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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성 이슈트반의 오른손은 영원히 썩지 않을 것이니”

[유럽 인문학 기행-헝가리] 이슈트반 대성당의 젠트 욥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폭설이 거칠게 내리고 있었다. 날씨가 험하니 만큼 오가는 행인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남쪽의 세케슈페헤르바르 성당 회의실에 참사회 소속 주교와 신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표정이 심각한 것으로 보아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것 같았다.

 

“이슈트반 선왕이 서거하신 후 내란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선왕의 유해가 기적을 낳는다면서 유해에 손을 대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유해를 안전한 장소로 옮겨야겠습니다.”

 

세케슈페헤르바르 성당은 헝가리를 기독교 국가로 만든 선지자였던 이슈트반(재임 1000~38년) 선왕의 유해가 보관된 곳이었다. 1038년 8월에 숨진 이슈트반은 미라로 만들어져 성당 한가운데에 놓인 관에 누워 있었다.

 

헝가리의 첫 왕이었던 이슈트반은 어릴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1000년에 열린 대관식 때에는 일부러 교황 실베스테르 2세에게서 왕관을 받아 머리에 썼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지역 영주들을 누르기 위해 전쟁을 벌이면서도 곳곳에 성당을 세웠다. 외국 성직자를 초청해 기반이 약한 헝가리의 교회 전통을 하나씩 쌓았다. 이런 공적을 쌓은 덕에 세상을 떠나고 45년 후인 1083년에는 성인으로 시성됐다.

 

이슈트반이 숨진 이후 그를 우상처럼 숭배하는 신비주의가 동유럽에 만연했다. 이들은 이슈트반의 유해를 갖고 있으면 병을 낫게 하거나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그가 서거한 뒤 왕위 계승권을 놓고 내란이 벌어져 헝가리가 혼란에 빠지자 신비주의 신도들은 세케슈페헤르바르 성당에서 이슈트반의 유해를 훔쳐가려고 했다. 신부들은 유해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섣불리 이슈트반 선왕의 유해를 성당 밖으로 갖고 나가면 더 위험합니다. 관은 지금 자리에 그대로 두고 유해만 꺼내 다른 관에 옮겨 성당 지하 비밀장소에 보관하도록 합시다.”

 

 

오랜 논쟁 끝에 세케슈페헤르바르 성당의 주교가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이슈트반의 유해는 성당 지하 깊숙한 묘지에 묻히게 됐다. 참사회는 대신 이슈트반의 오른손을 유해에서 떼어내 따로 모시기로 했다. 오른손에 기적의 능력이 더 강하다는 게 당시 일반적인 믿음이어서 잃어버릴 우려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참사회는 이슈트반의 유해를 지하 묘지로 이장하고 오른손은 성당의 다른 비밀 장소에 숨겼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성당 가운데 놓인 관에 여전히 유해가 있다고 믿은 헝가리인은 매일 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곤 했다. 참사회 신부들은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신부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내부자의 배신이었다. 당시 성당에 재정을 담당하던 메르쿠르라는 직원이 있었다. 그는 이슈트반 선왕의 유해 이전 이야기를 나누던 참사회 신부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다. 호기심이 생긴 그는 그날 밤 모든 직원과 성직자가 잠든 틈을 타 이슈트반 선왕의 오른손을 훔쳐 달아나버렸다. 이튿날 그가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 성당에는 난리가 났지만 그가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 없어 오른손을 회수할 수 없었다.

 

 

■젠트 욥의 기적

 

“이슈트반 선왕의 오른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냈단 말이지?”

 

“세케슈페헤르바르 성당에서 재정을 담당하던 메르쿠르란 작자가 이슈트반 선왕의 오른손을 훔쳐 달아나 고향에 숨어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직접 그자를 만나러 가겠다. 당장 행차를 준비하라.”

