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자원수송 목적 1899년 경인선 준공 러일전쟁 이후 경부선·경의선 잇단 개설 1970년대 330억원 규모 지하철 사업 돌입 수도 인구급증 해소 '도시철도 시대' 열려 철도는 근대부터 지금까지 인천과 경기지역 시민들의 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수탈의 아픔을 함께 했던 경인선과 경부선, 경의선부터 수도권 전철화 사업 이후 경전철까지 철도의 역사는 인천과 경기도의 도시 발전과 함께 해 왔다. # 일제 강점기 수도권 철도 역사 시작 일제 강점기 철도는 조선의 각종 재화와 자원을 수송하는 수탈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광복과 전쟁 이후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인천과 경기지역 철도역사는 구한말 개통된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부터 시작된다. 조선이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문호를 개방한 뒤 서울과 인천을 이을 철도의 필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인데 경인철도는 당초 민족 자본으로 철도 건설을 계획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시행하지 못했고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철도 부설권을 갖게 되면서 국내 최초 철도 사업권이 외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끝내 철도 부설공사권을 손에 넣은 일본은 1899년 9월 18일 철도를 준공했다. 최초의 경인선은 서울
'포스트 코로나'로 국산화 흐름 '수평적 파트너' 재정립의 기회 정부·지자체등 '육성정책' 필요 코로나19는 수직적 갑을관계로 얽힌 대한민국 산업구조를 수평적 파트너 관계로 재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우리나라 뿌리산업 역시 원청과의 관계 재정립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재도약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삼고,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인하대 제조혁신전문대학원 현승균 원장과 융합혁신기술원 장웅성 원장을 만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 뿌리산업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인하대학교는 뿌리산업 인재양성 및 역량 개발을 위해 제조혁신전문대학원과 융합혁신기술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불거진 일본 수출 규제에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뿌리산업을 중심으로 긍정적인 산업구조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예측했다. 특히 국내 뿌리산업을 바라보는 대기업의 인식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 강조했다. 이들은 "(일련의 사태로)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대기업들이 국내 뿌리산업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자국 생산주의 등 국산화 흐름이 강해질 것이고 이는 대기업과 뿌리기업의 관계를 재정립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입사 '기술로 우뚝 선' 원상준 부사장 대기업 나와 외부편견과 싸우며 활로 개척 "내 뒤 이을 후배들은 존중받으며 일했으면" 올해 마흔 살의 원상준 부사장은 경기도 화성시 '열처리' 전문 뿌리기업 제일에이치티씨(HTC)에서 일한다. 그는 대학에서 신소재공학과를 전공했고, 대기업 조선소에서도 근무했다. 세간에 뿌리산업 종사자에게 씌워지는 부정적 인식을 깨는 인물이다. 지난 2008년, 그의 나이 28살에 제일에이치티씨 사원으로 입사했다. 원 부사장은 "대학 졸업 후 나도 남들처럼 대기업에 입사해 2년 정도 조선소에서 일했다. 전공을 살려 즐겁게 일하고 싶어 뿌리산업에 뛰어들었다"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외부의 편견과 싸우는 건 일상이다. 하지만 나는 열처리 산업에 매우 자부심을 갖고있고 전망도 밝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인식이라도 바꾸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세기 대한민국 산업 성장을 견인한 뿌리산업은 21세기에 들어 '3D', '재하청의 끝'이라 불리며 벼랑 끝에 서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뿌리산업 다각화 지원정책의 고용효과'를 보면, 정부가 1차 뿌리산업 진흥 기본 계획을 통해 뿌리기업 고용 촉진정책을 펼쳤
