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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두바퀴로 달리는 경북도 명품길 2천km] 영주 선비길 85Km

물소리 들으면서 페달 밟다 보면 웅장함 뽐내는 소수서원 한눈에
다음은 부석사, 잠깐 내려 콧바람…서천 강변 끼고 15km 가면 무섬마을

 

죽령옛길~금선계곡~죽계구곡~소수서원~부석사~마구령~서천 강변길~무섬마을 까지

 

선비? 꼴통? 고지식? 똥고집? 에헴하고 행여 도포에 먼지가 묻을까봐 물튀기는 위인? 오랫동안 조선 유교의 주축을 이룬 선비에 대한 편견이다. 정작,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 ,'출세 지향적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돌보며 인격을 갖추는데 치중하는 사람'을 뜻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던가? 옛것을 돌아보고 새것을 창출하는 요즘이다.

 

인문학 열풍의 한 꼭지점에 선비가 존재하고 선비다움의 기품이 존재한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자신을 되돌아보고 찾아가는 열풍이 한창이다. 옛적 한양가는 길섶의 영주, 문경, 안동은 선비들의 큰 배움터였고 학문도량의 주축이었다. 그 새롭게 태어난 선비길을 자전거로 찾아가 본다. 영주가 되살아난다. 잊혀진 스토리들이 스물스물 베어나오고 교통도 사통발달 획기적이다.

 

서울 청량리를 출발하는 ktx이음은 안동과 영주까지 불과 1시간 40분만에 주파한다. 선비촌 초입에 갓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렸던 "선비"는 오늘날 다시금 생동감있게 살아난다. 소백산 둘레길, 죽령(竹嶺)을 시발점으로 무섬마을까지 약85Km에 이르는 영주 선비길은 스스로를 곱씹기에 안성맞춤이다. 의연함과 기개로움을 배운다.

 

 

◆선비의 고장 영주

 

길은 희방사역에서 시작한다. 소백산 자락의 희방사에서 연유된 이름이다. 이미 열차가 멈춘 폐역이다. 소백산 자락3길, 죽령옛길등이 교차하는 곳이다. 폐역은 스산하고 새벽녘의 온도도 제법 차다. 죽령옛길의 역사는 유구하다. 2천년도 넘었다. 1999년 영주시에서는 옛 죽령옛길을 죽령주막까지 복원하고 (2.5Km), 희방사 옛길(1.5Km)과도 조화를 이뤄 길을 엮어놨다.

 

세월의 흔적이 빛바랜 죽령옛길은 신비감 마져 준다. 옛적 '아흔아홉 굽이여. 오르막30리, 내리막30리' 라고 시인은 백두대간 죽령옛길을 노래했다. 자전거는 죽령옛길을 살짝 맛보고 풍기역으로 향한다. 풍기역은 역사(驛舍)가 꽤 크다. 인삼이 유명한 고장이라 역사 좌우로 인삼 가게들이 줄지어 섰다.

 

 

역사 뒷쪽으로 넘어간다. 제법 풍취있는 풍기 향교를 시작으로 도심지와는 작별이다. 곧이어, 금선계곡 초입에 들어선다. 동네 사람들만이 꼬깃꼬깃 숨겨놓은 비경이다. 금선정, 금선대 그리고 금계계곡으로 물길은 이어진다. 약 1.5키로 이르는 계곡은 2~3백년된 노송들이 줄지어섰다. 마을 주민들만이 쉬쉬하는 청정계곡 답다.

 

금계 황준량은 안동 농암 이현보의 사위이고 퇴계는 풍기군수 시절 황준량을 전도유망한 젊은 선비로 높이샀다. 이들 금계, 농암, 퇴계의 교류는 한참 이어졌다. 그 스토리를 눈에 넣고 자전거는 죽계구곡을 향한다. 멀쩡한 길은 없다. 죄다 업다운의 연속이고 좁은 농로로 연결된다. 순흥 저수지가 보이면 죽계구곡의 꼭지점, 초암사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그래도, 재밌다.

 

 

 

◆ 소수서원,부석사 둘러보기

 

물소리를 들어가며 서서히 페달링을 한다. "물소리가 마치 노래 가락과 똑같다"고 퇴계는 9곡 이화동부터 제1곡 금당반석까지 구곡(九曲)이라 명명했다. 정작, 초암사 초입에서 자전거는 출입금지라 하여 발길을 돌린다. 돌아서서 내려온다. 냅따 내리막이다. 시속이 50Km에 육박한다. 눈앞에 웅장한 서원이 쩍하고 나타난다. 바로 "소수서원(紹修書院)" 이다.