 

메르쿠르가 이슈트반의 오른손을 훔쳐 달아나고 4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1086년이었다. 오랜 내전 끝에 라슬로 1세(재임 1077~95년)가 국왕 자리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던 시기였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를 썼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던 그에게 이슈트반의 오른손 이야기가 들려왔다. 전쟁 중에 가끔 들은 적이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급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탓에 크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슈트반의 오른손을 훔쳐간 자가 고향인 비하르에 숨어 살고 있다는 정보가 보고됐다. 라슬로 1세는 성물을 다시 찾게 된다면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챙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직접 비하르에 가서 성물을 돌려받기로 했다.

 

“이슈트반 선왕의 오른손을 내놓기만 한다면 너의 죄는 묻지 않겠다. 오히려 네가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재산을 하사토록 하겠다.”

 

중무장한 병사들을 거느리고 간 라슬로 1세는 메르쿠르를 야단치기는커녕 달콤한 말로 구슬렸다. 강압적인 언사로 몰아붙였다가 혹시라도 이슈트반의 오른손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국왕의 부드러운 말에 메르쿠르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창고 지하실에 이슈트반 선왕의 오른손을 보관해 두었습니다. 전하께서 저 같은 죄인을 용서해주시고 오히려 어깨까지 두드려주시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병사들이 창고 지하실로 내려가 화려한 은제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겉만 보아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렀다. 라슬로 1세는 의자에서 일어나 직접 상자를 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이건 기적이야!”

 

라슬로 1세는 상자를 열자마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신하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국왕이 저러는지 궁금하게 생각했다.

 

“세케슈페헤르바르에 있는 이슈트반 선왕의 다른 유해는 모두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던가? 심지어 살은 먼지로 변했고….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손, 이슈트반 선왕의 오른손을 보라! 피부, 근육은 뼈에 온전한 상태로 붙어 있다. 상하거나 부패한 곳은 하나도 없다. 이슈트반 선왕이 서거하신 지 벌써 48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오른손이 전혀 부패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이다.”

 

라슬로 1세는 이슈트반의 오른손을 보관하고 있던 비하르의 창고를 허물고 수도원을 새로 지었다. 성물을 보관한 장소를 영원히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새 수도원에는 젠트 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헝가리어로 ‘성스러운 오른손’이라는 뜻이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순례자가 젠트 욥을 찾아가 머리를 숙인 채 기도를 드렸다. 젠트 욥이 숨겨져 있었던 비하르는 지금은 루마니아 영토다.

 

 

■성물의 방랑

 

이슈트반의 오른손은 너무 유명해서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기적을 실천하는 성물’이라는 소문이 퍼져 시대적 상황에 따라 훼손하려는 세력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슈트반의 오른손은 14세기 초에는 세케슈페헤르바르 성당에 이전됐지만, 16세기 오스만 투르크가 헝가리를 침략했을 때에는 보스니아로 옮겨졌다. 나중에는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알려져 있는 라구자의 도미니카 수도원에 숨겨졌다.

 

1771년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이슈트반의 오른손을 라구자에서 빈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성물을 빈의 쇤브룬 궁전에 잠시 전시한 뒤 곧바로 헝가리의 부다로 돌려보냈다. 성물은 1944년까지는 부다 성에 있는 지기스문트 예배당에 보관됐다.

 

 

이슈트반의 오른손은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군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 잘츠부르크로 옮겨져 비밀 동굴에 숨겨졌다. 나중에 잘츠부르크로 진격한 미군이 성물을 발견해 잘츠부르크 대주교에게 맡겼고, 전쟁이 끝난 1945년 8월 20일에는 헝가리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성모마리아 수도회가 운영하는 수도원에 보관됐지만, 나중에 부다페스트의 페스트 지역에 건설된 이슈트반 대성당에 모셔졌다. 젠트 욥은 대성당의 주 제단 왼쪽에 있는 젠트 욥 예배당에 안치됐다.

 

한편 해마다 8월 20일에는 젠트 욥의 귀환을 기념하는 미사가 이슈트반 대성당에서 진행된다. 미사를 마친 뒤에는 부다페스트 시내에서 젠트 욥 행진 행사가 이어진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