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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6·25 때 전사한 ‘함안 3형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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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김영주·영희·영달, 1950년 9~10월 전사 후 유해 못 찾고 첫째는 위패조차 없어

6·25전쟁 당시 입대한 함안 3형제가 모두 전사했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 71년 만에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형제는 그동안 보훈처에 개인국가유공자로 분류돼 형제 관계임이 드러나지 않았다가 최근 유가족이 위패를 설치하려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유가족은 3형제(김영주·영희·영달) 전사자 위패를 고향 함안에 모실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도움을 요청했다.

 

9일 전사자 3형제 가족의 막내동생인 김영조(83)씨는 함안군 대산면 옥렬리 자택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최근 국가보훈처로부터 받은 국가유공자 증서 3개를 보였다. 증서에는 6·25전쟁 당시 전사한 김영주, 김영희, 김영달 세 형제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위패 설치 과정서 71년 만에 알려져
보훈청 “드문 일… 유해 발굴 노력”
동생 “고향에 위패 모시는 게 소원”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함안군 대산면에 살던 김기태, 이말순씨 부부는 슬하에 8남매(6남 2녀)를 뒀다. 가족은 7월 중 전쟁을 피하기 위해 김해 부원동으로 피난을 갔는데 이곳에서 김영희(당시 26)씨와 김영달(당시 21)씨가 강제 징집됐다. 장남인 김영주(당시 28)씨는 전쟁 전에 국방경비대에 입대해 복무 중이었다.

 

3형제가 모두 입대한 지 3개월 뒤, 가족이 접한 첫 소식은 비보였다. 집으로 전달된 것은 3장의 사망통지서. 김영희 이병은 9월 30일, 김영주 일등중사는 10월 13일, 김영달 일병은 10월 22일 전투 중 전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들은 모두 어디서 전사했는지 확인되지 않았고, 유해도 발굴되지 못한 상황이다.

 

6·25전쟁 당시 12살이던 막내 김영조씨는 어느덧 83세 노인이 됐다. 나머지 남매는 모두 작고해 홀로 남았다. 그는 “피난민들로 정신없는 상황에서 형들이 징집돼 특별한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며 “전사 소식과 함께 유해조차 찾지 못하자 부모님은 죄책감을 느끼며 많이 힘들어 했었다”고 회상했다.

 

3형제가 6·25전쟁에서 전사했다는 사연은 그동안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3형제는 이후 전몰군경 국가유공자로 인정됐지만 김영희·영달씨는 1978년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김영주씨는 2012년 배우자가 사망함에 따라 지원 대상에서 재적 처리됐다. 이에 따라 보훈처에서도 그동안 이들의 가족 관계를 파악할 수 없었다.

 

가족들의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김영조씨는 10여년 전 김영주씨의 위패를 설치하고자 국방부를 통해 행적 파악에 나섰지만, 15사단 소속이었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바쁜 생활에 치여 중단해야만 했다. 그러다 올해 초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경남동부보훈지청에 방문해 이 같은 사연을 알렸다.

 

이에 경남동부보훈지청은 3형제의 전사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8일 김영조씨에게 3형제의 국가유공자 증서를 전달하며 예우를 다했다.

 

보훈지청 관계자는 “3형제가 한 전쟁에서 전사한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일이다. 전사자분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절대 잊지 않고 그들의 공헌과 희생정신을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국방부 유해발굴 사업단과 연계해 3형제 유해 발굴에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조씨의 살아 생전 마지막 소원은 함안군에 3형제의 전사자 위패를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김영희·영달씨의 위패는 서울 현충원에 서로 다른 위치에 봉안돼 있다. 첫째 김영주씨는 71년 동안 위패조차 없는 실정이다.

 

김씨는 “우리 3형제의 죽음은 6·25전쟁 속 발생한 참혹한 비극으로 국가가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며 “현재 우리 형제는 전사한 지 71년이 지났지만 한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 유해도 발굴되지 않는 상황에서 위패라도 부모가 묻혀 있는 함안 고향 땅에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사연을 전했다.

 

글·사진= 김용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