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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5·18 가두방송’ 주인공 전옥주씨 별세

“광주시민 여러분~” 그 외침 남기고 하늘로
항쟁 기간 시민 독려 앞장
영화 ‘화려한 휴가’의 모델
간첩으로 몰려 옥고 치르고
모진 고문에 평생 후유증
5년전부터 파킨슨 병 앓아

 

“시민 여러분 지금 우리 형제 자매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집에서 편안하게 주무실 수 있습니까? 도청으로 나오셔서 우리 형제 자매들을 살려 주십시오.”

지난 1980년 5월, 거리방송을 통해 시민 참여를 독려했던 전옥주(본명 전춘심)씨가 지난 16일 밤 별세했다. 향년 72세.

전씨는 영화 ‘화려한 휴가’ 중 이요원씨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전씨는 차명숙씨와 함께 5·18민주화운동 항쟁 초기(5월18일~21일),차량 위에 올라 확성기 등으로 당시 상황을 알리는 가두방송을 하며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당시 전씨의 방송은 대학생 중심의 시위를 범시민적 항쟁으로 발전시키는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씨는 이 때문에 5월 22일께 계엄군에게 체포됐다. 체포된 뒤 겪었던 지독한 고문 때문에 그는 트라우마로 힘든 일생을 보내야 했다.

당시 보안대는 전씨를 체포한 뒤 간첩으로 몰기 위해 폭언을 퍼붓고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 온갖 고문을 했다.

열흘 동안 잠도 재우지 않았고 화장실도 보내지 않았다. 가슴에 총을 겨누고 잔디밭에서 용변을 보라고 하는가 하면, 고문으로 인해 팔이 부러지고 온몸이 부어오르며 하혈이 심한데도 치료조차 해주지 않았다.

전씨는 당시 상황을 “수치심, 공포와 싸우는 시간들”이라고 회상한 바 있다.
 
전씨는 포고령 위반과 소요사태 등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수감중 이듬해인 1981년 4월 사면, 출소했다.

전씨의 몸·마음은 이미 고문의 후유증과 트라우마로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당시의 트라우마로 전씨는 수시로 악몽에 시달렸고 밤에도 자다가 느닷없이 뛰쳐나가는 이상 행동도 보였다.

수사기관의 미행·도청 등 감시도 계속됐다. 거주지에서 4㎞를 벗어나면 경찰서에 신고해야 했고, 느닷없이 수사관이 집에 들이닥쳐 집기류를 헤집어 놓는 것도 다반사였다.

전씨는 이런 상황에도 5·18 진상을 알리고 계승하기 위한 활동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1988년 5·18 청문회 증인으로 나서 군사 정권 관료들의 거짓 진술을 뒤집는 5월 항쟁의 실체를 낱낱이 증언했다.

그는 5·18여성동지회를 조직하는 등 5·18 당시 여성들의 활약상을 알리는 데 힘을 쏟았고 지난해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중에도 국회에서 진행된 천막농성장을 찾아 격려하기도 했다.

전씨는 투병생활과 트라우마를 힘들게 버텨오다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자택 인근에서 급성 질환으로 숨졌다.

전씨와 함께 가두방송을 진행한 차명숙씨는“이렇게 황망하게 떠나 버리니 슬픔을 가눌 길이 없다”며 울먹였다.

전씨의 빈소는 경기 시흥 시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남편과 3남 1녀를 두고 있다. 전씨는 19일 발인 뒤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된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