승의 흔적일 터. 어느 시인은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사막의 저 모래무덤을 파면 호박(瑚珀)이나 고여있는 옛 노래 몇 소절을 발견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시인의 그 땅은 누란(樓蘭)이라는 옛 이름, 사막의 여인은 지는 노을에 검은 거울을 품으며 ​죽어도 지아비의 머리칼에 드러눕는다고 했던가. 검은 사막의 저녁노을이 짙노랗게 드리울 무렵 부하라에 도착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2,500년 된 고도(古都) 부하라의 밤은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웠다. 당도한 호텔에 짐을 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지막한 도시가 통째로 하나의 보석상자였다. 밖으로 나와 라비하우즈로 가는 길에는 그림 속에서 나온 듯한 아름다운 여성과 소녀들이 지나다녔다. 내가 우즈베키스탄 샤마르칸트에 간다고 했을 때 남자친구, 여자친구 할 것 없이 '밭 매는 이효리, 말 모는 손예진, 시장에서 푸성귀 파는 손태영'을 볼 수 있을 거라 입을 모았었다. 사실이었다. 특히 레기스탄광장에서독립 20주년기념 공연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 소수민족 소녀들은 르느와르의 그림에서 나온 듯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역시 동서양의 실크로드의 접점답게 라비하우즈로 걸어갈수록 그곳 못지않게 부하라의 소녀들도 심지어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까지 신비롭게 아름다웠다. 라비하우즈는 부하라에 있었다는 백여 개의 인공연못 가운데 볼로하우즈와 더불어 구(舊)소련 시절 전염병 창궐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메워지는 변을 피한 곳이다. 그 호숫가, 백열등과 붉고 푸른 등을 건 나무와 노천카페들이 마치 알라딘의 붉고 푸른 루비와 에머랄드가 열리는 정원 같았다.

 

제라프샨강 연변의 오아시스에 자리잡은 부하라는 샨스크리트어로 뷔하라(수도원), 이슬람 시대 이후로는 부하라 샤리프(성스러운 부하라)로 불리며 기원전 4세기의 고대 문화에서부터 중세 문화까지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역사와 거의 완벽에 가깝게 보존되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628년 삼장법사 현장이 대당서역기에, 백년 후쯤 혜초가 왕오천축국전에 부하라를 안국(安國)으로 표기했다. 고선지 장군이 서역 원정에 나서 탈라스 전투를 치뤘고, 부하라 출신 안녹산의 난에서 토벌군을 이끄는 등 우리 민족과도 관련이 많다.

 

 

◆실크로드의 요충지 부하라

 

지정학적으로 부하라는 동유럽과 중동에서 중국을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관문으로 서역의 '좁은 목구멍' 같은 교역로 둔황과 흡사한 곳이다. 6세기 튀르크가 이곳에 성과 창고, 시장을 짓고 난 뒤 소그드인, 아랍인이 드나드는 본격적인 교역거점이 되었다. 그리고 9세기 최초의 페르시아계 이슬람 사만왕조의 수도가 되며 최대 번영을 누렸고, 이어 카라한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실크로드의 교역도시로 상업과 수공업이 크게 번성하고 학문과 과학이 발달하여 당시 세계 문화의 한 축을 이룰 정도였다.

 

 

일찍이 알렉산더대왕에 의해 헬레니즘문화를 맛본데다가 페르시아, 인도, 중국의 문화까지 영향을 받은 실크로드의 요충지 부하라는 10세 무렵 성훈학자 부하리, 의학자 이븐 시나, 수학자 콰리즈미에 의해 이슬람 최고의 학맥이 형성되었다. 특히 그 당시에 벌써 이븐 시나는 병리현상과 심리현상을 결부해 구체적인 치료법을 제시해 그의 저서가 16세기까지 유럽의학계의 주교과서로 채택되어 추앙받았다. 이븐 시나의 아래의 철학적 아포리즘은 지금 현재도 통용된다.

 

모르는 자, 그러면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피하라.

모르는 자, 그러면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는 어린아이다. 가르치라.

아는 자, 그러면서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잠들어 있는 자이다. 깨우라.

아는 자, 그러면서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현명한 자이다. 따르라.

 

 

◆칼란 미나레트,부하라의 상징

 

그러나 이 찬란했던 도시가 '나는 너희들을 처벌하려고 신이 보낸 사람이다!'라고 외치는 칭기스칸에 의해 1220년 초토화되는 환란을 겪게 된다. 중앙아시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만왕조의 샤마니묘당은 아르코고성처럼 몽골군에 짓밟혀 무참히 파괴되고 살육이 자행되는 등의 참화는 피했지만 천 년 이상 흙에 파묻혀 잊혀진 건물이었다가 1925년 발견되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46m인 거대한 칼란 미나레트는 그 높은 탑을 쳐다보던 칭기스칸이 쓰고있던 모자가 떨어져 줍게 되자 자신을 머리 숙이게 한 비범한 탑이라하여 그의 손에서 살아남아 현재까지 부하라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칭기즈칸이 닥치는 대로 부하라를 파괴하여 몰락한 부하라가 재건된 것은 앞서 말한대로 실크로드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1370년 다시 각지의 상인들이 모여든 부하라를 정복한 것은 티무르였다. 다행히 칭기스칸의 후예를 자처하며 그를 추앙했던 티무르는 정복지마다 새 문화를 건설하는 정복자인지라 한때 약 350개의 모스크와 100여 개의 메나리세(이슬람 학교)를 부하라에 세웠다.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140여 개의 역사적인 건축물은 거의 티무르 시대의 산물이다.

 

 

1506년 도시는 다시 우즈베크에 점령되어 부하라칸국의 수도로 20세기 초까지 역할했다. 달과 별에게 바치는 시토라이 모히하사 여름궁전은 1911년 러시아가 복속시킨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오래 남은 부하라토후국 왕을 위해 지어준 것이다. 달과 별 장식이 가득한 이 궁전 왕의 침실 창밖에는 아름다운 하우즈(인공연못)가 있는데 궁녀 300명이 물놀이를 하면 왕은 마음에 드는 궁녀에게 사과를 던지고 그 사과를 받은 그녀와 밤을 함께 보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부하라는 1950년대 말에 가까운 곳에서 천연가스 매장지가 발견된 뒤 급속도로 발전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여러 번 들르게 되는 도시가 있다. 부하라는 단 한 번 들른 곳이지만 마음속에 담겨 잊혀지지 않는 도시다. 곧 이 끔찍하기 짝이 없는 코로나가 가고 나면 나는 가장 먼저 부하라로 달려갈 것이다. 신밧드가 양탄자를 타고 내 머리 위에서 불꽃을 터뜨리는 듯한 부하라의 밤 바자르에서 세밀화도 차근차근 넘겨가며 보고 싶고, 욥의 우물(챠슈마 아윱)에 가서 다시는 코로나 같은 역병이 생기지 않기를 나의 가장 큰 소원으로 빌고 싶기도 하다.

 

 

아, 이맘과 랍비가 평화롭게 함께 길을 가는 라비하우즈로 가서 두 마리의 봉황이 태양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는 나지르지반베기 메나리세와 시나고그(유대 학교)가 공존하는 그 골목길도 아무 걱정 없이 걸어 다니고 싶다. 거기서 루미, 오마르 카이얌, 하페즈 같은 고대 시인들의 시집을 읽다가 어느 날은 훌훌 털고 파미르산맥의 수원(水原)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 사이 붉은 키질쿰사막을 건너 히바나 샤마르칸트를 떠돌아 다녀봐도 좋지 않겠는가.

 

 

박미영(시인)

 

특집부 weekl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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