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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역사가 개인에게 부여한 고통, 위로받을 수 있나?

파친코 / 이민진

 

소설 〈파친코〉는 알려진 만큼 역작이고 수작이다. 출판사를 바꿔 전 2권 중 1권이 최근 나왔고, 2권은 8월 말에 나올 예정이다. 이전 번역에서 주요 등장인물인 ‘순자’는 새 번역에서 ‘선자’로 발음이 바뀌었다. 작가는 다음 주 2022 만해대상을 수상하고 독자와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이 소설 인기에는 드라마 힘이 크게 작용했을 거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 이 소설의 파급 의미는 뭘까.

고국 떠나 일본서 차별 속에 산 4대 이야기

감정 과잉 없는 묘사·선명한 서사 특징

식민지·한국전쟁·분단 등 세계사적 고통

승화시켜야 한다는 게 소설의 주요 메시지

무엇보다 세계가 한국인에 주목하고 있으니 이제야말로 제대로 써야 한다는 거다. 작가의 말이다. “한류는 정말 대단하지만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우리의 창작 활동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광범위한 인간성을 지닌 한국인을 그 자체로 오롯이 인정하는 일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한국인은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깊이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가치가 있는 이들이다. 온갖 놀라운 상황들을 견디며 분투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나라, 모든 민족에게 통용될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그 차례가 우리에게 왔다는 거고, 그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의미일 거다.

한국문학에서 〈토지〉 〈태백산맥〉 〈장길산〉 등등 훌륭한 장편이 많지만 예들 들면 한국전쟁을 정면으로 문제 삼은 장편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들 한다. 외려 이창래 〈생존자〉, 하진 〈전쟁 쓰레기〉, 모레노 두란 〈맘브루〉, 제임스 설터 〈사냥꾼들〉 등 예처럼 국외에서 나온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이제 써야 한다는 것은 그 뜻이다.

 

〈파친코〉의 소설적 특징은 서사의 뼈대가 튼튼하고 굵직하다는 점이다. 서사가 튼튼하기 위해서는 묘사를 절제해야 한다. 묘사의 절제는 문학성의 결여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게 ‘우려의 공식’이다. 하지만 〈파친코〉의 서술 방식은 그 공식을 넘어선 지점을 향한다. 서사의 골격이 선명하기 때문에 드라마화나 영화화가 가능했던 거 같다. 영화의 저본으로 소설보다 만화나 웹툰이 더 많이 채택된다면 후자에 ‘선명한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파친코〉에서는 주요 인물이 죽거나 자살하는 부분에서 감정 과잉이 없다. 지나친 절제가 아쉽기조차 하다. 노아의 자살은 소설에서 충격적이고,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다. 그런데 소설은 단 한 문장, 간접화법으로 처리해놨다. 노아의 자살은 재일 한국인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절망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노아뿐만 아니다. 이 소설 속의 모두가 그렇다. 4대 솔로몬도 일본인에게 배반을 당한다. 자이니치의 신분 한계를 넘어서고자 미국 유학을 했으나 그의 한계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거다. 할 수 있는 것은 그 아버지 ‘모자수’를 이어 파친코 업을 승계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한계 지워져 있는 거다.

소설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삶은 고통스럽다. 그 고통에 소설 대사처럼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있으시다’는 말이 위로처럼 건네진다. 하지만 그 말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은 것이 삶의 고통이다. 소설 속 4대의 삶을 보건대 역사가 개인들에게 부여한 고통은 위로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역사를, 요즘 화법으로는 ‘사회’로 바꿔도 무방할 거 같다. 부산 영도에서 살다가 고국을 떠나 일본에서 고통과 차별 속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4대의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린 평범한 무명씨들의 이야기는 필설로 다 할 수가 없다. 2대 이삭은 신사참배 때 천황이 아니라 신을 경배하다가 일제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죽고. 그의 형 요셉은 원자폭탄 피폭 상흔으로 죽는다. 김창호는 요셉의 남은 아내 경희와 맺어질 수 있었으나 재일교포 북송선에 몸을 싣고 사라졌다…. 작가는 차별 받다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조선계 중학생의 얘기에 충격을 받고서 30년간 이 소설을 몇 번씩이나 고쳐 가면서 썼다고 한다.

 

한반도는 세계사적인 고통의 땅이다. 제국주의 식민지, 한국전쟁, 분단, 여전한 좌우 대립, 그리고 700만 한민족 디아스포라…. 이런 경험을 치른 곳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고통은 세계사적이다. 이 고통을 그야말로 세계사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메시지다. 이민진 지음/인플루엔셜/신승미 옮김/388쪽/1만 58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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