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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전쟁 상흔 간직한 평화의 땅에서 아스라이 만난 금강산 천하절경-강원도 화천

5월께 개통 백암산 케이블카 전망대 서면 북한 풍경이 한 눈에
한국전쟁 막바지 전투 치열했던 파로호, 유람선에서 마음의 여유
'꺼먹다리'엔 아직도 포탄·총알 흔적

강원도 화천에는 대형 호텔이나 리조트는 물론 스키장도 없다.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천혜의 자연경관과 우리나라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은 ‘안보의 현장’이다. 수많은 안보 관광지 중에서 곧 개통을 앞두고 있는 두 곳을 먼저 돌아봤다. 북한을 조망할 수 있는 백암산 케이블카와 전쟁 막바지에 영토 쟁탈전이 치열했던 화천댐 그리고 파로호 일대를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이다.

 

 

■백암산 케이블카

 

화천은 삼팔선 이북에 자리를 잡은 탓에 광복 직후에는 북한 영토였다. 이곳이 한국에 속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부터였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없어졌다. 지금 도시는 전쟁 이후에 새로 만든 계획도시다. 화천의 지명도는 신천어축제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축제 이전에는 ‘춘천에서 1시간 더 가야 하는’ 시골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미국 CNN에서도 주목하는 세계적 축제를 개최하는 도시로 더 유명하다.

 

백암산 케이블카 하부 승강장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도로가 좁아 차 두 대가 지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자동차가 다가오면 서로 조심해서 피해야 한다. 승강장에 도착하려면 두 차례나 군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좁은 길을 올라가는 도중에 군부대도 지나간다. 군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벙커 등으로 은폐한 대포를 볼 수도 있다. 10~20년 전에는 민간인이 감히 군부대를 지나간다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백암산 일대에서는 한국전쟁 때 수많은 폭격이 이어지는 바람에 모든 나무가 불에 타 없어졌다. 전쟁이 끝난 직후에 백암산은 그야말로 헐벗은 상태였다. 하지만 자연의 힘은 위대하고 신비하기 그지 없다. 일부러 나무를 심어 가꾸지도 않았다는데 한국전쟁이 끝나고 69년이 지난 지금은 산에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하지만 고목은 물론 큰 나무는 드물다. 이곳에는 참나무 종류가 많지만 소나무류도 드물지 않다.

 

백암산 케이블카는 아직 100% 완공된 상태는 아니다. 5~6월은 돼야 문을 열고 관광객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곳이 관심을 끄는 것은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1170m 전망대로 올라가면 북한 지역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임랑댐과 금강산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금강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아쉬운 것은 군의 안보 규정 때문에 북한 지역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점이다. 맨눈과 망원경으로 언젠가는 하나의 땅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휴전선 너머를 관찰하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다.

 

백암산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과 전망대 일대의 풍경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지금은 이른 봄이어서 온통 갈색 천지이지만 꽃이 만발하고 초록이 우거질 무렵이면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경치가 승강장과 전망대를 에워싼다. 눈과 가슴은 시원해지고 코와 귀는 상큼해지고 온몸은 향긋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파로호 유람선

 

파로호 승강장에서 평화누리호에 오른다. 파로호에서 평화의 댐까지 23km 구간을 오가는 50t 규모의 유람선이다. 속도는 22노트, 승선 인원은 42명이다. 다행히 바람도 그다지 불지 않아 파로호는 잠잠했다. 생각보다 맑은 호수 수면에는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담겼다. 호수에 앉아 휴식을 즐기던 물새 떼는 인기척에 놀라 하늘로 푸드덕 날아오른다. 호수 주변에는 새로 지은 것처럼 보이는 여러 채의 전원주택과 농가가 자리를 잡고 있다. 70년 전 한국전쟁의 아픔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따뜻한 햇살을 머금고 있는 언덕에는 평화로운 새 소리만 짹짹거린다.

 

화천댐은 일제 강점기이던 1939년 동아시아 침략 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건설했다. 화천댐을 만든 덕분에 파로호가 생겼다. 원래 이름은 ‘화천 저수지’였다. 호수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이곳 사람들은 ‘바다의 호수’라고 부른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화천댐과 파로호도 북한의 영토였다. 이곳의 전기는 북한 경제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도 이곳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전쟁 막바지에는 화천댐을 차지하기 위해 한국군과 북한군 사이에 전투가 치열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8군 사령관이던 벤플리트 장군에게 “화천댐과 파로호는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할 정도였다. 전투는 무척이나 치열했다. 서로 세 번을 빼앗기고 세 번을 빼앗는 탈환과 재탈환이 이어졌다. 1951년 5월 29일 지암리-파로호 전투에서 중국군 2만 4000명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둬 화천댐과 파로호를 차지할 수 있었다. 여행 안내인은 “중국군 수만 명이 호수에 수몰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쟁이 끝나고 여러 해 동안 지역주민들은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는 먹지 않았다”며 웃는다.

 

화천 저수지였던 이름이 파로호로 변경된 건 사연이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저수지를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은 ‘중국 오랑캐를 무찌른 전투가 벌어진 호수’라는 뜻에서 저수지의 이름을 파로호로 바꾸었다. 한국전쟁 이후 화천댐은 한국 경제에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1950년대에는 서울에서 사용하던 전기의 60%를 화천댐에서 제공했다.

 

 

평화누리호를 타고 달리는 호수 뱃놀이는 차분하고 담백하다. 특별한 이벤트도 없고, 푸른 산과 맑은 하늘 외에는 풍경이랄 것도 없다. 일부에서는 심심하고 지겹다고 말한다. 평화누리호 안에서 대중음악을 틀거나 여행 안내방송을 내보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만은 적극 만류하고 싶다.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깔끔한 공기를 마시며 조용하게 1시간가량 혼자만의 여유를 가지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평온한 일이던가.

 

 

뱃놀이를 마친 뒤 화천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특이한 다리를 발견했다. 일제 강점기에 화천댐을 만들 때 공사에 활용하기 위해 건설했다는 다리다. 나무로 만든 상판에 검은색 콜타르를 칠한 탓에 ‘꺼먹다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단순하지만 구조적으로 안정감 있는 모양을 보여주는데다 원형이 잘 보존돼 우리나라 교량 역사 연구에 훌륭한 자료로 이용된다. 한국전쟁 막바지에 파로호 일대에서 한국군과 북한군, 중공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때에는 이 다리를 차지하기 위한 양측의 다툼도 치열했다. 지금도 다리에는 당시의 포탄과 총알 흔적이 교각 곳곳에 남아 있다. 역시 화천은 ‘안보의 현장’이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