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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80년 신군부의 은폐.축소 정황 담긴 부검확인서

이세종 열사 유품 전시회 가보니
핏자국으로 얼룩진 상의, 전경에 희생당한 흔적 그대로
'추락사'도 아닌 사망원인 '미상'⋯사건 은폐‧축소 정황도

 

“박스에 묻어있는 선명한 핏자국은 누구의 피입니까?”

 

1980년 5월 17일. 고 이세종 열사가 전북대학교 제1학생회관에서 숨진 채 발견 된 후 전북대학교 제2전시대에 내걸린 내용 중 일부다. 당시 내걸린 대자보는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사건 발생 후 1~2년여 정도가 지난 후 게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이 열사에 대한 전시가 16일 전북대박물관 1층 중앙홀에서 ‘5‧18민주화운동 42주년 이세종열사 유품전시회’가 진행됐다.

 

 

이 열사에 대한 전시회는 사진 아카이브 형태로 진행됐다. 먼저 이 열사의 첫 사진은 전주시 다가공원에 있는 ‘가람시비’ 앞에서 찍힌 사진으로 시작된다. 흑백사진이었지만 늠름했던 이 열사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서문교회에서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는 모습, 전라고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에서 촬영한 장면 등 평범했던 이 열사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열사가 생전에 필기를 하며 열심히 공부했던 흔적도 있다. 교과서에서는 ‘음운 뜻과 결부된 소리, 모든 사람의 공통적으로 인식한 소괴의 떼’라는 등의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특히 표지 없는 교과서 중 이 열사는 ‘않되면(안되면) 되게하라’라는 문장을 적어 그의 평소 사명감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의 사진과 함께 전북대학교 농과대학교에 지원한 수험표, 대학시절 공부했던 전공서적도 볼 수 있었다. 

 

 

전시장 정중앙에는 이 열사의 사진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던 옷 등 유품이 전시됐다. 상의는 시간이 오래돼 변색이 됐지만 피로 물든 흔적이 분명했다. 이 열사의 시신을 동료들이 옮겼을 때 사용한 목장갑, 이 열사의 속옷 등에도 그의 핏자국이 아직도 선명했다. 

 

이종철 전북대박물관 학예사는 “자세히 보면 속옷과 상의 등은 모두 피로 얼룩져 있다”면서 “이는 공수부대원들이 이 열사를 잡고 흔들고 폭행 등을 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 열사의 죽음에 대한 은폐정황이 담긴 서류들도 공개됐다. 

 

 

 

사망(부검)확인서는 ‘1980년 5월 19일 박태조 전주경찰서장은 전주지방검찰청 안상수 검사의 지휘에 의해 사기 시체를 해부하고 그 사인을 규명토록 위촉하였기에 동일 오후 12시부터 1시 30분까지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부검실에서 사법경찰관 형병권 경위의 입회하에 부검하였음을 확인함’이라 적혀있다. 어떻게 숨졌는지 사인 조차도 적혀있지 않았다. 전북대병원이 작성한 ‘사망진단서’에는 사인이 미상으로 적혀있었다.

 

이지은 전북대박물관 학예사는 “두 서류는 이 열사의 죽음에 대해 신군부가 은폐‧축소하려는 시도의 정황이 담긴 문서”라면서 “추락사라는 단어 조차도 들어가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홍찬석 전북대박물관장은 “이번 이 열사 유품에 대한 전시는 전시공간이 부족해 사진전시형태로 진행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시공간을 마련해 이 열사 유품을 그대로 전시할 계획”이라며 “학생들한테 전북대의 이 열사의 희생으로 민주화움직임이 있다는 걸 (이번전시를 통해)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정규inwjdrb@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