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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탐방·(5)] 안산 산업화의 증인 '경3륜 T600' '목제솜틀기'

밤낮 없이 굴린 삼륜차·솜틀… '첨단 강국' 역사의 바퀴를 돌렸다

 

오는 7월 정식 개관을 앞둔 안산산업역사박물관. 화랑호수를 뒤로 한 박물관의 고요한 외부 풍경과 달리, 안산시의 산업역사를 망라한 박물관 내부는 관람객들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전시물들을 두르고 있는 포장재 속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숨겨져있었다.

안산산업역사박물관은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오래된 첨단'이 잠들어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아 3륜 T600'과 '목제 솜틀기', '동주염전 소금운반용 궤도차' 등이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과거의 첨단들이 지금의 안산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이야기는 안산을 넘어 경기도, 대한민국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제조업의 정점, 자동차 산업

자동차 산업을 제조업의 정점으로 보는 산업 전문가가 적지 않다. 해외에 수출할 정도의 수준을 갖춘 자동차 회사가 있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만 봐도 이런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전후, 아무런 기반이 없던 대한민국이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어떻게 갖추게 됐을까.

한국 최초의 자동차가 1903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들어온 이래, 자동차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1920년대에는 전문 정비소·제조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이후 자동차도 크게 줄었지만 드럼통과 미군 폐차에서 얻은 엔진으로 재생 자동차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1955년에서야 국내 기술·인력으로 조립된 최초의 자동차 시발 자동차가 등장하는 데, 이미 국산화율이 50%에 달했다는 점에서 재생 자동차를 다룬 경험이 토대가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1960년대 본격적으로 자동차 공업 5개년 계획이 발표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의 노력도 크게 기여했다.

이후 시대를 특징할 수 있는 여러 자동차 모델이 나왔지만, 안산산업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경3륜 T600은 한국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제품이다. 기아자동차가 자전거 부품 제조 공장에서 대표적인 자동차 생산업체가 되는 과정을, 또 작지만 효율적인 디자인으로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969년부터 생산 'T600'… 당시 36만원, 車 대중화 견인
회전반경 좁고 500㎏ 적재… 5년간 7726대 판매 큰 인기
반월·시화공단, 기아차 3천여개 협력사중 3분의 1 밀집

 


T600은 1969년 8월부터 생산됐는데, 당시 광고 문구가 '최소한의 자금으로 최대한의 수입'이었다는 점에서 실용적이었고 그 덕분에 자동차 대중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시 돈 36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고 유지비도 저렴했다. 500㎏까지 적재할 수 있고 회전반경도 3.6m에 불과해 복잡하고 좁은 골목길이 많았던 시절, 말 그대로 대한민국 산업의 혈관을 돌게 했다. 단 5년간 생산됐지만 7천742대가 생산돼 7천726대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였다.

지금의 안산은 자동차 부품 위에 만들어진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월공단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기아산업 계열사나 기아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이 입주하고 있었다.

1996년 반월·시화공단에 입주한 3천200개의 업체 중 기아자동차의 1·2차 협력업체가 3분의 1에 달할 정도여서 "공단을 한 바퀴 돌면 기아차 한 대가 거뜬히 나온다"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1960년대~1970년대 한국 자동차 산업과 한국 경제발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자료로 인정받아 경기도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산의 T600은 현재도 운행이 가능한 상태로, '광복호'라는 나무 번호판을 달고 관람객들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 섬유산업의 발전을 보여주는 화석, '솜틀'

최인호의 소설 '지구인'에 묘사되는 한 장면, '제분기에서는 밀가루가 떨어져 나오고 솜틀에서는 달칵달칵 솜이 틀어지고 있었다'. 솜틀이란 솜을 뜯어서 부풀려 펴는 기계로, 주로 쓰던 솜을 뜯어 그 속에 섞인 잡물을 가려내고 깨끗하고 곱게 부풀릴 때 사용한다.

아직 솜틀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그에 못지 않게 솜틀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이들도 많다. 그처럼 솜틀집과 솜을 트는 문화는 근현대 서민들의 의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짧은 기간 세탁소만큼이나 많은 솜틀집이 성업했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어져 세대를 나누는 기준이 될만하다.

목제 타면기(솜틀기)를 보유하고 있는 안산시에도 솜틀집은 2010년대 가나솜틀집을 마지막으로 단 한 곳도 남아있지 않다. 경기도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산의 솜틀기는 1961년 서울 창신동의 신자나비표 솜틀제작소에서 제작된 것으로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몇 안되는 제품이다.

 

 

사람이 직접 발로 밟아야 하는 것이어서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개조된 것이거나 훼손된 제품이 많은 데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희소성을 나타낸다. 외면에는 이 제품을 제작하고 검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남겨있어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선배들의 모습을 상상케 한다.

사라져 가는, 혹은 사라진 솜틀기를 가지고 '오래된 첨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최신기술을 담은 이 솜틀기 덕분이다. 면과 마 같은 제품에 강한 힘을 가할 수 있도록 개발됐고, 실용실안까지 받은 제품으로 설계도와 특허출원 자료가 남아있다.

1961년 제작 '목제 솜틀기' 원형 보존품 거의 남지 않아
직접 발로 밟아 목화솜 가공… 특허출원 당시 최신기술
화학제품에 밀려 사라졌지만… 섬유화학 안산서 꽃피워

 


솜틀기가 나타나고 사라진 것은 섬유산업과 큰 관련성을 갖는다. 솜틀은 기본적으로 목화솜을 사용할 때 필요한 것으로, 1960년대 초 화학섬유를 이용한 이른바 '캐시밀론 솜'의 등장으로 사라짐이 예고된 것이다.

손질이 어려운 목화솜 이불 대신 화학솜 이불을 찾기 시작하면서 솜틀에 대한 수요가 줄었고 1980년대 양모솜 이불이나 오리털 이불과 같이 다양한 소재의 이불이 사용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섬유화학으로 솜틀집은 사라졌지만, 발전한 섬유화학업계는 지금도 안산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수빈 안산시 학예연구사는 "근대문화유산은 유물과 고물 사이에서 때로는 보호받고 때로는 방치 받는 경계에 있다"며 "하지만 T600 자동차나 솜틀기와 같은 근대문화유산들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땀 냄새 어린 이야기들이 있어 꾸준히 발굴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사진/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안산시 제공,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