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가 지나도 사그라들 줄 모르는 폭염에 화훼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농가는 꽃이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해 시들고, 줄기가 성장하지 못한 상태로 제 시기보다 일찍 만개해 상품성이 떨어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27일 오전 9시께 찾은 국내 최대 규모인 김해 대동 화훼단지. 이른 시간임에도 유리로 된 하우스 내부 온도는 35℃를 가리켰다.
하우스 내부를 가득 채운 올라야 꽃은 하얀 꽃잎을 피우기도 전에 노랗게 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편에는 잎을 피우지 못하고 말라 죽은 꽃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33년째 화훼농가를 운영하는 안채호(60)씨는 “오뉴월 이른 시기부터 나타난 폭염이 처서를 지나서까지 이어지니 꽃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하우스 내부 온도가 한낮에는 45℃가량까지 오르니 원래는 10일이면 뿌리를 내릴 꽃들이 제대로 활착하지 못하고, 양분을 흡수하지 못해 줄기와 잎이 말라서 죽고 있다”고 했다.
올해 김해시는 지난 6월 27일 첫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이후 51일간 폭염특보가 발효됐다. 이는 지난해 경남 지역 평균 폭염특보 44.9일을 넘어선 수치다. 지난 53년간 경남 지역 평균 폭염특보 일수는 14.0일이다.
안씨는 “함께 심은 품종들도 갈수록 모종의 크기가 작아지는 걸 보니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워지는 게 체감된다”며 “최근 들어 심은 꽃들은 상태도 좋지 못할뿐더러 25~30%가 죽어 손해가 크다”고 호소했다.
이상기후에 꽃들이 제 시기보다 일찍이 만개해 시름하는 농가도 있었다. 분홍빛을 띤 리시안셔스 농가. 활짝 핀 꽃들은 대부분 힘없이 옆으로 축 처져 있었다.
35년째 화훼업을 해온 정윤제(62)씨는 “지난해엔 빳빳하게 자랐던 꽃들이 온도가 높은 탓에 급성장해 제 시기보다 보름가량 일찍 만개했다”며 “줄기의 굵기는 예년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처서가 지나도 하우스 내부 온도가 35℃를 넘으니, 꽃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농가들이 죄다 곡소리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화훼 생산이 어려워짐에 따라 판매량도 줄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 유통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지난달 김해시가 포함된 영남화훼농협의 절화 거래량(19만 단)은 지난해 같은 기간(23만 단) 대비 17.39%가량 떨어졌다. 같은 기간 품목별 출하 물량도 국화 32.83%(3만8783→2만6052), 장미 36.63%(4만5226→2만8660), 리시안셔스 31.19%(1만515→7235) 등으로 크게 줄었다.
전문가는 폭염이 해마다 심화함에 따라 화훼의 고온 저항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혜영 경상국립대학교 원예생명과 교수는 ”무더운 날씨에선 토양의 수분 함유량이 떨어져 식물의 뿌리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자손을 남기기 위해 제 시기보다 일찍 꽃을 피우기도 한다”며 “농가 내 냉방시설은 비용 부담이 클뿐더러 큰 효과가 있지 못하며, 이상기후로 폭염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에 따라 고온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는 등의 연구가 불가피해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