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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역사의 숨결 담긴 군위 삼국유사길 다라 달린다

[두바퀴로 달리는 경북도 명품길 2천km] 군위 삼국유사길
경주보다 100년 앞선 '제2석굴암'…접근성 좋아 찾는 이 많아
아름다운 마을로 입소문 난 '화산마을'…해넘이 풍경 일품
위천 강가에 조성된 일연스님 효행의 길…군위호 바라보며 화본역으로

 

한티재, 동산테마임도,하늘정원 그리고 제2석굴암~한밤마을~창평지~화산산성~인각사~군위호~화본역~리틀포레스트 촬영지~위천 자전거길 99Km


'삼국사기' '삼국유사'-우리나라 고대사를 설파한 양대 역사서이다. 김부식이 기술한 '삼국사기'는 교과서 마냥, 국가가 주도한 정사(正史)이고, 보각국사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는 설화, 전해온 이야기, 불교등을 엮은 야사(野史)에 가깝다. 9살에 출가후, 70세가 훌쩍넘어 95세의 노모를 돌보기 위해 일연스님은 군위땅으로 내려왔다.

인각사에 머물며 약 5년에 걸쳐 마침내 1281년,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그리곤 4년뒤 84세로 입적했다. 경산에서 출생하여 비슬산 대견사(大見寺)등에서 정진을 하고 말년에 인각사로 하안(下安)했으니 보각국사와 경상북도의 땅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그리하여, 군위군은 고로면의 명칭을 과감히 "삼국유사면"으로 바꾸고 군위땅이 삼국유사의 본류임을 명명하였다.

 

 

◆팔공산 원효 구도의 길,그리고 제2석굴암

 

그 찐한 역사의 숨결을 자전거로 샅샅이 후벼볼 작정이다. 그런데, 정작 팔공산으로 둘러싸인 군위는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별이 다섯개, 최 난이도 코스중 하나이다. 하지만, 짜릿한 보상이 뒤 따른다.

해발 700m '한티재'는 대구와 군위를 나누는 경계, 꼭지점이다. 그 옆으로 난 동산테마임도를 약 1시간여 달려, 동산계곡의 오도암에 도달한다. 원효대사는 그 옛날 이다지도 깊은 첩첩산중에서 어떻게 수행을 하셨는지? "원효구도의 길" 을 따라 끊임없이 페달질을 한다. 몇굽이나 돌았을까? 발아래가 시원하다. 팔공산 하늘정원이다.

 

해발 1,100미터. 자전거를 어깨에 들쳐매고 나무길을 오르면, 제대로된 전망대가 나온다. 깍아지른 절벽틈에 만들어진 '원효굴'에서 인증샷 날리고, 여기서 다시 약1.2Km, 타다 걷다 매다를 반복하면, 해발 1,198m 팔공산 비로봉에 도달한다. 자전거로 이곳까지라니. 이런 미친짓이 군위땅에서는 가능하다. 그리곤 살판난 제비처럼 내리막을 내지른다. 시속 50Km도 순식간이다.

그 길로 숨 고르기를 하면 부계면 '제2석굴암'에 이른다. 1961년, 한 농부가 풀숲을 헤치다 자연 동굴속에 건립된 삼존석불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 이듬해 국보109호로 지정되었다. 경주 석굴암을 닮은 석굴사원이라 제2석굴암이라 불리지만 정작 100년이나 앞서서 건립되었다. 해발565m에 위치한 석굴암과는 달리, 접근성이 좋아 넓다란 기도처 앞은 불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약 1키로 남짓 떨어진 대율리 돌담마을로 향한다. 우리나라 전역 48개의 돌담마을중 원형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다고 이름 높은 '한밤마을'이다. 슬렁슬렁 돌담 사이를 자전거로 돌다보면 감성쏭쏭이다. 배롱나무 사이로 널찍히 펼쳐진 대청마루는 한폭의 수채화다. 이윽고, 낭만 즐기기를 뒤로하고 '창평지'로 향한다. 천천히 한바퀴 돈다면 참 좋을곳이다. 갈길이 바빠, 곁눈으로 새기고 질주한다. 난데없이 오르막이 턱 가로막는다. 그 옆으로 '화산산성 7Km'라고 뜨윽하니 적혀있다.

 

 

◆인생샷 찍기좋은 해넘이가 일품인 화산마을, 화산산성

 

해발 700m의 화산마을을 오르는 것은 지난(至難)한 시간이다. 약 7키로에 걸친 오르막을 머리 콱 쳐박고 페달질만 해야한다. 정상의 보상들을 기대하면서. 땀인지 빈지, 숨이 턱턱 막혀 서너번 고비가 넘어갈 쯤이면 서서히 하늘이 열린다. 바로, 약 70여가구가 고랭지 농사로 영위하는 아름다운 마을 '화산마을' 초입이다. 불과 얼마전 까지만해도 조용했던 마을이다. 입소문을 타고 인파가 이어진다. 해발 828m 화산을 중심으로 군위와 영천의 경계에 위치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마을로도 선정되었다. 군위호가 한눈에 보이는 화산마을의 '풍차전망대'의 풍광은 호사스럽다. 하늘 위 풍차속에 나를 맡기면 제대로 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발아래는 군위호의 잔잔한 물길이 펼쳐지고 산허리에는 구름이 걸려있다. 야생에는 철따라 해바라기, 코스모스등이 철바꿈을 하니 아무렇게나 들어대도 다 그림이다. 시원스레 펼쳐진 고랭지밭을 가로질러 '하늘전망대'로 또 밟아 오른다. 화산에 감탄한 서애 류성룡의 한시가 흥을 더한다. 구름과 풍차와 광활한 고랭지밭의 조합은 대서사시다.

