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가 시민들의 방역 의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추석 연휴 이후 코로나 확진자 수가 연일 광주에서만 40명을 오르내리고 있는 엄중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경각심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 실정이다. 방역지침에 따라 심야 시간대 주점이나 음식점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상당수 시민들이 잔디밭이 있는 캠퍼스나 체육관, 근린공원 등에서 매일 밤늦은 시각까지 술자리를 갖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10대와 20대들은 심야 시간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 ‘헌팅’을 하는 것이 새로운 풍속으로까지 여기고 있는 상황이다. 추석 연휴 기간 광주 염주체육관 야외 잔디밭을 방문한 20대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아 한층 시민들의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시민들이 여전히 많았다. 지난 24일 밤 전남대 도서관 앞 잔디광장에는 삼삼오오 짝을 이뤄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는 젊은이와 시민들이 무려 300여 명에 달했다. 나름 방역수칙을 지킨다며 3~4명 정도로 짝을 이뤄 서로 거리를 둔 채 자리를 잡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가 합쳐지고, 일부는 ‘헌팅’을 하느라 다른 사람들 모임에 섞이는 등 5인 이상 집합을 어기
5·18민주화운동 3공수여단 11대대 4지역대장 출신 신순용(72·80년 당시 소령)씨가<2017년 11월 13일 광주일보 1·3·6면> 지난 21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다.신 소령은 지난 2017년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18당시 ‘시민군 3명을 사살해 암매장했다’고 증언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국립5·18민주묘지를 직접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신 소령은 이번 사죄방문의 계기로 최근 각종 언론에 계엄군의 증언과 용서가 잇따르고 있는 점, 최근 개봉한 ‘아들의 이름으로’ 영화 관람한 점 등을 꼽았다. 신 소령이 최근 관람한 아들의 이름으로 라는 영화는 5·18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특전사 장교가 진정한 사죄를 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양심선언과 사죄를 촉구한 한 편의 영화가 현실에서 계엄군의 사죄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광주와 5·18을 사회적·역사적 의미가 담긴, 세대를 초월한 ‘문화’로 승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신 소령은 자진해서 5·18기념재단 고백과 증언센터 측에 사죄방문을 요청했다.5·18민주묘지를 방문한 신 소령은 ‘민주의 문’의 방명록에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들의
1980년 계엄군의 엄혹한 언론 통제 실상을 알 수 있는 방송원고가 41년 만에 공개됐다.17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에 따르면 1980년 당시 전일방송(VOC) 이용호 뉴스부장은 1980년 6월 4·5일자 전일방송 ‘뉴스의 현장’ 방송원고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했다.전일방송은 ‘광주일보’의 전신인 ‘옛 전남일보’의 계열사로, 전남 뿐 아니라 전북에서도 청취가 가능했다.이 부장의 방송원고는 당시 전일방송 오후 6시 프로그램이던 ‘뉴스의 현장’에 사용할 내용으로, 계엄군의 요구로 만들어졌다. 당시만해도 생방송의 경우 원고 없이 방송이 이뤄졌다는 게 이 부장 설명이다. 이번에 공개된 원고는 총 13장으로, 전일방송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원고지에 1~6으로 페이지 번호가 매겨진 원고 한 부와 7페이지까지 매겨진 원고 한 부 등 2부다.방송원고는 계엄군의 검열로 원고 곳곳에 빨간 줄이 ‘죽죽’ 그어져있다. 잘려나간 내용도 5·18의 상황을 기재한 웬만한 내용은 모두 들어내 5·18의 실상을 축소하고 삭제하기 위해 애쓴 것으로 보인다는게 5·18기록관 권도균 기록연구사의 설명이다.원고 중 ‘그 때 그 현장의 줄지어 선 헌혈의 대열을 뇌리에 새기며 병상의 일
41년 전 5월 27일 새벽, 최후항쟁지인 옛 전남도청 진압 작전에 나섰던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향해 쏜 M16 총탄이 나왔다.<2020년 12월 29일 광주일보 6면> 계엄군의 유혈 진압작전 상황을 유추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은 13일 옛 전남도청에서 회견을 열고 “옛 전남도청 내·외부에서 535개의 탄흔을 발견했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도청복원단은 535개 중 10개 탄흔에는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총탄(탄두) 10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10개의 총탄은 1980년 당시 옛 전남도청 내 서무과 벽(8개)과 경찰국 외벽 2곳에 박혀있었다. 복원단은 이 중 5개(서무과 3개·경찰국 2개)의 탄두를 빼내 분석한 결과, 서무과 탄두의 경우 1980년 당시 계엄군이 사용한 M-16 소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판단했다. 나머지 525개 탄흔 중 71개는 총탄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탄흔이 유력하다는 게 복원단 설명이다. 복원단은 이외 454개 탄흔에 대해서도 탄흔으로 볼 만한 흔적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들 탄흔에 대해서는 잔존 성분 검사 등 추가 검증을
16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머물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불이 났다. 노동자들 모두 대피해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과 1시간 여 만에 길이 50m 가량의 비닐하우스가 모두 탔다는 점에서 새벽에 불이 났다면 자칫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특히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살고 있던 이들에 대한 열악한 주거 실태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의 무책임한 관리 실태에 대한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해 경기도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외국인 노동자 사건 이후에도 광주·전남지역 1만1000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60% 외국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어 외국인 인권·건강권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비닐하우스’에 외국인 16명이 살아도 묵인하는 정부=18일 광주북부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밤10시 50분께 광주시 북구 용두동 한 농원 비닐하우스에서 화재가 발생, 1시간 20여분 만에 진화됐다.비닐하우스는 캄보디아와 네팔 출신 외국인노동자 16명이 숙소로 사용하는 곳으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3개 동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경찰과
“시민 여러분 지금 우리 형제 자매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집에서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습니까? 도청으로 나오셔서 우리 형제 자매들을 살려 주십시오.” 지난 1980년 5월, 거리방송을 통해 시민 참여를 독려했던 전옥주(본명 전춘심)씨가 지난 16일 밤 별세했다. 향년 72세. 전씨는 영화 ‘화려한 휴가’ 중 이요원씨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전씨는 차명숙씨와 함께 5·18민주화운동 항쟁 초기(5월18일~21일),차량 위에 올라 확성기 등으로 당시 상황을 알리는 가두방송을 하며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당시 전씨의 방송은 대학생 중심의 시위를 범시민적 항쟁으로 발전시키는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씨는 이 때문에 5월 22일께 계엄군에게 체포됐다. 체포된 뒤 겪었던 지독한 고문 때문에 그는 트라우마로 힘든 일생을 보내야 했다.당시 보안대는 전씨를 체포한 뒤 간첩으로 몰기 위해 폭언을 퍼붓고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 온갖 고문을 했다.열흘 동안 잠도 재우지 않았고 화장실도 보내지 않았다. 가슴에 총을 겨누고 잔디밭에서 용변을 보라고 하는가 하면, 고문으로 인해 팔이 부러지고 온몸이 부어오르며 하혈이 심한데도 치료조차 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