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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라떼는 말이야]달리기·기마전·응원 소리…코로나시대라 더 그립네

1976년 가을 운동회

 

일제강점기 정치적 의미서 시작
그래도 학생들에겐 특별한 하루

당시엔 마을에서 가장 큰 축제
주민들 경기에 참가 열기 달궈

'총력안보·총화단결' 깃발 눈길
유신정권 홍보문구 시대상 반영


누구나 초등(국민)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몇 가지 있다. 어제 일도 깜박깜박 잊는 나이가 됐지만 입학식, 졸업식, 방학, 소풍, 운동회, 캠핑 등 초등학교 시절 보낸 일은 무엇 때문인지 기억에서 생생하게 재생된다. 바위에 새겨진 암각 글씨처럼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어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학생들은 답답한 교실을 벗어나 야외로 나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다.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자연 속에서 뛰어다니는 일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봄은 소풍 때문에 흥분되고 설레는 계절이었고, 가을은 운동회에서 달리기 솜씨를 발휘해 학용품을 받는 날이었다. 특히 사이다, 환타, 콜라 등 입안을 톡 쏘는 청량음료를 드물게 맛보는 날이라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다렸다. 여름과 겨울 또한 모두가 기다리는 방학이 있어 목을 길게 뽑으며 기다리는 계절이었다.

찬바람이 불어 가을의 시작을 느낄 즈음이면 운동장은 아이들로 가득 찼다. 운동회 날짜가 정해지면 방과 후 매일 연습에 들어갔다. 단체 매스게임은 여러 학생이 손발을 맞춰야 해 숙달될 때까지 반복 연습을 이어갔다. 곤봉, 기마전, 텀블링, 전통무용은 운동회의 빠질 수 없는 종목이었다. 청군과 백군을 나눠 치러지는 운동회는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승부가 결정돼 가슴 졸이며 지켜보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의 점수 조작이 의심되기도 하지만 두근거린 설렘은 미소 짓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학교 운동회는 마을에서 가장 큰 축제였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은 모든 주민이 학교에 나와 동참했다. 학교는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중심이었다. 주민들도 행사 중간 달리기에 참가하는 등 축제 열기를 더욱 달궜다.

가을운동회는 일제강점기 전쟁을 수행하는 예비전력을 확보하는 정치적 의미에서 시작했지만 학생들에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1976년 춘천초교 학생들이 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운동회를 열었다. 패션이 가미된 자전거를 타고 학생들이 질주하고 있다. 동심 가득할 운동장엔 난데없이 '총력안보', '총화단결' 깃발이 등장한다. 정치적인 색채가 짙은 유신정권의 홍보문구가 당시 사회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총화단결이란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전거 탄 소년들은 핸들을 힘껏 부여잡고 모퉁이를 돌고 있다. 뒤따른 어린이는 발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막판 뒤집기를 상상하며 힘껏 페달을 밟고 있다. 학생들의 얼굴엔 뒤처지지 않으려는 승부욕이 보인다.

사진에 등장한 시민들의 모습에서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운동장 주변 계단에 있는 시민들은 앉거나 일어서서 자전거 시합을 보고 있다. 팔짱을 끼거나 옆 사람과 대화를 하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시민들의 옷차림도 재밌다. 한복을 입은 사람이 대다수다. 시민들의 표정엔 넉넉함이 담겨있다.

또 한 장의 사진은 3명이 함께하는 달리기다. 긴 고깔모자를 쓴 학생이 앞장서서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뒤 이어 학생들이 허리를 잡고 반환점을 돌고 있다. 강원도의 수부도시 춘천시의 대표적 초등학교라 그런지 맨발이나 고무신을 신고 있는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웃음소리가 들릴 듯한 장면이다.

학생들 뒤로 판자로 지은 건물이 보인다. 사진은 마치 단원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타임머신이라도 있으면 그 시절 그 장면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김남덕·오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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