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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산청 피해마을 가보니] 700㎜ 물폭탄, 삶의 터전 순식간에 앗아갔다

산사태로 흙·나무 뒤엉켜 쑥대밭
급격하게 분 물살에 다리 끊기고
토사 덮친 집·도로는 형체 사라져

“불난리에 이어 물난리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20일 찾은 산청군 생비량면 도동마을. 지난 3월 화마에 이어 불과 4개월 만의 수마에 삶의 터전을 잃은 산청군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지난 16일부터 4일간 7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내린 마을 곳곳은 아수라장이다. 아스팔트는 흙길로 변했다. 굴착기가 마을을 덮은 짚풀들을 옮겼고, 주민들은 삽으로 흙을 퍼 날랐다. 마트 직원들은 굳은 얼굴로 물에 젖은 상품들을 하나둘 밖으로 내놓았다.

 

산청군은 지난 19일 사상 초유의 ‘전 군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단일 지자체가 극한 호우를 이유로 일부 읍면동이 아닌 관할 전 지역에 대피를 권고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소방 당국은 산청 곳곳에서 극한 호우로 인한 마을 침수와 산사태가 발생하자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했다.

 

안영원(67)씨는 집 마당을 덮친 흙을 대문 밖으로 밀어냈다. 그가 살던 1층 주택 내부 바닥도 온통 흙으로 뒤덮였다. 안씨는 “19일 점심쯤부터 물이 급격히 불어나 1m 정도 높이까지 들어찼다”며 “태풍 매미 때도 이 정도로 물이 차진 않았다. 집 안까지 물이 다 차서 어떻게 치워야 할지 막막하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에서 전대희(60)씨가 운영하던 가게도 토사에 잠겼다. 전씨는 “가게 안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전부 물에 잠겨 못 쓰게 됐다”며 “한평생을 이곳에 살았는데, 이 정도로 물난리가 난 건 처음이다”고 한탄했다.

 

인근 상능마을로 가는 하나뿐인 도로는 산사태로 막혔다. 흙과 나무가 뒤엉켜 도로를 덮었고, 그 사이로 흙탕물이 계곡물처럼 쏟아졌다. 설상가상 휴대폰 신호마저 잡히지 않아 고립된 마을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인근 마을을 오가는 도로 곳곳의 가드레일은 부서지고, 일부 도로는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통행이 제한됐다. 빗물에 휩쓸려 온 승용차만 한 바위가 길을 막고 있기도 했다.

 

신안면 신등천 위 돌로 만들어진 문대교는 중간 부분이 끊어져 하천 위에 떨어져 있었다. 하천 옆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는 김모(54)씨는 “물살이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어릴 적부터 보던 다리가 한순간에 끊어져 버렸다”며 “정미소 안에도 물과 흙이 가득 들어차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세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산청읍 부리마을은 비가 그친 지 20시간 가까이 지났는데도 마을을 가로지르는 경사로를 따라 흙탕물이 콸콸 쏟아졌다. 아래편 집은 떠내려온 나무들에 뒤엉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고, 그 위로 전봇대가 덮쳤다.

 

형과 형수를 잃은 노기준(62)씨는 “마을에 있던 지인을 통해 두 분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소방대원들과 같이 수색에 나섰고, 시신을 수습할 때도 함께 있었다”며 “심경을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주민 민정순(69)씨는 “산에서부터 빗물이 파도처럼 마을을 덮쳐왔다”며 “우리 집은 비교적 지대가 높아 마을 주민들이 피해 왔는데, 다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혼란에 빠졌었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지난 3월 대형산불이 훑고 간 시천면 외공마을 김원중(52) 이장은 “산불로 나무들이 사라지면서 비가 올 때 물이 흐르던 길이 이전과 달라졌고, 이 탓에 도로가 잠기는 등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며 “몇 달 새 불난리에 이어 물난리라니, 하늘도 참 무심하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