'산업역군' 찬사받았던 뿌리산업 노동자 4차 산업혁명 선두 대한민국서 '3D' 취급 글로벌 악재 속 제조업과 함께 진가 발휘 지난날 쇠를 녹이고 자르는 일을 하며 굵은 땀을 흘리는 이가 애국자였다. 그 시절 최고의 찬사가 '산업역군'이었는데, 우리 사회는 그 헌신에 존경을 담아 쇠를 만지는 뿌리산업 노동자를 산업역군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날 4차산업혁명의 선두그룹에 선 대한민국은 뿌리산업을 3D(Dangerous, Dirty, Difficult)로 취급한다. 젊은이들이 일상대화를 즐기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들 산업역군을 '노가다'로 폄훼한다. 삶이 윤택해진 대신, 성실한 땀을 흘리는 모든 일이 조롱받는 세상이 됐다. 코로나19 사태는 공고하다 믿었던 세계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중에서도 4차산업혁명 대두 이후 우리의 시선 밖으로 밀려난 '제조업'이 진가를 드러냈고 터부시됐던 뿌리산업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가 지난달 발표한 세계 경제성장률은 -3.0%이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5.9), 일본(-5.2) 모두 -5%대로 떨어진 반면 한국은 -1.2%로 예측됐다. OECD국가 중 하향폭이 가장 낮은 것으로 코로나1
참사 당시 너무 어려 "그런 일이 생겼구나…" 중학생 돼서야 '비극' 인식… 당시 대응 분노 '희생된 형·누나들에 부끄럽지 말아야' 다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형·누나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죠." 지난 22일 오전 10시께 안산시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 수원고등학교에 다니는 조익주(18)군이 기억교실 2학년 1반을 찾았다. 기억교실에 처음 와 본다는 조군은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한 학생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달력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2014년 4월 15일부터 18일까지 수학여행 일정을 표시해 놓은 달력이었다. '세월호 장학생'인 조군은 그렇게 책상마다 놓인 유품들을 살폈다. 지난해 수원고 2학년 1반 반장이었던 그는 '416단원장학재단'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조군이 이날 단원고 기억교실 '2학년 1반'부터 찾은 이유다.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2015년 4월 설립된 단원장학재단은 해마다 경기도 학생과 교사들을 선발해 각각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학생 903명과 교사 44명이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조군은 한때 축
4대 보험 6개월치 내고 여행사 직원으로 수료증 대여가능 허점… 잔심부름 도맡아 사전답사 제외 현장 대응력 부족도 문제 '수학여행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수학여행·수련활동 등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을 내놓았습니다. 안전요원도 그렇게 생겨난 겁니다. 작은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는 저도 봄·가을에는 안전요원으로 일합니다. 코로나19 사태만 아니었다면, 지금 한창 바쁠 때죠. 부끄러운 고백을 하겠습니다. 3년 전이에요. 한 여행사 대표가 안전요원으로 일할 사람들을 급히 구한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학교와 수학여행 계약을 하려면 안전요원이 필요했던 거죠. 안전요원이 되려면 일정한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국내여행안내사, 국외여행인솔자, 소방안전교육사, 응급구조사, 청소년지도사, 숲길체험지도사 등에게만 교육받을 자격을 줍니다. 여행사 대표는 어느 민간단체가 발급하는 국외여행인솔자 자격증을 추천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따기가 쉽거든요. 해외를 나가본 적 없는 제게 여권에 도장 하나는 찍혀 있어야 한다더군요. 부랴부랴 여권을 만들고 당일치기로 일본을 다녀왔죠. 이 자격증을 따려면 여행사에 최소 6개
조울증 앓던 부친 결국 예전으로 못돌아가 형이 남긴 동생 방명록에 '안타까운 소식' "남은 자 위한 전문치유시설 만들어지길" 4월의 봄이 지나고 있다. 그들에게 했던 약속,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은 두 번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우리 모두의 약속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책임자 처벌 문제도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날의 시간에 멈춰 있다. 얼마 전 우리는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했다. 먼저 떠난 자식을 그리워하던 두 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등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민이 안전한 나라, 그리고 빈틈없는 피해 지원을 약속하며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수많은 희생과 맞바꾼 대한민국의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지는 데서 이 기획은 출발한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 편집자 주 세월호 참사 때 열여덟의 꽃다운 나이로 숨진 단원고 손모군의 부모님은 '기
