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강릉 12.9℃
  • 서울 11.8℃
  • 인천 11.4℃
  • 흐림원주 20.8℃
  • 수원 11.7℃
  • 흐림청주 17.1℃
  • 흐림대전 18.9℃
  • 구름많음포항 20.5℃
  • 맑음대구 26.4℃
  • 흐림전주 16.7℃
  • 맑음울산 25.5℃
  • 맑음창원 25.3℃
  • 흐림광주 16.9℃
  • 맑음부산 22.9℃
  • 맑음순천 22.7℃
  • 홍성(예) 11.9℃
  • 구름조금제주 21.8℃
  • 맑음김해시 25.8℃
  • 구름조금구미 24.7℃
기상청 제공
메뉴

(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영혼의 고향 헝가리에 심장을 바칩니다”

[유럽 인문학 기행-헝가리] 판노할마 수도원

“헝가리는 오토 폰 합스부르크를 버린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가 헝가리에 심장을 안치하라고 유언한 것은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를 사랑한 나라에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열정과 사랑을 담은 심장이 묻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2011년 7월 17일 저녁 헝가리 부다페스트 서쪽 판노할마에 있는 판노할마 대수도원에서 저녁 미사가 열렸다. 판노할마 대수도원은 13세기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 건물이다. 판노할마는 전체 인구가 고작 4000명인 작은 마을이다. 인근의 유서 깊은 도시 죄르에서 오가는 버스가 하루 4대에 불과할 정도다.

 

 

이날 저녁 미사는 무엇인가 특별했다. 참석자 숫자만 해도 수백 명에 이르렀다. 헝가리 정부의 졸트 셈젠 부총리 부부는 물론이거니와 오스트리아 정부 및 의회 관계자도 참석했다. 프로테스탄트 목사와 가톨릭 신부에 유대교 랍비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날 행사는 100년 전에 사라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심장 안치 미사였다. 그는 13일 전이던 7월 4일 독일 푀킹에서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판노할마 수도원의 심장 안치 미사는 유언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심장을 판노할마 대수도원에 안치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왕족이었다. 그는 왜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헝가리에 심장을 안치하라고 했을까?

 

 

■쫓겨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1912년 11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당시 황제였던 프란츠 조제프 1세가 후사 없이 죽는 바람에 먼 친척이었던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아버지가 황제 자리를 물려받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였다. 덕분에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 대공,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헝가리 및 보헤미아 왕국 왕세자, 달마티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갈리시아‧로도메리아‧일리리아 왕국 왕세자라는 작위를 얻었다.

 

황제 및 황태자 자리를 물려받은 것은 카를 1세와 오토 폰 합스부르크에게는 불운의 시작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오스트리아 국민은 물론 정치인은 뜻을 모아 군주제를 폐지했다. 카를 1세의 가족은 오스트리아에서 쫓겨나 망명길에 올랐다. 황제 가족에서 졸지에 무국적 추방자 일행이 되고 말았다.

카를 1세의 가족은 포르투갈 등 유럽 각국을 전전했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귀국을 금지했기 때문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급격한 운명의 반전에 스트레스를 받은 카를 1세는 강제 퇴위당한 지 4년 만인 1923년 포르투갈의 마데이라에서 한 많은 인생을 접어야 했다.

합스부르크 왕족이 죽으면 빈에 묻히는 게 관례였다. 시신은 카푸치너 교회에, 내장은 성 슈테판 대성당에, 심장은 아우구스티너 교회에 묻혔다. 카를 1세는 오스트리아 국민과 정치권의 반발로 죽어서도 빈에 돌아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마데이라에 묻혀야 했다. 지금도 그의 무덤은 그곳에 남아 있다.

 

 

■헝가리의 영원한 우정

 

11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마데이라에서 방황하던 오토 폰 합스부르크 앞에 어느날 헝가리 사람들이 나타났다. 판노할마 대수도원의 수도사들이었다.

