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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바르샤바 인어가 칼과 방패 든 이유는?

[유럽 인문학 기행-폴란드] 바르샤바의 인어

“아버지, 어머니 몰래 뭍에 올라가 보면 어떨까?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엄쳐 세상을 구경하는 거야. 나중에 돌아와 경험한 걸 서로 이야기해주는 거야.”

언니 인어는 이것이 영원한 이별의 시작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언니 인어의 말에 동생 인어는 귀가 솔깃했다. 그녀도 오래 전부터 바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부모의 걱정 때문에 주저했을 뿐이었다. 지금도 그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인간 세상을 본다는 흥분을 누를 수 없었다.

 

언니 인어는 덴마크 쪽으로 갔다. 그녀는 코펜하겐 항구를 통해 뭍에 올라갔다. 이후 영원히 그곳에 머물게 됐다. 지금 코펜하겐 바닷가에 서 있는 인어 동상은 바로 언니 인어다.

동생 인어는 폴란드의 그단스크 항구로 헤엄쳐 갔다. 그곳에 머물지 않고 비스와 강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 모래로 쌓은 강둑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강둑과 마을을 정말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버리고 강에서 살기로 했다.

 

 

■인어를 사랑한 마을

‘이상하네. 왜 물고기가 적게 잡히는 거지?’

젊은 어부가 강에 쳐 놓은 그물을 걷으러 갔다. 그는 종전보다 그물에 잡힌 물고기가 적은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누군가 물고기를 훔쳐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범인을 잡으려고 다른 어부까지 데려와 주변을 뒤졌다.

 

“이게 무슨 소리지? 젊은 여인이 노래를 부르잖아! 우리 말고 이곳까지 오는 사람은 없는데, 도대체 누구일까?”

 

두 어부는 노래 소리를 따라 강둑으로 걸어갔다. 강둑에 누워 노래를 부르는 여인이 보였다. 두 사람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게 뭐야? 인어잖아! 비스와 강에 인어가 살다니…!”

“그물에서 물고기를 꺼내 먹은 게 인어였다는 말이야?”

두 어부는 인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 어르신에게서 이야기만 듣던 인어를 직접 만나니 감격스럽기도 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인어의 노래를 방해하지 않고 돌아갔다.

 

 

마을에 도착한 두 어부는 어르신에게 강둑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우리 마을에 인어가 나타났습니다. 강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은 인어 이야기를 듣고 매우 기뻐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인어는 신성한 동물이야. 마을에 나타났다는 것은 복을 받을 조짐일세. 인어를 해치면 하늘의 벌을 받을 거야. 인어가 평화롭게 살도록 놔두기로 하세.”

다른 어부는 고기잡이를 걱정했다.

“인어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다 먹으면 어떻게 하죠?”

어르신은 그 어부의 어깨를 두드렸다.

“인어 하나가 물고기를 얼마나 먹겠나? 마을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걸세”

어르신은 다른 어부들을 보면서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는 아예 그물을 더 느슨하게 설치하도록 하지. 그래야 인어가 더 편하게 물고기를 꺼내 먹을 수 있지 않겠나? 당장 손해를 보는 것 같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마을에 복을 불러올 거야.”

마을 사람들의 배려 덕분에 인어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런 걱정도 없이 비스와 강에서 살게 됐다. 그녀는 매일 강둑에 올라가 매혹적인 목소리로 마을을 향해 노래를 불렀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누구도 듣지 못한 아름다운 노래였다.

인어가 낮에 부르는 노래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바람처럼 평화롭고 안온했다. 밤에 부르는 노래는 할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다.

마을 사람들은 인어의 노래를 들으며 매일 행복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고 낮에 일을 하고 저녁 잠자리에 들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는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평온이 깃들었다.

 

 

■마을을 사랑한 인어

어느 날 다른 마을의 상인이 강둑 근처를 지나갔다. 마침 인어가 강둑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려고 준비하던 참이었다. 상인은 강둑에 누운 인어를 보았다.

‘아니, 저게 뭐야? 인어잖아.’

상인의 마음에는 돈을 벌 수 있는 생각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인어를 붙잡아 도시로 데려가야겠어.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보여줘야지. 지금보다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거야.’

엄청난 돈을 벌수 있다는 기대감에 상인의 가슴은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어 뒤로 몰래 다가가 그물을 던졌다.

무방비 상태였던 인어는 도리 없이 그물에 갇히고 말았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도와주세요. 낯선 사람이 납치하려고 해요. 제발 살려주세요.”

강둑 근처에는 인어를 처음 발견한 젊은 어부가 살았다. 그는 마당에서 그물을 손질하다 강둑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매일 저녁 행복한 노래를 불러주는 인어의 목소리였다. 그는 그물을 집어 던지고 달려갔다.

상인은 인어를 마차에 막 실으려 했다.

 

 

“강도 같은 녀석아. 도대체 무엇 하는 짓이냐? 네가 지금 붙잡아가는 게 누구인지 아느냐?”

젊은 어부는 몽둥이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상인에게 달려들었다.

상인은 너무 놀라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그는 인어를 버려두고 혼자 마차를 타고 달아났다. 돈보다 목숨이 더 소중했던 것이다.

젊은 어부는 그물을 벗기고 인어를 강에 데려다주었다. 다행히 인어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인어는 강물로 돌아가기 전 젊은 어부의 뺨에 입을 맞췄다.

“젊은 어부여, 감사합니다. 당신의 은혜를 갚기 위해 앞으로 비스와 강을 떠나지 않을 게요. 당신과 마을을 지키며 강의 수호신이 될 거예요. 마을 주민들에게 전해주세요. 저를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하라고….”

 

 

인어는 그때부터 마법의 칼과 마법의 방패를 늘 가지고 다녔다. 자신을 지키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비스와 강 근처의 마을은 조금씩 커져 대도시가 됐다. 바로 지금의 바르샤바였다. 바르샤바 사람들은 지금도 인어가 비스와 강에 숨어 살면서 바르샤바를 지킨다고 믿는다.

바르샤바 인어는 폴란드어로 시렌카 바르샤브스카라고 불린다. 바르샤바에 가면 곳곳에서 인어를 볼 수 있다. 바르샤바 구시가지와 비스와 강의 스비에토크르지스키(성 십자가) 다리 인근에는 칼과 방패를 든 인어 동상이 세워졌다. 바르샤바 시는 14세기부터 시를 상징하는 문장(紋章)에 인어를 넣었다. 국회의사당 계단의 독수리 모양 나무 조각의 가슴 부분에도 인어가 새겨졌다. 이밖에 카로바 거리의 수로, 인지니에르스카 거리, 그로초브스카 거리의 남 프라가 구청, 문화과학궁전의 시계 등서도 인어 동상, 조각이 보인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