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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전두환, 끝내 ‘5·18 학살’ 사죄 없이 떠났다

정부, 전두환 사망 ‘국가장’ 않기로 결정
5·18 단체 “주범들 끝까지 책임 물을 것”

 

 

5·18 유혈진압의 장본인인 전두환씨가 23일 숨졌다. 5·18민주화운동 유족과 부상자 등 피해자는 물론 광주시민과 국민에 대한 사죄도, 반성도 없이 90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증 등 지병을 앓아온 전씨는 이날 오전 8시40분께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부인 이순자씨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전씨의 시신은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졌으며, 유족은 장례 일정을 협의 중이다.
 

전씨의 사망에도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5·18 유혈 진압’으로 광주와 한국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전씨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군권을 장악한 뒤 이듬해 5월 광주 민중항쟁을 유혈 진압하고서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1981년 제11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집권 기간 내내 철권통치를 이어오던 그는 5·18 학살 진상 규명, 대통령 직선제 촉구 등 민주화 열기에 눌려 1988년 권좌에서 밀려났다.

전씨는 이날 숨지기 전까지 숱한 기회가 있었지만 5·18 관련 반성이나 사과, 사죄를 하지 않았다. 되레 ‘5·18과 자신은 무관하다’는 내용을 담은 회고록을 지난 2017년 펴내 역사 왜곡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회고록에서 ‘5월의 사제’로 불리던 고(故) 조비오 신부를 가리켜 “가면을 쓴 사탄” “거짓말쟁이”라고 왜곡 기술한 것이 빌미가 돼 광주 법정에 수차례 불려 나오기도 했다.
 

전씨를 필두로 한 5·18 유혈진압 세력이 침묵하거나 역사 왜곡을 일삼으면서, 거듭된 시도에도 5·18 진상 규명은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1988년 5공 및 광주청문회, 이어진 12·12 및 5·18 사건 검찰 수사와 재판,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조사 등을 거쳤지만, 발포명령권자와 암매장지 등 핵심 의혹 규명에는 다가가지 못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 광주 오월 3단체와 기념재단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학살자 전두환은 자신이 5·18과 무관하다며 구차한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해 왔다”며 “우리는 시민 대학살자 전두환의 고백과 참회, 사법부의 엄벌을 강력히 촉구해왔지만, 그의 죽음으로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단체는 “하지만 우리는 오월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만고의 대역죄인 전두환의 범죄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 역사정의를 바로 세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이날 ‘조사 대상자 전두환씨 사망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전두환씨는 1997년 대법원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유혈진압과 관련하여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무기징역 판결이 확정된 인물”이라며 “전두환씨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엄정한 조사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위원회는 아울러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 등 5·18 유혈진압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신군부 인사들을 향해 “더 늦기 전에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전두환씨에 대해 ‘국가장’(國家葬)을 치르지 않기로 결정했다.2011년 국장과 국민장을 통합해 국가장이 도입된 이후 사망한 전직 대통령 중 국가장을 치르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형호 기자 khh@kwangju.co.kr,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