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를 겪은 엄마는 안전을 가르치는 사람이 됐다. 12년 전 첫째 아들을 잃은 그는 아픔이 남겨진 마을을 떠나지 않았고 끝내 남아 노인과 아이들에게 일상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김정해씨는 가슴에 노란리본을 달고, 손목에 노란팔찌를 하고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마을안전을 지키고 비슷한 상처를 품은 이들을 위로하고 싶어요.”
안산에서 활동하는 마을안전강사 김씨에게 이 일은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활동이었다. 12년 전 오늘 김씨의 일상은 무너졌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뗀 김씨는 “늘 네 식구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는데 어느날부터 한자리가 비어있었다”며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울음을 삼키는 날들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아들 안주현군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김씨를 억눌렀고 아들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4·16 가족협의회를 꾸려 전국 곳곳에서 참사의 진실을 알리려 했지만 따뜻한 위로의 시선과 함께 차가운 질시도 받았다. ‘보상금을 얼마 받았다더라’, ‘유가족이 다시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네’ 같은 수군거림이다. 상처가 깊어 일을 다시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을 안전·재난 안전강사 활동이 그를 일으켰다.
마을 안전 강사는 안산지역 복지관이나 학교 등을 찾아가 맞춤형 안전 교육을 하는 활동이다. 복지관에서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예방법과 보행 안전 교육을 하고 학생들에게는 우천 시 시야 확보 방법 등을 알려주는 것이다.
김씨는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이유에서인지 이웃들과 만나도 늘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시간이 쌓이다보니 조금씩 그 벽이 허물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활동은 점차 김씨의 일상이 됐다. 김씨는 “동네의 한 벤치에서 만난 어르신이 ‘그때 안전 교육해줬던 분 아니냐’며 먼저 인사를 건넨 적이 있었다”며 “그순간 제가 우리 동네 안전 강사가 돼있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2019년에는 강사 양성 과정을 밟아 약 4년간 지역 사회 내 학교와 복지관 등을 찾아 재난 안전 교육을 했다. 김씨는 “교육 도중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 보일 수 있어 위안이 됐던 것 같다”며 “교육이 끝나기 전 ‘저의 봄은 짧고 아팠지만 여러분의 봄은 희망적이었으면 한다’라고 말하는데 그때마다 아들 생각이 나 저도 울고 수강생들도 울음을 터뜨린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런 시간을 거치며 상처도 아물었다고 한다. 그는 “집안에만 머물렀다면 더 심해졌을 고통이 지역사회 이웃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조금씩 해소가 됐다”고 했다.
김씨는 올해부터 안산시마음건강센터 소속 동료지원가로 본격적인 상담 활동을 시작한다.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기 위한 활동이다.
김씨는 “피해자가 피해자를 보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뿐 아니라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참사 등 다른 재난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소통하려 한다”고 했다. 또 “서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만큼은 마음 한편에 묻어뒀던 아픈 기억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역사회와 소통하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듯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참사로 인한 상실의 아픔을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