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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서원철폐정책 당시 무성서원의 역할 가늠할만한 현액 발견

임실군, 무성서원 중수기 현액 1점 기증받아
현액 1907년으로 당시의 혼탁한 세상 속 무성서원의 역할 추정내용 담겨
현재 무성서원 흥선대원군 서원철폐이후 현액 없어. 그만큼 가치 커
전 만경군수 정인희 작품. 가로 92, 세로 25, 두께 2㎝
현액 크게 3가지로 요약. 초반부 최치원 칭송, 중반부 글을 작성하게 된 계기, 후반부 무성서원의 역할
임실군, 정읍시와 협의 후 정읍시에 기증예정

 

흥선대원군(1820~1898)의 서원철폐정책 당시 정읍 무성서원의 역할을 짐작해볼 수 있는 현액이 발견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실군은 ‘무성서원 중수기 현액’으로 추정되는 현액 1점을 확보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현액은 임실출신의 한 인물이 “이 작은 것이 무성서원의 발전에, 전북 문화풍토에 작은 울림이라도 일으켰으면 한다”면서 임실군에 기증했다.
 

 

기증자는 1988년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근무 중 서울 황학동의 한 수집상으로부터 구입해 보관하던 중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임실군 학예사의 권유에 따라 기증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증된 현액은 1907년에 제작된 것으로 가로 92, 세로 25, 두께 2㎝ 정도의 송판에 흰색 글씨로 전 만경군수 정인희가 쓴 것이다. 해당 현액은 일부 세월의 흔적으로 지워진 것을 제외하곤 대체로 온전한 상태다. 현재 무성서원의 현액은 서원철폐정책 이후의 현액이 존재하지 않아 그 가치는 더욱 큰 것으로 보인다.

현판의 내용은 크게 3가지 틀에서 요약해볼 수 있는데, 초반부는 ‘최치원을 칭송하는 내용’, 중반부 ‘글을 작성하게 된 이유’, 후반부 ‘당시 무성서원의 역할’ 등이다.

정인희는 “우리동방의 빛나는 문헌들의 근원이 모두 문창공(최치원)으로부터 발원한 것이며, 선생은 천하를 다스리는 재주가 있는 사람으로 중국을 주유했고,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어찌 때를 만나지 못해 펼치지 못했는가. 마침내 이를 시행하고 남았지만 이 땅에 거문고를 타면서 읊었던 음율이 천년을 이어 지금까지 우거져 있는 것이 가이 알수 있도다”라고 최치원을 칭송했다.

해당 내용은 신라의 골품제로 인해 제 뜻을 펼치지 못했던 최치원을 안타까워하고, 그의 능력과 학문이 무성서원을 통해 계속해서 전승됐다는 내용이다.

중반부에서는 ‘1904년 원임 유종규, 김선술이 자신에게 글을 부탁해 작성됐고, 성재공 후손 정위 김병욱이 힘을 다해 마치 집사처럼 중수하는 일에 앞장섰다’고 써져있다.

후반부에는 ‘세상의 변고가 심하고 이단이 횡류하는 때에 능히 안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고, 하물며 선현을 존경하고 도를 지키려는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서원의 첨원들이 분파가 달려 물결치는 것을 사사로운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칠현의 학문과 의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당시 세상의 변고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정책과 동학농민혁명, 외세들의 침입 등이 발생하던 시기를 뜻하고, 이단이 횡류하는 때는 천주교, 동학 등 다양한 종교가 유입되고 발생하면서 유림이 밀려나가는 때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철배 임실군청 학예사는 “이번 기증받은 현액은 당시 혼란한 정세 속에서도 무성서원은 전통을 지키고, 유학을 이어가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해왔을 것으로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며 “이번 현액의 가치는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한편, 임실군은 해당 현액을 연구·분석 한 후 내년 정읍시와 협의를 통해 기증할 방침이다.

최정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