“황태자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수도사님들, 여기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수도원장님께서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헝가리에서 마치지 못한 황태자님의 헝가리 언어와 문학 공부를 이곳에서 이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판노할마 대수도원에는 판노할마 기숙학교가 있었다. 헝가리 귀족 자제를 모아 헝가리 문학, 역사 등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아버지가 폐위되기 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자격으로 그곳에 들어가 헝가리 언어를 배웠다.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판노할마 수도원을 매우 좋아했다. 수도사들이 매우 친절하고 자상한데다 수도원의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가 관례에 따라 1916년 부다페스트 마차슈 대성당 안에서 대관식을 치렀기 때문에 헝가리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폐위를 당할 위기에 몰리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판노할마 생활을 마감하고 빈으로 돌아갔다. 귀국 직후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나서는 바람에 판노할마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가 헝가리와 판노할마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판노할마 수도원은 잊지 않았다. 오스트리아는 황제와 황태자를 저버렸지만, 그들은 결코 황태자를 내팽개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수도원장은 일부러 수도사들을 보내 오토 폰 합스부르크가 헝가리 언어와 문학, 역사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마지막 황태자의 보은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헝가리의 호의를 잊지 않았다. 나중에 유럽의회 의원까지 지냈던 그는 유럽의회에서 연설을 할 때면 헝가리어를 수시로 사용했다. 그를 아껴주었던 헝가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 헝가리 같은 작은 나라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뜻이었다. 그는 헝가리로부터 위대한 ‘헝가리의 애국자’라는 칭송을 들었다.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1989년 8월 19일에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역사적인 행사를 진행했다. ‘범 유럽 피크닉’이라는 이벤트였다. 두 나라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 나라였다는 점에서 착안해 국경을 3시간 동안 개방하는 행사였다.

공산정권이 지배하던 동독을 탈출한 수만 명의 옛 동독인이 행사를 전후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집단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은 결국 옛 동독의 몰락을 재촉하게 됐다. 지금도 매년 8월 19일에는 ‘범 유럽 피크닉’ 기념식이 열린다.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2010년 2월 평생을 해로한 부인 레지나를 잃었다. 상심한 그는 모든 사회 활동을 접고 독일 푀킹의 집에 머물렀다.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진 그는 부인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 7월 4일 한 많은 눈을 감았다. 유언은 심장을 판노할마 대수도원에 안치하고 유산을 헝가리 정부에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죽거든 심장은 헝가리 판노할마 대수도원에 안치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육신의 고향이지만 헝가리는 마음과 영혼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유산은 모두 헝가리에 기증합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가 세상을 떠나자 수많은 조문객이 그의 집 근처 울리히 교회에 차려진 빈소로 몰려들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고민 끝에 그의 시신을 빈의 카푸치너 교회에 있는 황실 공동묘지에 안치하기로 했다. 과거 황족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오랜 세월과 함께 많이 사라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빈 장례식은 7월 16일에 열렸다. 시신은 카푸치너 교회에, 내장은 성 슈테판 대성당에 안치됐다.

빈에서 장례식이 열린 다음날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성 이슈트반 대성당에서는 두 번째 장례식이 열렸다. 오토 폰 합스부르크를 정말 아끼고 사랑한 헝가리 국민이 마련한 장례식이었다. 빈에서 열린 행사보다는 규모와 참석자가 적었지만 거기에 담긴 사랑은 빈보다 더 컸다. 팔 슈미트 헝가리 대통령과 빅토르 오르반 총리도 성 이슈트반 대성당 장례식에 참가했다.

판노할마 수도원에서 열린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심장 안치 미사는 부다페스트 장례식이 열린 날 저녁에 진행됐다. 그의 심장은 은 항아리에 담겨 주 제단 앞에 놓였다. 헝가리 국기를 상징하는 하얀색 꽃과 푸른 색 잎으로 만든 화관이 항아리를 둘러쌌다. 미사가 끝날 무렵 두 아들 카를과 게오르그가 항아리를 들고 공동묘지로 내려갔다. 방랑하던 그의 영혼은 마침내 판노할마에서 안식을 찾았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