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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부산굴記-매몰된 역사③] 원도심 구석구석 '피난 동굴'…'그들’만의 대피소

부산 중·동구 일대 방공호 다수 발견
일제강점기 일본인 피난용으로 쓰여
한국전쟁 시기엔 피란민들 삶의 터전
다크투어리즘 명소로 부활 고민해야

광복 76주년을 맞아 <부산일보>는 부산 도심 곳곳에 방치된 '일제 동굴'을 재조명한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은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부산에 해안 포진지, 방공호, 광산 등 동굴 수십 곳을 뚫었다. 태종대 지하벙커, 망미동 구리광산 등 지금도 새로운 동굴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굴곡진 부산 근현대사를 간직한 이 동굴들은 쓰레기 더미로 뒤덮이고, 입구가 콘크리트로 막히는 등 방치되고 있다. 강제노역 등 동굴 속 ‘아픈 이야기’도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취재팀은 부산 동굴 안에 매몰된 지역의 역사를 땅 위로 드러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후대가 몸소 경험하고 깨우칠 수 있는 다크투어리즘(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여행)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부산 원도심 일대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의 ‘지하 요새’였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대비해 부산에 근무하는 일본인 관료, 학생, 병사 등을 위한 ‘피난용 방공호’가 도심 곳곳에 뚫렸다. 전투기 굉음이 울리고 포탄이 오가는 전쟁통 속에서 주민들은 오로지 ‘그들’을 위한 피난처를 부산땅 아래에 지었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지하 요새는 한국전쟁 시기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동굴 집’이 되기도 했다.

 

■ 산복도로 중턱 '100평 방공호'

부산 중구 동광동 코모도호텔 뒤 산복도로. 왕복 2차로 도로 옆 한 주택 아래 반지하 입구가 2개 뚫려 있다. 10m 정도 거리를 두고 똑같이 나 있는 입구는 동굴로 연결됐다. 격자형 내부에는 크고 작은 방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방 하나는 5~10평 남짓이었으나, 전체 동굴 규모는 100평에 달했다.


 

 

방들은 암실과 같은 중앙 통로 양쪽으로 나 있었다. 식수용 우물, 천장 환풍구 등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이 동굴들이 일제강점기 말 만들어진 '방공호'로 추정한다. 땅굴 내부를 격자형으로 만든 것은 폭격에 한쪽이 무너질 것에 대비한 설계이고, 대피를 위해 2개의 출입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은 "방공호는 대피용이 있고 중요한 자료 보관용이 있다"면서 "동광동 100평 땅굴은 대규모 인명 대피용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동굴은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광복 이후 부산의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길 잃은 피란민이 거주한 ‘지하 마을’이었고, 1953년 11월 부산역전 대화재 때 판자촌에 살던 피란민이 긴급 대피해 목숨을 건진 장소이기도 했다. 당시 불길은 부산역을 모두 태울 정도로 거세게 치솟았지만, 포탄을 대비해 만든 두꺼운 동굴벽은 뚫지 못했다.


 

 

동굴 윗집에 사는 천성열(67·동광동) 씨에 따르면 피란 당시 동굴 내부에는 합판을 쳐 놓고, 많게는 20가구 가까이 살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까지만 해도 한 노모와 아들이 거주했다고. 천 씨는 “동굴 주민은 갈치 같은 생선을 입구에서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며 "집이 비워진 뒤에는 관리가 안 돼 쓰레기들로 가득하다가 1~2년 전쯤 구청 도움으로 깨끗하게 치웠다”고 말했다. 땅굴 옆 상인 박동규(66·동광동) 씨는 “거주민들은 수도가 없어서 근처 우물까지 양동이 짊어지고 가서 물을 퍼왔고, 화장실은 건너편 공중화장실을 썼다"면서 "동굴 안에 불이 안 들어올 때는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놀기도 했다"고 말했다.

 

■ 끝없는 동굴들

이와 유사한 동굴은 부산 중·동구 등 원도심 일대에 즐비하다. 동광동 동굴 건너편 주택에는 집 안과 연결된 대형 동굴이 있다. 격자형으로 나뉜 동굴 내부는 반원 형태의 입구들이 이리저리 나 있는 구조다.


 

 

부산 대표 관광지 '용두산공원'의 한 주차장 담벼락에도 2개의 방공호가 나란히 뚫려 있다. 하나는 4~5평 남짓 작은 방이 전부인데, 다른 동굴은 'ㄷ자형'으로 길이가 최소 30m 이상이다. 좁은 통로를 지나면 해안절벽에나 있을 법한 큰 바위가 사방을 두른다. 동굴 끝은 상부가 무너져 내린 듯, 흙과 바위가 널브러져 길이 막혔다. 현재 이 동굴은 빗물이 성인 허리 높이 만큼 고여 있는 등 안전사고 우려로 폐쇄된 상태다.

 

용두산공원 일대에는 탄약, 기밀문서 보관용 등 다양한 역할의 방공호가 7~8개 더 있지만, 시멘트로 입구가 막혔거나 공사로 인해 입구로 통하는 길이 대부분 끊긴 상태다.

