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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조선시대 핫 플레이스,강원의 명소는 지금]촘촘 대나무 뚫고 정상 오르니 北 하조대 南 주문진 천하절경

(6) 양양 죽도

 

 

섬 전체에 대나무 가득 '죽도'라 불려
해안가 내려가면 기기묘묘 바위 압도
옛 양양부사 '신선이 사는 곳' 극찬도


고려 말인 1349년, 이곡(李穀·1298∼1351년)은 8월14일부터 9월21일까지 38일간 동해안을 유람하고 '동유기(東遊記)'를 남긴다. 비 때문에 양양에서 이틀을 머물고 강릉에 도착하기 전에 중간에서 이틀을 묵는다. “10일에 동산현(洞山縣)에서 유숙하였는데, 그곳에 관란정(觀瀾亭)이 있다. 11일에 연곡현(連谷縣)에서 묵었다.” 관란정은 어디에 있었을까.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관란정을 '동산현(洞山縣) 동쪽 2리에 있다'고 알려준다. '죽도(竹島)'를 함께 설명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부 남쪽 45리 관란정 앞에 있으며, 푸른 대나무가 온 섬에 가득하다. 섬 밑 바닷가에 구유같이 오목한 돌이 있는데 닳고 갈려서 교묘하게 되었고, 오목한 속에 자그마한 둥근 돌이 있다. 전설에는, “둥근 돌이 그 속에서 이리저리 구르므로 닳아서 오목하게 된 것이며, 다 닳으면 세상이 바뀐다”고 한다.

섬 전체가 소나무 사이로 대나무가 촘촘하다. 이 때문에 죽도라 이름을 얻었다. 대나무 사이로 커다란 바위에 주절암(駐節巖)이라 새긴 글자가 보인다. '주절(駐節)'은 '부절(符節)을 멈춘다'는 뜻으로 머물거나 쉰다는 뜻이다.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죽도가 아름답다는 표식이다. 정상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철제 전망대가 우뚝하다. 북으론 하조대, 남으론 주문진이 반짝이는 물결 옆에 삐죽이 나왔다. 죽도정(竹島亭)에 앉아 잠시 쉬다가 해안으로 내려가면 기기묘묘한 바위 형태에 입이 벌어진다.

풍화가 심한 이곳저곳에 신선과 관련된 이름을 붙였다. 연사대(煉砂臺)는 연사(煉砂)를 제련해 단사(丹砂)를 만드는 곳이다.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 “모든 초목은 태우면 재가 되지만 단사는 태우면 수은이 된다. 태우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 도로 단사가 되는데, 이를 먹으면 장수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단사는 장생불사(長生不死)를 목적으로 하는 신선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청허대(淸虛臺)에서 청허(淸虛)는 노장의 학설인 청정허무(淸淨虛無)를 말한다. '장자(莊子)'에 “빈방에 햇살이 비치니 거기에 좋은 징조가 깃든다. '虛室生白, 吉祥止止.'라는 구절이 있는데, 청허(淸虛)하여 욕심이 없으면 도심이 절로 생겨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욕심이 없는 청허한 상태가 되면 갈매기도 경계심을 풀게 되고, 함께 노닐 수 있다. 갈매기와 희롱하며 함께 노닌다는 농구암(弄鷗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방선암(訪仙岩)은 신선을 찾아 출발하는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다시 보자. 죽도를 설명하면서 '섬 밑 바닷가에 구유같이 오목한 돌이 있는데 닳고 갈려서 교묘하게 되었고, 오목한 속에 자그마한 둥근 돌이 있다'고 했는데, 풍화혈을 구유같이 오목한 돌이라 본 것이다. 상상력을 더해 신선이 여기서 단사를 만들었다고 여겼다. 윤증(尹拯·1629∼1714년)은 '죽도의 돌구유를 읊다'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관란정 아래서 가벼운 배를 불러 타고/ 푸른 죽도 앞에 와서 작은 구유 보았네'

이해조(李海朝·1660∼1711년)는 양양지역의 뛰어난 경승 30곳을 읊었는데, 그중 '죽도의 신선 절구(竹島仙臼)'는 이곳의 이미지를 그린 것이다. 당나라 때 이적지(李適之)가 현산(峴山)에 올라가 한 말 술을 부어놓을 만한 바위 구덩이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와준정을 세우고 놀았다고 한다. 이적지가 오른 현산(峴山)은 양양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양양부사인 이해조는 중국의 고사를 빌려 와 시를 지은 것이다. 절구 안에 있는 둥근 돌이 다 닳으면 세상이 바뀐다는 전설을 떠올리는 이해조의 눈에 죽도는 신선이 사는 선경(仙境)이었다.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

강원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