서울 소각장 후보 응모지 '0' 경인지역도 주민 반대 '답보' 하남 유니온파크 '상생' 답안 쓰레기 대란을 막는 해법은 간단하다. 첫째는 줄이고, 둘째는 다시 쓰는 것이다.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하는 것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실생활에서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인다. 고급스럽게 포장해야 물건이 잘 팔린다는 이유로 기업들은 과도한 포장에 열을 올린다. 이들은 제품을 생산한다고 생각하지, 썩지 않는 쓰레기를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포장재를 뜯는 순간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데도 말이다. 내 집 앞에 다른 사람이 쓰레기를 매일 버린다면, 자신들은 쾌적한 곳에서 살면서 쓰레기는 당신이 사는 동네에 버릴 테니 알아서 처리하라고 해도 "괜찮다"고 하겠는가. 환경분야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발생지에서 쓰레기를 처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님비주의(내 뒷마당은 안돼, Not In My Back Yard)는 선출직 단체장들에겐 '협박'이고, 담당 공무원들에게는 귀찮은 업무를 피하기 위한 '구실'이다. 의지가 없는 자치단체는 '민원' 핑계를 자주 들이대는데 제대로 몰라서 하는 얘기다. 명분과 논리를 갖춘 민원과 나만 아니면 된다고 떼쓰는 님비는 개념부터 다르다. 서울
인천 안동포 매립지 들어선 후 악취·소음 탓 주민들 고향떠나 사월마을도 '주거부적합' 악몽 인천 서구 안동포마을과 사월마을을 아십니까. 마을 이름이 정겹습니다. 안동포마을은 300여 세대가 옹기종기 모여 남자들은 배를 부리고, 여자들은 해산물을 캐며 사는 자연부락이었습니다. 안동포마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건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의 쓰레기를 매립하는 수도권매립지가 들어선 이후 정겨웠던 두 마을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1992년 2월 안동포마을과 직선거리로 500m 떨어진 곳에 수도권매립지 제1 매립장이 들어섰습니다. 수도권매립지 제1 매립장은 초기부터 실패작이었습니다. 부실한 설계와 시공으로 쓰레기에서 발생한 침출수가 서해로 흘러들었습니다. 악취는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날씨가 흐린 날이면 멀리 동구와 중구까지 악취를 풍겼습니다. 침출수는 인천 연안과 강화도 남단 바다까지 오염시킬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폐기물 반입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야간 반입은 1992년 2월부터 2001년 2월까지 꼬박 9년이나 계속됐습니다.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1
10년 지나도록 찾지못한 처방전 그래도 풀어야하는 공존 해결책 결국 문제는 '일자리'다. 쌍용차를 직접 겪은 평택사람들은 일자리가 생계이고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택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정부라도 나서 민간기업에 불과한 '쌍용차'를 살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유다. 동료였던 이들이 산자와 죽은자로 나뉘어 극렬하게 대립한 것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까지 죽은 이들이 그리워했던 것도, 기나긴 고통 속에서 10년을 하루같이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투쟁을 벌여온 것도 모두 일터로 돌아가 평범했던 지난 일상을 되찾고 싶어서였다. 서둘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평택과 가장 유사한 산업구조를 가졌던 군산을 찾아갔다. GM공장이 문을 닫은지 2년, 도시는 을씨년스럽게 변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도 '일자리'의 중요성을 깊이 체득하고 있었다. 또 희망을 잃지 않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역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더불어 정부가 추진 중인 상생형 일자리의 롤모델, 독일 폭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의 'Auto 5000'의 사례는 양보와 상생이 주는 긍정적 성과를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가정일 뿐이다. 평택과 쌍용차가 처한 상황에 딱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