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오전 11시께 찾은 이천시 한 농가. 한때 벼가 자라던 땅에는 정부가 장려한 전략작물인 논콩이 가득 심어져 있었다. 5년 전부터 논콩을 재배한 이모(41)씨는 최근 생산 걱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쌀 과잉 생산을 막겠다며 벼 대신 콩을 재배하라고 장려한 정부 정책을 따랐는데, 최근 정부가 콩 재배 면적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와서다.
전국쌀생산자협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말 농민 단체를 상대로 진행한 간담회에서 콩, 가루쌀 등 전략 작물의 재배 면적 조정을 거론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당장 재배 면적을 줄일 계획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정책 선회 가능성에 농민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략작물 육성을 장려한다는 정부를 믿고 거금을 들여 기반시설을 마련했는데, 정책을 선회하면 전략작물직불금 등 관련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콩 선별기를 마련하는 데만 6억원 정도 들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일부 비용을 지원해 줬지만 자부담이 상당했는데, 이같은 소식이 들리니까 억울하다”며 “이천 쌀은 품질과 인식이 좋아 수매값이 높은 편이라 재배 작물을 콩으로 전환한 쌀 농가는 정부 직불금을 수령해야지만 수익이 얼추 비슷하다”고 했다.
정부의 정책 선회는 예상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략작물 생산을 유도해 콩 생산량은 대폭 늘어난 반면 소비량은 턱없이 적어서다.
국립식량과학원에 따르면 국내 콩 재배면적은 지난 2021년 5만4천㏊에서 지난해 7만4천㏊로 늘었고, 자급률도 23.7%에서 38.6%로 상승했다. 반면 1인당 연간 콩 소비량은 7.3㎏ 수준이다.
남은 콩이 많아지면서 정부의 매입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서천호 의원실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가 매입한 콩 수매 물량 10만991t 가운데 66%인 6만6천224t이 재고로 남았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수요 전망은 워낙 예측하기 어려워서 생산량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전략작물인 콩의 과잉 생산이 그 결과”라며 “지금처럼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시장 상황을 섬세하게 분석해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상태이기 때문에 수요량이 늘지 않으면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으로 설명한 것”이라며 “기업 국산콩 사용 확대 등 수요 확대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