 

주세붕 선생이 최초로 만든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이고, 백운동에 소재한다 하여 백운동 서원이라고도 불렸다. 소시적, 역사수업때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라고 열심히 침뭍혀가며 외웠던 기억이 새롭다. 지난 2019년 유네스코 한국의 서원 9곳 중 하나로 등재되었다. 초입에서 증거사진을 남긴다. 연이어, "선비촌"이다. 예전에 서너번씩 선비촌 탐방을 했던 이력이 있는터라, 문지방에 갓쓰고 도포입은 선비상을 배경으로 자전거의 흔적만을 남긴다.

 

이제는 직진이다. 부석사 가는길이다. 사실, 부석사에 사족을 다는것은 씨건방진 노릇이다. 그냥 눈길 닿는대로 감동을 느끼면 그 뿐이다. 유네스코 유산, 무량수전등 국보급들이 즐비하고 그 속을 타박타박 걸으며 새로운 삶의 생기를 얻는다. 차량이 아닌 자전거로 돌아보는 부석사는 감동이 곱절이다. 부석사의 뿌듯함을 뒤로 하고 이제 자전거는 인내심 테스트에 나섰다.

 

 

바로 백두대간 마구령(馬鉤嶺)을 오르는 것이다. 해발 820M, 순간 경사도 20% 넘는 구간을 헉헉대며 오르는 것이다. 마구령 구간은 볓 좋은 날에는 감동이 몰려오지만 흐릿한 날에는 마치 도적떼들이 금방이라도 나타날듯 음침해진다. 마치 원시림같다. 약25여명의 라이더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구령을 힘겹게 오른다. 이윽고, 표지석 앞에선 표정들이 자신감 뿜뿜이다.

 

허겁지겁 물을 들이키고 꼬깃 준비해온 바나나를 베어문다. 벌써 배꼽시간을 훌쩍 넘었다. 순흥의 유명한 묵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나니 주인장이 사과즙을 한박스 쓱 내어준다. 후한 인심이다. 부부와 딸이 하는 식당이라 더 정겹다.

 

◆영주 서천변 자전거길, 겹겹이 펼쳐지는 경치들

 

이제 영주 자전거길의 핫스팟으로 접어든다. 영주는 의외로 자전거 인심이 매우 후하다. 서천변에는 자전거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출발, 도착, 주차등의 포인트로 활용할 수도 있다. 서천 강변은 꽤나 넓다. 폭포도 만들어져 있다. 달리다 보면 조선초기 풍운아 정도전의 고택인 "삼판서 고택" "제민루"도 절벽위에 자리하고 있다. 먼 발치에서 증거를 남긴다.

 

여기서 약 15Km 정도 달리면 무섬마을에 닿는다. 강변 데크위로 설치된 자전거 전용도로는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풍광과 편리함을 갖추고 있다. 사람들의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자전거 데크길은 때론 숲속으로, 때론 물위로 이어져 있어 제대로 된 호사를 단단히 누린다. 영주에서의 자전거는 확실한 부르조아 놀음이다. 오전내내 힘겹게 달려온 모든 땀방울에 대한 보상을 단단히 받는다

 

 

◆무섬마을에서는 무심(無心)해 진다.

 

이윽고, 오늘의 종착점인 무섬마을 이정표가 눈에 뜨인다. 다들, 살짝 흥분이 된다. 너나 할것없이 낭만과 영화속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무섬교위에서 멈춘다. 다들 잠시 사색에 젖는다. 잔잔한 강물과 모래사장 그리고 무섬마을의 전통가옥들이 한폭 수채화를 뿌린다. 강과 마을은 잘 어울린다. 무섬마을은 '물위에 떠있는 마을'이다. 외로운 마을이다.

 

내성천과 서천이 만나 물돌이를 한바퀴 휘저으니 마침내 마을은 외로운 섬마냥 갇힌 형국이 된다.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 '회룡포', 영월의 '청령포' 마냥 고독스런 섬속의 마을이 되는것이다. 무섬마을에서는 다들 작가가 되고 시인이 된다. 어디서나 누르면 작품이 된다. 무섬마을의 하이라이트는 외나무 다리다. 150m에 이르는 외나무다리는 그 역사가 350년이나 되었다.

 

마을과 육지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던 셈이다. 여러편의 영화도 찍었고, 매년 사진사들의 콘테스트도 벌어진다. 사실, 외나무다리에서는 굳이 물속에 안빠지려고 뒤뚱댈 필요도 없다. 물길이 약한 날에는 기껏해야 무릎정도밖에 물이 차지 않으니 첨벙대기도 좋다. 다들 다리위에서 한껏 자태를 뽐낸다. 무섬마을은 무심하다. 굳이 애걸복걸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다. 툭 내려놓는 미학의 즐거움, 그 무심을 무섬마을에서는 한껏 누려야 할것이다.

 

왠 종일 달리며 흘린 땀이라도 씻을 요량으로 강물에 손을 담근다. 손끝에 물결의 일렁임이 전달된다. 온몸에 청량함이 물길쳐 돌아 나간다. 여기는 무섬이다.

 

글·사진 김동영 여행스케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