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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이원선의 힐링&여행] 600년 향기 은은하게…전남 순천 낙안읍성

찐빵처럼 부푼 초가지붕, 게딱지처럼 어깨 맞대
왜구 막으려 1397년 쌓은 토성…읍성 전경은 남문과 서문 사이 중간 지점이 최고

 

가로등이 가물가물 눈꺼풀을 치켜드는 아래로 다소곳한 초가지붕이 부푼 찐빵처럼 선이 곱다. 이른 잠을 깬 참새들이 새벽을 날자 푸르스레한 하늘에 동글동글 파문이 인다. 성벽 아래에 오동나무는 금전산을 넘는 여명 속에 연보랏빛 꽃등을 주렁주렁 내걸었다. 스멀스멀 몸을 사리는 어둠 속에서 멍멍개가 짖고 성 위로 솟아오른 대나무 숲에선 짝을 찾는 직박구리의 날갯짓이 요란한 새벽이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순천 낙안읍성은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범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1397년(태조 6년)낙안 출신의 절제사 김빈길이 흙으로 쌓은 토성이다. 1424년(세종 6년)에 이르러 토성을 석축으로 고쳐 쌓으면서 현재 규모의 성이 되었다. 이후 정유재란을 맞아 순천 왜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병에 의해서 파괴된 것을 인조 6년(1628년)낙안군수로 있던 임경업에 의해 복구된다.

 

 

 

◆ '한국 최고 여행지 50선'에 뽑혀

 

읍성은 성벽의 길이 1,406m, 높이 3~5m이며, 면적은 223,108㎡이다. 부속 시설물로는 성문 3개, 옹성 3개, 치 4개, 해자와 객사 및 동헌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낙안읍성의 구조상 특이한 점이라면 대부분의 옹성이 원(둥근)형인데 반해 읍성의 옹성은 'ㄷ'자 형이다.

 

성곽과 내부 마을은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동문(낙풍루)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중앙대로는 조선시대의 육조대로를 연상케 한다. 대로를 중심으로 북동쪽으로는 낙안객사, 사무당(동헌)등 공공건물이 주를 이루는 반면 동남쪽으로는 민간인들의 삶의 거주지가 주를 이룬다. 읍성의 대부분은 전통한옥인 초가로 이루어졌으며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1983년 6월 14일 대한민국 사적 제 302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대한민국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어 있으며 미 CNN선정 '한국 최고 여행지 50선'뽑히기도 했다.

 

낙안읍성의 전경을 보려면 남문(쌍청루)과 서문 사이의 중간지점이 최고다. 약간 언덕진 곳으로 여장이 없는 성벽아래 양옆으로는 대나무 숲이 무성하다. 이곳에 서면 부푼 호빵같이 부드러운 초가지붕이 게딱지처럼 어깨를 맞댄 모습이 올망졸망 정겹다. 관광차 나온 사람과 사진촬영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한발씩 자리를 양보하며 새벽 댓바람에 옷깃을 여며가며 하얀 입김을 내뿜는다.

 

 

 

◆정감어린 읍성 돌담길

 

읍성의 돌담길은 어릴 적에 뛰놀던 고샅처럼 정감이 넘쳐난다. 눈높이만큼 낮게 내려앉은 초가의 추녀가 돌담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그랬고, 어머니가 호미로 '콩콩'찍어 부루(상추의 방언)를 심고 고추를 심던 손바닥만 한 남새밭이 그랬다. 또 장독대 아래의 공터에 뒤늦게 피어 부럽다며 살포시 고개를 숙인 노란유채꽃이 있는 터앝이 그랬으며 돌담길 끝으로 연록색의 여린 감잎사귀를 헤집은 장밋빛햇살이 끌고 가는 그림자가 그랬다.

 

낙안읍성은 전체 모양이 배를 닮았다고 하여 풍수지리에서는 '행주형'이라고 한다. 즉 낙안읍성의 지리적 위치가 떠나가는 배의 형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낙안읍성에서는 샘도 깊이 파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배의 밑창에 구멍이 뚫리면 가라앉는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 수령 600여년의 도 기념물 제 133호인 은행나무가 있다. 남내마을에 있어 남내리 은행나무는 '행주형'읍성의 돛대에 해당한다고 한다. 낙안읍성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나무라할 수 있다.

