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해녀들은 저체온증과 고혈압의 위험을 줄이는 특별한 유전적 변이를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유타대의 멀리사 일라르도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제주 해녀의 숨겨진 유전자 비밀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최근 과학 저널 ‘셀 리포트’(Cell Reports)에 발표했다.
제주 해녀들은 수심 10m까지 호흡 장비 없이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며, 날마다 4~5시간을 차가운 바닷물에서 보낸다. 이들은 10살쯤부터 훈련을 시작해 임신 기간을 포함한 평생 동안 이 일을 계속한다.
일라르도 교수는 80살이 넘은 여성들이 다이빙하는 것을 보면서 해녀들의 놀라운 신체 능력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제주 해녀 30명, 해녀가 아닌 제주인 30명, 서울 거주인 31명을 대상으로 각각 생리적 특성과 유전체를 비교했다. 연구 참가자의 평균 연령은 제주 해녀의 연령에 맞춰 65세로 설정했다.
유전적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최소 3대째 해녀 일을 하는 가문 출신으로 정했다.
연구팀은 제주인들이 한국 본토 출신자들과 유전적으로 두 가지 변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하나는 저체온증에 덜 취약하게 만드는 추위 내성 변이이고, 다른 하나는 이완기 혈압 감소와 관련된 변이다.
참가자들은 찬물에 얼굴을 담그고 숨을 참는 실험을 했는데, 제주 해녀 심박수는 평균 18.8bpm(분당 심박수) 감소한 반면, 제주 비해녀는 12.6bpm 감소했다. 잠수 중 심박수 감소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산소를 보존하는 데 유리하다.
일라르도 교수는 “제주인에게는 찬물(추위)을 견디는 능력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다. 서울 거주인에게 없는 유전자 변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차이는 심장이 이완할 때의 확장기 혈압의 감소와 관련된 유전자 변이다. 제주인은 이완기 혈압을 약 10㎜Hg 낮추는 유전자 변이가 있었다.
제주인은 33%가 이 유전자 변이를 보인 반면, 서울 거주인은 7%에 불과했다. 이처럼 제주인들은 잠수 중 이완기 혈압을 낮추는 것과 관련된 유전적 특성을 가질 확률이 본토인들보다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임신 중 잠수를 하면 고혈압과 함께 임신중독증이 발생할 위험이 높지만, 제주 해녀들은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유전자 변이가 자연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일라르도 교수는 “제주 해녀의 유전적 변화가 제주 전체 주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는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라며 “그 영향을 더 깊이 규명한다면 임신성 고혈압이나 뇌졸중 같은 여러 질환의 치료제 개발에도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