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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하늘로 소풍 간 대한민국 딴따라, 이젠 “천국~노래자랑” (종합)

 

 

현역 최고령 MC인 방송인 송해(본명 송복희) 씨가 8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송 씨의 유족과 방송계에 따르면 송 씨는 이날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34년간 진행해 온 KBS1 ‘전국노래자랑’ 하차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최근까지 스튜디오 녹화로 방송에 계속 참여하는 방안을 제작진과 논의하고 있었다. 고인은 올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입원했고,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95세 국민 MC 송해 8일 별세

34년 진행 전국노래자랑과 한 몸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북 등재

평생 딴따라 자처한 진정한 예인

피란지 부산 ‘제2의 고향’ 여겨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9년 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에 입학해 음악 교육을 받았다. 이후 ‘선전대’ 대원으로 북한을 돌며 공연하다 1950년 6·25 전쟁 때 단신으로 월남했다. 이때 화물선을 타고 내려와 부산 땅을 밟은 고인은 부산을 ‘제2의 고향’으로 여겼다. 고인은 생전 〈부산일보〉와 인터뷰에서 “3000명을 태운 화물선이 부산항으로 들어왔다”며 “부산에 친구가 많다. 시간이 나면 부산에 와서 논다”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인은 창공 악극단에 입단하며 예인의 삶을 시작했다. 1955년 스물여덟이던 고인은 악극단에 들어가 악극 공연과 버라이어티쇼를 공개 무대에서 펼쳤다. 1960년대 초반부턴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무대는 동아방송의 ‘스무고개’다. 이후 MBC와 전속 계약을 한 고인은 ‘웃으면 복이 와요’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희극인의 끼를 뽐냈다. 1974년 시작한 KBS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로는 스타 반열에 올랐다.

 

누가 뭐래도 방송인 송해와 한 몸인 프로그램은 ‘전국노래자랑’이다. 1980년 첫 전파를 탄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그가 넘겨받은 건 61세였던 1988년이다. 그는 경상북도 성주 편을 시작으로 1991년 몸이 좋지 않아 쉰 6개월과 말년을 제외하곤 녹화에 불참한 적이 없다. 고인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구수한 입담으로 국민들과 호흡했다. 지난달에는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매주 일요일 송해 선생님을 통해 국민들은 위로를 받기도 하고 즐거움을 느꼈다”며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라고 봤다.

 

고인은 평생 ‘딴따라’를 자처했다. 2003년 보관문화훈장 받았을 때 “나는 딴따라다. 영원히 딴따라의 길을 가겠다”란 수상소감을 했다. 2015년 은관문화훈장 수상 땐 “대한민국 대중문화 만세!”라고 외치기도 했다.

 

음반 발매와 다큐멘터리 영화 출연 이력도 있다. 고인은 1987년 ‘백마야 우지 마라’ ‘아주까리 등불’ ‘애수의 소야곡’ 등 1세대 가요를 모아 ‘송해 옛노래 1집’이라는 타이틀로 첫 음반을 냈다. 이후 2003년부터 2006년에 걸쳐 ‘애창가요 모음집 송해송’이라는 제목으로 앨범을 발매했다. 2020년에는 주연으로 나선 영화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관객과 소통했다. 고인은 당시 아흔셋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력 있는 모습으로 관객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연신 행복해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고인은 가수, 배우, 희극인, 진행자로서 오랜 시간 대한민국 대중문화 역사와 함께하셨다”며 “우리나라 대중문화사의 매우 중요한 예인이 하늘의 별이 된 것”이라고 봤다.

 

고인은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었다. 그가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연 원로연예인상록회는 희극인은 물론이고 영화감독, 작가, 국악인을 막론하고 예술인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고인은 〈부산일보〉 인터뷰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인연이 남아야 한다”며 “즐겁게 사시라”고 지론을 전하기도 했다. 유족으로 두 딸과 손주들이 있다. 고인의 빈소는 8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이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