 

 

더군다나 임진왜란 당시 의병이 군량미를 옮기고자 은행나무 밑을 지날 적에 까닭 없이 수레바퀴가 빠졌다고 한다. 이에 수레바퀴를 수리하고자 잠시 멈추었다가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수리가 끝나 서둘러 길을 재촉하는데 앞쪽에 있던 다리가 일진광풍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시간상으로 보아 수레바퀴를 수리하는 때였다. 만약 수레바퀴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군양미는 물론 장군과 부장들을 포함한 병사들의 생명을 장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는 은행나무 목신이 조화를 부린 것이라 믿었고 지금껏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1960년경에 이르러 집 주인이 이 나무을 팔았다고 한다. 이에 나무를 산 목상이 은행나무를 베려하자 큰 구렁이가 나와 나무주위를 기어 다니고 또 마을사람들의 꿈속에 목신이 나와 울며 기도하고, 큰 구렁이로 변하고, 나무가 뿌리 채 뽑히는 등 잠자리가 사나웠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이 얼마간의 돈을 추렴하여 목상에게 물어주고 나서야 잠잠해 졌다고 하니 신목은 신목인 모양이다.

 

 

◆읍성의 명물,대장간

 

이른 아침으로는 식당주인이 강력 추천하는 동태젓국과 김치찌개로 정했다. 메뉴에도 없는 특별 식이라며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권하기에 결정한 것이다. 아침을 먹는 중에 앞쪽으로 보인 초가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오른다.

 

"저곳은 뭣하는 뎁니까?"묻자 읍성의 명물 중 하나인 대장간이란다. 호기심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저것이 뭔지 아세요"하며 가계의 주인인 듯 아주머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굵은 대나무의 윗부분을 듬성듬성 쪼개고 그 어깨부분에 오방색 띠로 알록달록하게 두른 큼지막한 대나무가 서있다.

 

처음 보는 물건이라 "글쎄요"하자 정안수(정화수)대란다. 아니게 아니라 맨 위쪽, 쪼개진 대나무 안쪽으로 아버지의 밥공기 같은 사발하나가 놓여있다. 높낮이를 조절할 수도 있고, 옮길 수도 있는 것이 세련되어 보인다. 어머니가 장독대를 이용하는 것과는 완연하게 달라 보인다. 생경한 물건으로 초가 지붕위로 두 단의 나무계단 위에 화분을 올려 장식한 것이 얹혀있다. 왜구에게 끌려간 사람들의 무사귀한을 비는 상징물이란다. 왜구의 출몰이 빈번하다보니 그만큼 애환도 많았던 모양이다.

 

어디선가 '땅땅'하는 소리가 인다. 익히 기다리던 소리라 부리나케 달려가니 대장간 진열대 위로 호미, 낫, 부엌칼, 괭이, 쇠스랑 등등의 농기구가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다. 대장간 한쪽으로 흙으로 만든 화로 안쪽 도가니가 앉은 자리에서는 풀무대신 "윙~"하는 기계 풍(風)을 품은 숯불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다. 대장장이가 쇠꼬챙이로 된 불쏘시개로 뚝뚝 건드리자 잔뜩 골이라도 난 듯 불티를 빨갛게 내뿜는다.

 

 

 

대장장이가 벌겋게 단 쇳조각을 모루에 얹어 '땅땅'하고 매질을 반복하자 호기심이 가득한 관광객들이 주위로 몰려든다. 한참을 본업에 충실하여 매질이던 대장장이가 몰려든 구경꾼을 향해 "함마(큰 망치)질 해볼 사람"했고 이윽고 썩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함마질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곁들인 끝에 벌겋게 단 쇳조각 하나를 집어 모루에 올린 뒤 관광객과 더불어 호흡을 맞춘다.

 

 

◆골목마다 정감이 넘쳐나

 

낙안읍성은 600여년의 향기를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는 오래된 읍성이다. 어느 골목을 기웃거리든지 영희와 철수가 놀고 간 꽃자리처럼 따뜻한 정감이 넘친다. 아기자기한 장독대가 있는데 된장을 뜨는 아낙네가 없다고, '졸졸졸'빨래터는 있는데 빨래하는 아주머니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관리소에 모델을 요청하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주머니들이 신기루처럼 골목길을 돌아 나와 포즈를 취해주기 때문이다. 헌데 작금의 상황은 '코로나19'로 인해 응해줄 수가 없단다. 성은 옛 성 그대로인데 대문마다 굳게 채워진 자물쇠가 세월이 멈췄단다.

 

글·사진 이원선 시니어매일 선임기자 lwonssu@hanmail.net

 

특집부 weekly@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