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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바위 뚫어 만든 관개수로…척박한 땅에서 쌀 생산

(100) 곤밥 하르방 김광종
1832년에 착수해 10년 작업…바위에 불 붙여 균열 만드는 방식
후대 농지 개척 본보기…도채비빌레 일대 ‘김광종로’로 지정돼

 

질토래비 ‘제주 역사·문화의 길을 열다’ 연재가 어느덧 100회를 맞이했다. 제주의 역사문화 공유에 대한 가치를 응원해 주는 독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도 제주의 숨은 비경과 비사를 찾아 지면으로 소개하는 일에 기꺼이 소임을 다하련다.

▲황개천 관개수로(灌漑水路)

관개수로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논밭에 대는 통로이다. 안덕면 화순리(번내) 610번지 일대인 황개천을, 1653년 편찬된 탐라지에는 한개(大浦)로, 18세기에 발간된 제주읍지에는 항포(抗浦)로 표기되어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조간대(潮間帶)인 이 지역을 마을에서는 ‘황개천·개창·항개창’이라 부른다.

이 지역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김광종(1792~1879)이다. 김광종은 도채비빌레라는 지대 주변의 암반을 뚫어 만든 수로를 이용하여 황개천 일대를 5만여 평의 논밭으로 만들어, 주민들이 쌀밥인 곤밥을 먹을 수 있게 한 선각자이다.

이러한 연유로 그는 ‘논하르방’, 최근에는 ‘곤밥 하르방’으로 불리고 있다. 밭을 논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바꿨다는 의미로, 수로가 끝나는 지점을 ‘도채비빌레’라 부르기도 한다.

당시, 삽·따비·곡괭이·정·망치 등을 이용해 절벽 밑으로 수로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공사였다. 그럼에도 김광종은 견고한 바위에 장작과 독하게 빚은 고소리 술로 불을 붙인 다음 찬물을 끼얹는 방법으로, 온도 차를 이용하여 바위에 균열이 가게 한 후, 징 등으로 때려 수로를 만들었다.

총연장 1100m에 이르는 수로를 10년 만에 뚫은 김광종은 1841년 9월, 5만여 평의 논에 물을 대어 논밭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김광종영세불망비

제주목 구우면 저지리(닥모루)에서 태어난 김광종은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대정향교를 오가며, 산방굴사에서 떨어지는 물인 석간수를 보면서 바위를 뚫어 수로를 만든다는 착상을 하였다고 전한다. 향교에서의 학업을 마친 그는, 범선에 소와 말과 양태 등의 제주의 특산물을 실어 한경면 용수리의 지삿개 포구를 통해 전남 영산포 등지로 교역하러 오갔다.

몇 년 후 육지에서 구입한 소금과 쌀·포목 등을 제주에서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 제주와 육지를 다니며 교역을 하며 호남 영산강 일대의 관개수로 개척 사례를 돌아본 김광종은, 1832년부터 주민들과 함께 안덕계곡을 흐르는 물을 가두는 도막은소를 따라 도채비빌레를 지나 황개천 갯가에 이르는 관개 사업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김광종이 황개창 근처에 세를 내어 구입한 세칭 ‘세오래왓’(화순리 423번지)이라는 밭에 움막을 지어 살면서, 전 재산을 투자하며 10년 동안 수로 굴착 공사에 집요하게 매달려 드디어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김광종은 주민들과 함께 조성한 논밭에서 쌀을 생산하는 한편, 물세를 받아 자본을 축적하는 모임인 답회(畓會)를 조직·운영한다. 1938년 답회 회원과 후손들이 도채비빌레 위에 김광종영세불망비(金公光宗永世不忘碑)를 세웠다.

▲제주의 3대 수로 개척자

김광종의 농지개척 사례는 후대에 의한 새로운 개척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말의 채구석 군수는 천제연의 물을 중문 베릿내로 끌어내어 논밭을 만들었고, 일제강점기에 애월읍 신엄리의 백창유는 어승생 물을 애월읍 광령리로 끌어대어 논밭을 만들었다. 이들을 제주의 삼대 수로 개척자로 일컫는다.

자연이 내린 고난을 극복하고, 역경을 지혜로 승화시켰던 제주 선인의 강인한 정신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도로명 ‘김광종로’ 드디어 생기다

화순리 마을회의 제안으로 올해부터 ‘도막은소’에서 도채비빌레 600여 미터 지경을 ‘김광종로’로 불리게 되었다. 김광종로의 탄생은 역사문화의 부활이다. 선인들의 공덕과 지혜가 후손들에게 이어져 공유될 때 그 삶은 더욱 윤택하고 풍성할 수 있을 것이다.

김광종 공덕비가 있는 도채비빌레 동산에는 흙으로 쌓인 자그마한 동산도 있다. 논골 농사 중 채취한 흙으로 쌓은 동산이다.

선인들의 지혜 중 하나는, 물길인 논골을 지대가 높은 곳에 설치하여 계단식 논밭마다 풍부한 물이 흐르게 조성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수로를 논골이라 부르는데, 이곳 주변에는 시멘트로 덮인 논골의 흔적이 여럿 남아 있다. 그만큼 안덕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예전에는 풍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0여 년 전 서귀포시에서는 김광종이 개척한 수로 관람을 위하여 산책로와 전망대를 조성하였으나 그동안 방치되어 안전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보수공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산책로 데크 기둥을 수로에 설치하였으니, 이는 오히려 수로를 파괴(?)하는 시설을 한 셈이다. 안덕계곡과 월라봉을 연계하여 탐사할 수 있는 출렁다리가 조성되어 있지만, 관개수로와는 연결이 되어 있지 않다.

김광종의 관개수로와 월라봉을 연계할 수 있는 다리 또는 데크가 설치된다면 주변의 빼어난 풍광을 관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인들의 지혜를 공유하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