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강릉 9.2℃
  • 맑음서울 7.7℃
  • 맑음인천 9.1℃
  • 흐림원주 8.8℃
  • 맑음수원 9.7℃
  • 구름조금청주 10.0℃
  • 맑음대전 9.8℃
  • 포항 9.7℃
  • 흐림대구 10.1℃
  • 맑음전주 11.2℃
  • 구름많음울산 10.2℃
  • 구름조금창원 12.8℃
  • 맑음광주 10.7℃
  • 구름많음부산 10.6℃
  • 맑음순천 10.4℃
  • 맑음홍성(예) 13.2℃
  • 맑음제주 15.8℃
  • 구름많음김해시 9.9℃
  • 구름많음구미 10.1℃
기상청 제공
메뉴

(광주일보) ‘검열 빨간줄’에 잘려나간 옛 전일방송 기사 41년 만에 공개

당시 전일방송 이용호 부장 삭제된 생방송 원고 5·18기록관에 기증

 

 

1980년 계엄군의 엄혹한 언론 통제 실상을 알 수 있는 방송원고가 41년 만에 공개됐다.

17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에 따르면 1980년 당시 전일방송(VOC) 이용호 뉴스부장은 1980년 6월 4·5일자 전일방송 ‘뉴스의 현장’ 방송원고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했다.

전일방송은 ‘광주일보’의 전신인 ‘옛 전남일보’의 계열사로, 전남 뿐 아니라 전북에서도 청취가 가능했다.

이 부장의 방송원고는 당시 전일방송 오후 6시 프로그램이던 ‘뉴스의 현장’에 사용할 내용으로, 계엄군의 요구로 만들어졌다. 당시만해도 생방송의 경우 원고 없이 방송이 이뤄졌다는 게 이 부장 설명이다.

이번에 공개된 원고는 총 13장으로, 전일방송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원고지에 1~6으로 페이지 번호가 매겨진 원고 한 부와 7페이지까지 매겨진 원고 한 부 등 2부다.

방송원고는 계엄군의 검열로 원고 곳곳에 빨간 줄이 ‘죽죽’ 그어져있다. 잘려나간 내용도 5·18의 상황을 기재한 웬만한 내용은 모두 들어내 5·18의 실상을 축소하고 삭제하기 위해 애쓴 것으로 보인다는게 5·18기록관 권도균 기록연구사의 설명이다.

원고 중 ‘그 때 그 현장의 줄지어 선 헌혈의 대열을 뇌리에 새기며 병상의 일시를 적어가고 있습니다. 광주사태가 계속된 며칠동안 젊은이들의 선혈이 하얀시트를 적시던 그날, 그날이 바로 21일 이었습니다’, ‘엠브런스가 아니라 손수레에 응급환자가 실려왔고 의사와 간호원들은 그 엄청난 사태의 흥분이 지금껏 가시지 않은 듯 꿈만 같았다며 침통한 모습이었습니다’ 등의 내용은 통채로 들어내라고 빨간 줄이 그어졌다.

또 원고 중 ‘절규의 5월’이라는 단어가 빠지는가 하면, ‘5월의 신록속에 묻힌 수많은 영령들에게’ 라는 문장에서는 ‘수많은’이라는 단어를 빼도록 표시됐다.

방송원고를 기증한 이용호 씨는 “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던 처참한 현장을 높은 건물에서 목도하고도 방송 한마디 할 수 없었던 것을, 총칼 앞에 언론도 언론이지 못한 세상을 한탄하며 지냈다”면서 “당시 원고의 절반 이상이 잘려나가면서 할 멘트가 없다보니 ‘여러분 말 조심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멘트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정용화 5·18기록관 관장은 “5·18 당시 신문 뿐만 아니라 방송 등 모든 언론에서 검열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