 


이들 방공호와 달리 지자체에서 정비를 완료해 관광자원화한 동굴도 있다. 동구 수정터널 아래에는 10여m 간격을 두고 입구가 2개 뚫려 있는 방공호인 좌천동굴이 있다. 좌천동은 일제강점기 일본 군사 물자를 수송하던 부산진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공습 위험이 컸던 곳이다. '동광동 방공호'처럼 한국전쟁 때는 피란민들이 살았고 이후에는 '구 동굴집'이라는 상호의 주막으로 쓰였다.

 

 

현재 좌천동굴은 바닥에 흰색 무드등, 천장에는 파란색 조명이 설치돼 누구나 동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천장에는 별 모양의 장식물이 여기저기 붙어 있으며, '자개 전시관'도 있다. 가구거리로 유명한 좌천동은 예전부터 '자개(금조개 껍데기를 썰어 낸 장식용 조각) 동네'로 알려져 있다. 동굴 안은 자개로 만든 도자기와 학·소나무 무늬 조형물이 곳곳을 장식했다.

 

 

 

동구청 전석중 관광개발계장은 "동굴 내부 습기로 인해 특별 제작한 자개 전시관 등이 계속 부식되고 있어 해결할 방안을 찾는 중"이라면서 "동구 전통주인 '우리술 이바구' 홍보관을 계획하는 등 좌천동굴과 지역문화를 알리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좌천동굴과 불과 1km 떨어진 범일동 한 골목에는 현재 식당으로 사용 중인 동굴도 있다. 'ㄱ자형'으로 수십m가 뚫린 이곳엔 지금도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에어컨 없이도 서늘한 이색 식당으로 꼽힌다. 식당 사장인 김진영(51) 씨는 “할아버지께서 이 부지를 사들여 집을 짓던 중 처음 발견됐다”면서 “할아버지, 삼촌, 그리고 저까지 3대째 가게를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남구 문현동에는 ‘일제의 보물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방공호가 있다. 문현동 주택가 뒤편 한 언덕 아래에 뚫린 동굴은 높이 2m, 너비 5m로, 규모가 상당히 크다. 동굴 형태는 'U자형'으로 입구가 2개 뚫렸으며, 동굴 중간에는 5~6평 남짓한 방 같은 공간 2곳이 있다. 이 동굴에서는 과거 일본이 패망하며 중국에서 훔쳐 온 금괴 등 보물을 묻었다는 실체 없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 원도심 방공호, 잊혀져 가는 '아픈 유산'

 

부산항을 끼고 있는 원도심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본거지였다. 과거 부산청, 부산헌병대, 일본 신사(神社) 등 주요 시설도 있었다. 동굴뿐 아니라 부산항에서 일본인 신사로 가는 계단, 그 계단에 박힌 일본인 묘비석, 배수로가 있는 독특한 건물 축대 등 일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원도심 방공호는 평탄화부터 벽을 세우는 작업까지 한국인이 상당수 동원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당시 학교가 있던 자리 위주로 방공호가 뚫렸는데, 대부분 일본인 학생이 많이 다니는 학교 위주로 구축됐다. 김한근 소장은 "동굴이 있는 주차장 부지는 옛 소학교가 있던 곳으로, 일본인 학생과 교사 대피를 위해 굴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시 부산항 일대에 연합군의 B-29 등 폭격기가 출몰하니, 일본군이 군데군데 방공호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도심 방공호는 부산만의 아픈 역사이지만, 도시개발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용두산공원 아래 한 방공호는 공사로 입구가 막혔고, 동굴로 통하는 길도 끊겼다. 보수동 책방골목 옆에는 터파기 공사 도중 우연히 일제강점기 방공호가 발견됐지만, 보존 대책 없이 방치된 상태다. 불과 몇 년 전 옛 헌병대 부지에서 발견된 개인용 방공호는 사유지에 속해, 입구로 통하는 길을 지금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 이 동굴을 목격했던 한 주민은 "높이가 180~200cm 정도로 성인 한 명이 이동할 정도의 '탈출구'가 건너편 집에 뚫려 있었다"면서 "동굴 길이만 수십m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중구 한 호텔 부지 인근에는 옛 일본군 요새사령부에서 부산 앞바다로 이어지는 대규모 지하 통로가 발견됐다는 증언도 나왔지만, 결국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채 사라졌다. 호텔 터파기 공사 당시, 수십m 떨어진 건물 두 채가 갑자기 내려앉았는데, 당시 무너진 건물의 주인은 "전문업체 카메라를 지하로 내려서 보니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면서 "산복도로 위쪽과 부산역 쪽으로 길이 나 있었는데, 예전에 우리 가게 앞은 바다였다"고 증언했다.

 

전문가들은 여기저기 방치된 동굴들을 지금부터라도 하나둘씩 발굴해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아대 사학과 전성현 교수는 "그동안 일제강점기 시설물은 당장 필요한 용도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방치되기 일쑤였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실태조사와 보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