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선감학원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를 한 얼마 후 진성(62·가명)씨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진성씨와 함께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피해자 경환(가명)씨였다. 경환씨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진성아, 혹시 주소지를 너네 집으로 옮겨놓을 수 있을까?" 전화를 사이에 두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진성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거든요. 원래 경환이는 여기 같이 살다가 광주광역시로 이사를 갔어요. 근데 경기도가 피해자 지원을 한다면서 경기도 거주자만 하겠다고 하니. 이게 올바른가요?" 진성씨와 경환씨 모두 국가가 용인하고 경기도가 운영한 '선감학원' 피해자였다. 60년도 더 지나 겨우 경기도지사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았고 마음 속 응어리가 조금 풀리나 했는데, 경기도민인 진성씨는 지원받을 수 있고, 광주광역시에 사는 경환씨는 받을 수 없다. "나라에서 사과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권유린을 실행한 경기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맞아요. 김 지사가 눈물 흘리고 사과한 것이 진심어린 모습이었다면 경기도민으로만 국한하지 않을 거예요." 비단 이들만의 사정이 아니다. 우리가 만난 진성씨 동생 진동(가명)씨, 하수명씨 등 피해자 대부분과
아들은 아버지가 늘 가엾고 안쓰러웠다. 뒤엉켜버린 삶의 실타래를 끝끝내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였다. 행복보다 불행, 기쁨보다 슬픔이란 단어와 더 가까운 존재였다. 아들의 눈에 비친 고(故) 이대준씨는 한평생을 벼랑 끝에 서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살았다. 선감학원은 대준씨의 일생을 지독하리만큼 꼬이게 만든, 그를 죽음의 문턱으로 내몬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1958년생인 대준씨는 아홉 살 나이에 길거리에서 걸식을 한다는 이유로 단속반에 검거돼 선감학원으로 끌려갔다. 가족이 있는 아이들도 무작위 수집돼 선감도에 격리되는 판국에, 부모가 없던 대준씨는 단속반의 실적을 채울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러나 대준씨는 선감도로 보내지기 전까지 수원시의 한 고아원에서 무탈히 생활하고 있었다. 부랑아가 아니었던 것이다. 수원 한 고아원에서 무탈히 생활하던 아버지 걸식한다는 이유로 검거돼 선감학원 끌려가 노역 시달리고 굶주리고… 매 맞고 기합받고 친구와 목숨 걸고 탈출한 끝에 섬에서 벗어나 진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부랑아로 살았든, 그렇지 않았든 선감도에 수용된 원아들은 모두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대준씨도 노역에 시달리고, 굶주렸다. 때가 되면
'우울, 고독, 생활고'. 하수명씨의 쉰 아홉 인생을 압축하면 온갖 부정의 단어들로 얼룩진다. 수명씨에겐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고,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5년'이 있다. 11살에 부산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다 전원돼 13살에 안산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그 5년이다. 5년은 59년 삶을 우울에 시달리게 만들었고 평생 외톨이로 고독하게 했으며, 생활고를 겪게 했다.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에 수감된 기억들에서 좀 벗어나야 하는데, 그 생각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요. 그때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혀있으니 밝은 생각을 하기 힘들고요. 거기에서부터 내 인생 모든 게 이렇게 (잘못)됐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붙잡혀가 유년기 5년간 수용 생활 탈출후 수십년간 고통스러운 기억 수명씨는 그저 '남에게 민폐 안 끼치고 깨끗이 죽는 것'이 남은 인생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 곳에서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는 매 순간 그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랜 시간 기억의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이제는 헤어나오기 힘들 수준의 우울증을 겪고 있다. 가족도 없고, 왕래하는 친구도 없이 홀로 살아온 수명씨는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일감을 찾아다니는 게 인생의 전부다. "선감학원
우리는 확인하고 싶었다. 선감도에 소년을 가두고, 선감학원을 운영하며 소년의 인권을 유린한 주체가 누구인지. 경기도가 보유한 선감학원의 기록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우리는 그것이 경기도, 나아가 국가가 자행한 일임을 두 눈으로 명확히 확인했다. 우리는 들어야 했다. 지옥도라 불린, 그 섬에 갇혀 유년을 보내야 했던 소년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온전하지 못한 삶의 원류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중년이 된 소년들에게 직접 들어야 했다. '지옥도'에서 유년 보낸 사람들 중년·노년이 되어도 불안·공포 선감학원 두번째 이야기, '나는 부랑아가 아닙니다'는 그렇게 기획됐다. 소년들은 말한다. 나는 부랑아가 아니었다고. 가난했지만 함께 온기를 나누는 가족이 있었고 나이에 맞게 성장하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었다. 선감학원에 가지 않았다면 지극히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당신들과 같았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소년들의 유년을 송두리째 흔든 선감학원의 기억은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어서도 그들을 불안과 공포에 잠식당하게 했다. 부랑아가 아니었지만, 부랑아가 되었고 지금도 부랑아로,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듯 살아가는 그들은 '선감학원 피해자'들이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