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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뜨는 힐링 명소, 저수지 한바퀴] <1>무릉도원 경산 반곡지

물·나무 한눈에 담으며 저수지 한 바퀴 걷기 지친 일상 위로
봄이면 자연이 연초록 데칼코마니와 화사한 복사꽃으로 무릉도원

 

코로나19는 평범한 일상마저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코로나19의 장기화는 급기야 '코로나 블루'(우울감)를 몰고 오기도 했다. 탁 트인 공간, 자연과의 공감이 이런 우울감의 탈출구로 주목받는 가운데 산, 들판의 한 편에 자리한 저수지는 최고의 힐링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 나무를 시선에 담으며 저수지 한 바퀴 걷기는 지친 일상에서의 사색과 함께 코로나가 가둬버린 틀을 벗어나는 해방감마저 안긴다. 농업용수를 가둬놓은 저수지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경산 반곡지〉

 

경북 경산시 남산면에 자리한 반곡지는 한국판 '무릉도원'으로 불리며 전국의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아름다운 저수지다.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핫플레이스가 된지도 오래됐다.

 

경산시 저수지관리대장에 따르면 반곡지는 1903년 축조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그 태생은 훨씬 더 이전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마을 사람들의 수영장이자 졸업사진 촬영장

 

예전 반곡지 물속에는 왕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수령이 족히 200년은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20여 그루가 계절마다 색다른 색깔과 아름다움을 뽐내며 저수지를 지키고 있다.

 

저수지가 있는 반곡2리 송금목(77) 씨는 "반곡지 물속에 성인 3명이 손을 맞잡을 정도의 큰 왕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어 어릴 때 그 나무 위에서 낮잠도 자고 낚시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저수지 준설작업을 하면서 더 많은 물을 담기 위해 뿌리가 드러난 그 왕버드나무를 뽑았다"고 했다. 아마 그 왕버드나무가 있다면 청송 주산지처럼 신비로운 풍광은 지금보다 더 했을 것이란 아쉬움이 커지는 대목이다.

 

 

이 마을 출신 경산시청 소속 공무원 송정갑(55) 팀장은 "반곡지는 어릴 때 아이들의 수영장이었고 왕버드나무 가지는 다이빙 발판이었다"면서 "우리마을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할 때 반드시 그 왕버드나무에 올라 앉아 졸업기념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2011년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선정돼

 

반곡지는 자그마한 저수지이지만 계절마다 새 옷을 입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저수지 둑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을 이겨낸 고목들의 모습과 물 속에 비친 그림같은 풍경을 번갈아 보며 탄성을 내뱉고 연신 셔터를 누른다.

 

 

반곡지가 사진 촬영 장소로 유명세를 탄 것은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선정되면서부터다.

 

그 전에는 강태공들의 낚시터 정도로만 알려졌었다.

 

카메라에 풍광을 담고자하는 이는 새로운 작품을 찾고자 나선 몇 몇 사진작가가 고작이었고, 웨딩화보를 찍고자 예비 신혼부부를 데려온 웨딩사진 작가가 전부였다. 물론 그들에게는 남에게 알려주기 싫은 '비밀 장소'였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나오면서 반곡지는 누구나 마치 사진작자라도 된 듯 한번쯤은 꼭 찾고 싶은 곳이 됐다.

 

 

반곡지가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선정되는 데는 당시 한국사진작가협회 경산지부장으로 활동했던 서하복(67) 씨의 공이 크다. 그는 반곡지와 가까운 남산 전지공단에서 제조업을 하면서 취미로 사진을 찍고자 1990년대 말부터 이곳을 찾았다. 그렇게 찍은 반곡지의 사계절 사진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진 찍기 좋은 곳 찾기' 공모에 활용됐고, 현장을 찾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선정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서 씨는 반곡지 사진 찍기의 계절 포인트가 있다고 말한다.

 

봄, 왕버들에서 잎이 나올 때 반곡지에다 복사꽃을 넣은 모습은 압권이라고 했다. 여름 둑길 안쪽에 들어가서 짙은 녹음과 어우러지는 반곡지의 모습, 가을의 단풍, 특히 겨울은 설경이 카메라에 담길 때 신비로움을 자아내지만 눈 오는 날이 많지 않아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목(裸木)을 배경 삼는 것으로도 이를 대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속에 비친 왕버드나무의 반영(反影)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뜨기 직전, 바람이 없는 날 반곡지를 찾기를 권한다.

 

반곡지는 2013년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의 '우리 마을 향토자원 베스트 3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각광

 

이곳 왕버들 잎은 5월부터 무성해지기 시작해 11월부터 점차 시들어간다. 저수지를 향해 팔을 뻗은 가지들은 맑은 물에 닿을 듯 말듯한데 물에 비친 그 그림자의 운치가 감춰 놓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수면 위로 물안개가 어른거리는 이른 아침이나 안개 낀 날에 찾는다면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몽환적인 신비로움을 드러내는데 마치 자연의 반란 같다.

반곡지는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얼마 전 종영한 SBS 월·화 드라마 '홍천기'에서 주인공인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한 키스신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또 '구르미 그린 달빛', '7일의 왕비', '사의 찬미' 등 드라마와 2014년 개봉한 영화 '허삼관'에서는 주인공 허삼관이 더 많은 피를 팔기 위해 반곡지 물을 퍼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눈썰미 있는 사람은 이를 놓치지 않고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이 반곡지를 찾아 '인생샷'을 남긴다.

 

꼭 카메라를 들지 않더라도 연초록 데칼코마니와 화사한 복사꽃이 어우러져 마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봄, 신록을 자랑하는 여름, 단풍진 가을, 가지 하나하나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겨울, 그 풍광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안구 정화'가 된다.

 

 

◆쉼, 힐링 공간

 

코로나19에 지친 이들에겐 힐링 공간이 되고 있다. 저수지 한 바퀴 돌면 시인이 되고, 인근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자연을 삼킨다.

 

대구 평리동에서 온 황금수(68), 이해인(63) 씨 부부는 "코로나19로 야외활동보다는 집안에 머무를 때가 많아 답답했는데 TV 드라마를 보고 찾은 반곡지 둘레길을 한 바퀴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니 절로 행복해진다"고 했다.

 

반곡지를 찾는 사람들은 주변에 편의시설을 갖추더라도 인공 시설물 설치를 최소화하고 현재의 상태가 최대한 유지 관리되길 바란다.

 

아주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다가 힘에 겨운 듯 크게 구멍이 나 속살을 드러낸 고목나무 속에 누군가 'OO야! 힘내. 힘내자. 화이팅!'이라고 적어 놓았다. 반곡지가 마치 우리 모두 힘을 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 이겨내 보자고 외치는 희망 메시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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