 

 

오르는 길은 힘겨웠지만 땀의 댓가에 감사한다. 1709년 숙종때 만들어졌다는 화산산성은 원형 돔아치 하나만이 덩그렇게 남아 을시년스럽지만 세월의 흔적이 잘 남아있다. 이래저래 주민들은 밀려드는 인파로 골머리를 썩지만, 방문객들에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을 접할수 있음은 축복이다. 아! 화산마을은 해넘이때가 더 일품이다. 해질녘 풍차와 여인의 실루엣은 압권의 기억이다.

 

◆보각국사 일연(一然) 스님을 만나러 그리고 군위호

9살 소년이 엄마의 손길을 뿌리치고 출가할 적에 분명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떠나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심장은 또 요동쳤을 것이다. 그 아들과 어미는 70순이 훨씬 넘어, 90순을 지나, 이곳 군위 고로면의 인각사(麟角寺)에서 다시 만났다. 국사(國師)의 자리에 올랐던 스님은 필생의 역작인 '삼국유사'를 집필하셨다.

 

 

 

위천이 잔잔히 흐르는 깍아지른 학소대를 바라보며 84세로 입적하실 때까지 5년간 고대설화, 역사를 기술했다. 고조선 이야기, 환웅과 웅녀의 이야기, 만파식적 이야기 등 솔깃한 야사(野史)를 집대성 하였다. 고로면은 삼국유사면이 되었고, 삼국유사 테마공원도 문을 열었다. 지난 역사가 되살아나려는 노력이다. 이렇게 경상북도의 땅에서 한국의 일리아스(ilias)가 쓰여졌다는데 묘한 흥분을 느낀다.

위천 강가로 새롭게 조성된 일연스님 효행의 길을 따라가면 시원스래 2010년 조성된 군위호의 물길이 반겨준다. 인각사와 군위호 그리고 위천강변, 그 사이를 삼국유사의 숨결이 유유히 흐른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학소대를 바라보며 이제는 동심의 세계로 풍덩빠지러 갈 참이다. 논길과 마을길을 가로질러 약 15키로 정도를 달리면 낭만터로 들어선다.

 

◆간이역 1번지 화본역 그리고 옛날 옛적, 영화속으로

빠르게만 질주하는 시대! 급하게 뛰어야만 하는 우리들! 앞만보며 내지르는 경쟁! 하지만, 때론 느리게 쉼표를 찍는 것은 우리네의 값된 사치다. 그 호사의 맨끝에 '간이역'이 있다. 다니던 열차도 멈추었고 혹은 이따금씩 완행 열차만이 기척대는 간이역! 간이역은 쉼이고 오히려, 생동의 출발점이다. 그 정점에 '화본역'이 있다. 우리나라 간이역 800여개중 가장 아름다운 열차역으로 손꼽힌 '화본역'.

그덕에, 작년 MBC 손현주, 김준현의 간이역 시리즈에서 맨처음으로 소개되었다. 1,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역장님 모자를 빌려서 추억쌓기를 한다. 열차 레일 위로 한발 중심을 잡고 하늘을 향해 두손을 높히 펼쳐본다. 레일을 타고 날고싶은 역장님! 살짝 돌아가면 1960년대까지 증기열차에 물을 대었다던 20미터가 훨씬 넘는 급수탑도 만난다. 우리나라에서 몇 남지 않았다는 소중한 자산이다.

 

 

화본역 앞 인기짱 꽈배기집은 늘 줄서야한다. 자전거팀은 지루한 줄서기를 포기하고 대신 아이스크림 하나씩 배어물고 다들 나무 그늘아래 느림보마냥 퍼졌다. 시시덕대며 웃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뒹굴어도 좋은 소소한 행복터이다. 화본역옆 약200미터 남짓 떨어진곳의 산성중학교는 또 다른 재미터이다. '엄마 아빠 옛날 옛적에', 60~70년대 척박했지만 순박했던 기록들이 절절히 남겨져있는 공간이다. 그곳의 '달고나' 만들기는 늘 줄을 서야한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에서 인기몰이 하기 전부터, 이곳 산성중학교의 '달고나' 만들기는 늘 인기짱이었다. 하트모양을 성공리에 만드는 것은 늘 실패하지만 연탄불 앞에 쪼그려 앉아 설탕 국자를 휘휘 저으면 왠지 모를 즐거움이 몰려온다. "아 그랬었구나~"를 연발하며 산성중 교정을 나선다. 추억몰이에 감성을 더하기 위하여 다시 논길을 달린다. 2018년 개봉된 '리틀 포레스트' 혜원의 집을 찾아간다. 화본역에서 약 5키로 정도이다.

마을끝 한적한 곳, 외딴집이 덩그랗게 서있다. 도심 생활에 찌든 혜원이 자연속에서 삶의 활력을 찾아간다는 잔잔한 이야기터, 힐링의 집이 군위땅 끝무렵에 위치한다. 감홍씨가 주렁주렁 달린 문칸방 턱에 가만히 앉아 담장밖을 쳐다보노라면 진정한 평화로움이 스쳐진다. 지친 혜원에게 엄마는 나직히 읊조린다. "기다려. 기다릴 줄 알아야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수 있어". 혜원은 말한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아 ... "

이제 장대한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서서히 접어야 할 시간이다. 위천 강변을 슬슬 달려 널찍한 군위 체육공원에서 긴 추억을 접는다. '아뿔싸!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를 돌아보고 왔어야 했는데' ...동선이 맞지 않아 아쉽다. 숙제로 남겨둔다.

역사와 자연과 삼국유사가 공존하는 땅! 군위는 쉼없이 진화중이다.

 

글·사진 김동영 여행스케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