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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말썽꾸러기 학생 가두는 낭만의 대학교 자치감옥

[유럽 인문학 기행-독일] 하이델베르크 스투덴텐카르처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독일에서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수많은 학생들이 이 학교를 거쳐 갔고, 그 중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남긴 학생들도 많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여기서 하루 종일 교실이나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교수들은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공부만 하고 놀 줄 모른다면 한스는 멍청이가 될 거야.”

 

 

그런데 16세기 무렵 하이델베르크 주민들은 말썽꾸러기 대학생들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술을 먹고 마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행패를 부리는 학생도 있었고, 자존심 대결을 벌이다 주먹다짐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던 축사 문을 열어 돼지 떼를 꺼낸 뒤 낄낄거리며 시내 곳곳으로 끌고 다니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대학교에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이 계속 주민들을 괴롭히면 폭동이 일어나 상호간에 큰 피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학생들의 장난이 도를 넘었다는 사실은 대학교 측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 대학교는 자치권을 갖고 있었다. 학생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세속적 사법권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대학교 안에 불량한 학생들을 가두도록 합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학교에 학생용 감독을 만들기로 했다. 이름은 ‘스투덴텐카르처’라고 지었다. 학생 감옥은 1600년대에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알테 유니버시타테’, 즉 구 대학 건물 계단 아래 있는 작은 공간에 설치됐다. 아주 어둡고 습해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었다.

 

 

“불량한 학생들을 잠시 가둬둬야 한다는 데에는 우리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쁜 짓을 했더라도 사람을 죽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열악한 시설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학생감옥을 본 학생들은 반발했다. 그곳에 갇힌 학생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학교 측은 1712년 아우구스티너 가세에 있는 현재의 위치로 학생감옥 위치를 옮겼다.

 

불량 학생은 잘못의 정도에 따라 짧게는 48시간에서 길게는 4주까지 강제로 학생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매트리스가 깔린 침대도 제공됐다. 그러나 갇혀 있는 동안에는 침대와 베개 사용료를 내야 했다.

 

이곳에 갇히면 첫 48시간 동안에는 식사로 빵과 물만 먹어야 했다. 그 이후에는 스스로 식품을 반입할 수 있게 했다. 맥주도 들여갈 수 있었다. 동료 학생들이 학생감옥에 음식과 음료수를 넣어주기도 했다.

 

학생감옥과 대학교 건물 사이에는 문이 있었다. 감옥에 갇힌 학생은 그 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가 낮에는 수업이나 다른 학교 활동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바로 감옥으로 돌아가야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이델베르크 학생감옥 수감은 신입생 통과 의례로 자리를 잡게 됐다. 나중에는 누구라도 이곳에 갇힌 학생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감옥에 갇힌 학생은 친구들을 초청해 수감을 축하하면서 파티를 열기도 했다.

 

학생들은 학생감옥 안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다른 수감 학생 방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들은 방의 벽이나 천장, 가구나 계단, 복도에 낙서를 했다. 처음에는 양초 검댕을 이용했다. 나중에는 색을 낼 수 있는 물건이면 무엇이든 사용했다.

 

학생감옥에 가본 경험이 있는 ‘단골 수감생’은 미리 물감을 준비했다. 어떤 학생들은 방에 ‘고독’ ‘왕립 궁전’ ‘산수시’ 등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학생감옥은 더 이상 학생을 가두는 용도로 쓰지 않는다. ‘아쉽게도(?)’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4년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문이 닫힌 채 내버려져 있었다. 아무도 그곳에 들어가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덕분에 방들은 매우 잘 보존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수감될 때의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1900년대 후반 들어 하이델베르크 학생감옥은 관광명소로 인기를 얻었다. 그곳에는 지금도 철제 침대와 목제 식탁이 놓여 있다. 식탁에는 갇혀 있던 학생들이 못으로 긁어 만든 각종 글씨가 남아 있다. 너무 좁기 때문에 한 번 둘러보는 데 10~15분이면 충분하다. 사진을 찍으면서 다니면 물론 더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감옥 체험’을 할 수는 없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