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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제주4.3 76주년] 1992년 나온 다랑쉬굴의 참상 "묻었나, 묻혔나"

①제주4.3 치유되지 못한 비극...다랑쉬굴 성역화 사업 '언제면'
세상에 진실 드러날까 유골 발견 후 굴 입구 시멘트로 막아버려
아이와 여성 등 11명이 학살당한 현장 지금도 '바윗덩이'에 눌려

제주4·3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역사다. 반세기 동안 이념의 올가미와 연좌제로 많은 도민들이 고통을 겪어 왔다. 본지는 76주년 제주4·3 추념식을 맞아 해결해야 할 미완의 과제들을 짚어봤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은 중산간마을 초토화 작전이 한창이던 1948년 12월 주민 11명이 숨어 지냈다가 군경 토벌대에 발각된 곳이다.

토벌대는 수류탄을 던지며 양민들에게 나올 것을 종용했지만, 나가면 죽임을 당할 것으로 여긴 주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토벌대는 메밀짚과 잡풀로 불을 피워 동굴에 집어넣었고, 아홉 살 아이와 여자 셋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연기에 질식, 굴 안에서 숨졌다.

사건 발생 다음날 이곳을 찾은 종달리 한 주민은 연기에 질식된 사람들이 눈·코·귀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을 참지 못해 돌 틈이나 바닥에 머리를 박고 숨져 있는 참혹한 장면을 목격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건 발생 44년이 지난 1992년 4월 1일 4·3진상조사단에 의해 다랑쉬굴이 발견됐지만, 유해는 발굴 45일 만에 화장돼 바다에 뿌려졌다.

이는 제주4·3의 참상을 차단하려는 보안당국의 압력과 지시로 행정기관이 진실을 묻어버리기 위해 유족들을 회유하면서 벌인 조치였다.

다랑쉬굴 유해 발굴과 시신 안장 과정에서 군사정권이 개입해 진실 감추기에 나선 결과, 되 4·3진상규명 운동을 전국에 확산시킨 기폭제가 됐다.

유족회의에서는 합동묘역을 조성해 시신을 안장하기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국가 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은폐가 벌여졌다.

더구나 다랑쉬굴에서 11구의 유해가 발굴됐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보안당국이 처음 내놓은 공식 입장은 “토벌대에 발각되자 집단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어 “토벌대 굴 입구에 불을 놓아 질식시켰다”는 목격자의 증언에 나오자 “남로당 유격대의 비밀 아지트였다”며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을 좌익세력으로 몰고가는 등 이념의 굴레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다.

발굴된 유해를 양지바른 곳이 아닌 차가운 바다에 뿌려진 사실이 알려지자 진상규명 운동이 가속화됐고, 특히 4·3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92년 다랑쉬굴이 발견된 그 해에 보안당국은 굴 입구에 시멘트를 발라 입구를 봉쇄해 버렸다.

32년이 지난 현재 타설된 시멘트는 걷혔지만, 굴 입구는 큰 바윗덩이로 여전히 막혀 있는 상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22년 학교법인 이화학당을 설득해 법인이 소유한 다랑쉬굴 일대 사유지 3필지 2만5124㎡의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제주도는 현재 진입로 정비 공사와 주차장 조성을 진행 중이며, 향후 위령·추모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제주4·3 연구자들은 “동굴 내부에는 무쇠솥과 숟가락, 그릇, 가죽신, 안경, 니켈도금 이빨 등 각종 유물이 남아 있지만 많이 부식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다랑쉬굴에 대한 4·3성역화 사업과 함께 유물 보존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1992년 유해 발굴 당시 허리띠만 남아 있는 백골을 비롯해 한 여성의 유골에는 비녀가 꽂혀 있었다.

유해 주변에는 안경과 옷가지를 비롯해 무쇠솥과 숟가락, 농기구 등이 발견됐다. 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실에는 다랑쉬굴 내부 현장을 재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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