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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크로아티아 달마티아의 중심도시 ‘두브로브니크’

극작가 버나드쇼·'꽃보다 누나'들도 극찬한 지상 낙원

 

'어째서 지금까지 이렇듯 높은 하늘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되어 나는 정말 행복하다. 맞다! 이 끝없는 하늘 말고는 모든 것이 허무하고, 모든 것이 기만이다. 이 하늘 말고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다가 의식을 되찾은 청년 공작 안드레이 볼콘스키의 입을 빌어 이렇게 독백한다. 아마도 이 읊조림이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통렬하게 주장하고 싶었을 주제였을 것이고, 코로나 팬데믹을 관통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는 전 인류의 심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톨스토이의 나라가 푸른 하늘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국기를 가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2022년 3월 17일 아침에 눈을 뜬 지구의 인류는 이 팬데믹 시대에 아수라 같은 전쟁터를 실시간 중계로 지켜보며 절규한다. 키이우(키예프)에서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여인들과 낡은 군복을 다시 꺼내 입고 총을 든 노병들을 보며,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이웃나라의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하는 독재자를 혐오하며 마블 코믹스의 악당처럼 그의 권선징악적 말로를 열렬히 염원한다.

 

나는 우크라이나령이었지만 그 독재자가 또한 2014년 찬탈해 간 흑해의 크림반도를 떠올리며, 3세기경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꿈에도 잊지 못해 왕권까지 이양하고 낙향한 아름다운 달마티아의 한 도시, 극작가 버나드 쇼를 비롯해 '꽃보다 누나'들까지 지상의 낙원이라 부르던 두브로브니크를 떠올린다. 그곳 역시 동유럽 사회주의권과 구(舊) 소련의 붕괴 그리고 유고연방의 해체로 인해 1991년부터 5년 간 전화(戰禍)에 휩싸였고, 현재 복구된 아름다운 도시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다.

 

 

◆아드리아해의 진주

 

아드리아해 남쪽 연안, 크로아티아의 최남단 두브르브니크는 발칸의 서안(西岸), 달마티아의 중심도시다. 7세기경 약탈을 피해 도망 온 로마인들에 의해 1358년까지 라구사(Lagusa), 라구시움이란 이름의 도시국가로, 1420년 달마티아가 베네치아에 매각되면서 두브로브니크로 이름이 붙여졌다. 두브로브니크는 오크나무숲 또는 작은 숲(dubrava)을 뜻한다. 베네치아공화국의 지배로 아드리아해의 중요 무역 중심지로 각광을 받다가 1667년 대지진으로 경제적 기반을 상실하고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되어 1808년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1815년에는 빈 회의를 통해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가 1918년 유고슬라비아에 합병되었다. 다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끝난 후에는 크로아티아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를 침공한 세르비아 군에 의해 도시가 많이 파괴되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우리를 먼저 폭파하라'며 인간 방패를 만들어 두브로브니크를 지켰으며 전쟁 후 유네스코 등의 지원을 통해 대부분의 유적들이 복원되었다.

 

당시 격전이 벌어진 스르지산 아래 바닷가를 빙 둘러 솟은 해안 성채의 오래된 성벽 대부분은 두 겹이며 베네치아인들이 쌓은 것이다. 해안가에 세워진 거대한 둥근 탑 성곽에서 코발트빛 바다를 바라보거나 돌아서서 스트라둔 거리의 후기 르네상스양식 붉은 오렌지색 지붕 집들을 바라보면 왜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곳을 지상 최고의 낙원이라 꼽는지 이해가 된다. 특히 해질녘의 구도시는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좁은 길들이 미로처럼 보여 신비롭기까지 하다.

 

성벽 안은 자동차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노상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보면 벽면에 포(砲) 자국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가이드들은 석회암을 곳곳에 드러낸 스르지산을 가리키며 적들이 저쪽에서 이쪽을 향해 쏜 것이라 손짓한다. 그 손끝에 관광객들의 뒷머리와 즐겁고 환한 웃음들이 오히려 섬찟해 등이 서늘하다. 14세기에 지어진 두 수도원 중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은 서쪽 입구를, 도미니쿠스 수도원는 동쪽 통로를 맡고 있다. 말간 대리석길이 도시에 경건함을 더한다. 신이여, 다시 이 곳이 전쟁터가 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두보르니크의 우리나라 관광객이 '꽃보다 누나'로 급증했다면 세계적인 관광붐을 일으킨 드라마는 조지 R.R. 마틴의 원작 『얼음과 불의 노래』로 만든 HBO의 TV시리즈 '왕좌의 게임'이다. 극중 블랙워터만이 내려다보이는 일곱 왕국의 수도인 거대한 킹스랜딩은 두브로니크와 성벽, 앞바다의 로쿠룸섬, 극중에 CG를 덧씌운 그라다크공원과 루프박물관, 보카르 요새, 파일 게이트 앞은 셀카봉을 든 왕좌의 게임 마니아들이 와글와글 몰려 있다.

 

왕좌의 게임 카라카선을 타고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 주변을 항해해 보세요. 왕좌의 게임 칵테일을 마시며, 물 위에서 킹스랜딩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답니다. 배 위에서 특별한 의상을 입거나, 철로 된 왕좌에 앉아 사진도 찍어보세요. 두보르니크로 떠나기 전 가장 많이 검색되던 문장들이었고 그곳에선 극중 인물로 드레스 코디한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역시 문화예술이 관광산업 최상의 촉매제가 확실한 모양이다.

 

렉터궁전은 달마티아건축의 걸작이다. 렉터는 '최고 통치자'라는 뜻으로, 최고 지도자의 집무실이었던 궁전의 정면에는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6개의 기둥이 있고, 안뜰에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던 선장이자 자선 사업가로 알려진 미호 프라차트의 청동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엄청난 재산을 국가에 기증했는데 사후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638년에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렉터궁전 앞 성모승천대성당에는 티치아노가 그린 성모승천 그림이 있다. 지진 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가 3차 십자군 전쟁 때 영국으로 돌아가던 길 아드리아해에서 폭풍을 만나 조난당했을 때 로크룸섬에 좌초해 목숨을 건졌던 기념으로 지은 것을 지진 후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도시 곳곳에는 오래 정착해 돌아보고 싶을 만큼 흥미로운 역사와 운치가 있다. 대성당 광장을 지나 남쪽에 있는 바로크계단은 왕좌의 게임에서 세르세이 라니스터가 굴욕적으로 행진했던 '속죄의 길'이다.

 

계단 아래 마르셰에서 주변의 농부들이 파는 치즈와 과일들을 사며 전쟁박물관이 있는 스폰자궁전의 보세창고 아치에 새겨진 '우리의 법은 속이거나 속임을 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물건을 계량할 때는 신께서도 함께 하신다.'를 떠올리게 한다. 판매대마다 놓인 저울들, 역시 교역의 도시다운 계량의 엄중이다. 뒤편 작은 광장의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며 바라보는 작은 성당의 벽에 또 포(砲) 자국이 있다. 두꺼운 이중 성벽과 화려한 외교술, 돈 그리고 중세유럽에서 유일하게 이슬람국과 자유교역을 했던 아름다운 도시의 기어코 피하지 못한 20세기의 비애가 저기 있다. 21세기의 비애는 현재 흑해연안에서 진행 중이니, 신이여 가호를 베푸소서.

 

박미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