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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이원선의 힐링&여행] 봉화 청량산

 

매년 오는 가을이건만 단풍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은 설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뭉그적거리다가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가을이 끝나는가 싶어 은근한 조바심이 인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봉화 청량산으로 길을 잡는다.

 

◆많은 전설을 품은 청량사

 

봉화군 명호면에 위치한 청량산은 해발 870m로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지만 수려한 자연경관과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198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2007년 3월에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23호로 지정되어 학술적·경관적·역사적 가치를 입증 받는다. 또한 2008년 5월에 준공된 청량산 하늘다리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악형 현수교량으로써 현재까지도 많은 탐방객들이 찾고 있다.

 

나아가 8개의 굴과 4개의 약수가 있다는 청량산에는 옛 선인들의 발자취가 곳곳에 서려 있다. 신라시대 때 명필 김생이 처녀와 내기를 했다는 김생굴, 퇴계선생의 오산당(청량정사), 신라 말 대학자 최치원이 마셨다는 총명수, 청량사를 창건한 원효대사와 소의 전설 등이 그것이다.

 

청량산과 청량사를 온전하게 감상하려면 맞은편 축용봉(해발 845.2m)을 오르는 것이 좋다. 오르는 길은 임도와 청량산성을 따라서 오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일행은 청량산성으로 올랐다가 하산 길을 임도로 정했다. 산성을 따라서 20여분 오르자 밀성대란 아담한 정자가 다소곳하게 맞는다. 숨도 고를 겸 정자에 올라앉자 막힌 속이 확 뚫릴 만큼 시원하고 눈으로 들어오는 가을 청량산이 황홀지경이다.

 

빼어난 경치 속에 자리한 밀성대는 아름다운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슬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1330~1374)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해 산성을 쌓고 군사들을 훈련시킬 때 명령을 어긴 죄수들이나 처형할 포로들을 낭떠러지 아래로 밀었다는 데서 얻은 달갑지 않은 이름인 것이다.

 

 

◆청량사를 포근히 품은 육육봉

 

축용봉(해발845.2m)에 올라 가을이 깊은 청량산을 바라다보니 마치 붉은 치마를 펼쳐놓은 듯 황홀하고 청량사가 자리한 터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문외한의 눈에도 길지다. 아닌 게 아니라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는 듯하다. 이는 활짝 핀 홍연의 수술자리처럼 안빈낙도, 아늑해 보인다. 하지만 고려 말경 역사서의 기록은 이곳이 홍건적과의 전쟁터란다.

 

이를 증명하듯 청량산성과 오마대(五馬臺), 공민왕이 은신했다는 공민왕당 등이 있으며 머물 당시 썼다는 유리보전(琉璃寶殿)이란 현판이 있다. 현판은 1974년 12월 10일 경북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현재 청량산 청량사에는 보물 제1666호 청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2010.10.25지정),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919호, 2016.11.16.지정), 청량사 건칠보살좌상(문수보살)및 복장유물(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1호, 2015.12.28.지정)등 많은 유물이 있다.

 

한편 보물 제1666호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리보전에서 모셨다. 하지만 현재는 유리보전 앞 오른쪽 편에 '지장전'을 증축, 별도로 모시고 있다. 원래의 자리에는 개금불사를 통해 관세음보살상이 대신하고 있으며 보물 제1919호 약사여래좌상은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로 알고 있었으나 현재의 과학으로 비밀을 풀어 보니 '건철약사여래불'로 판명되었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바탕 층 삼베에 대한 방사선탄소연대 측정 결과 770~945경으로 추정할 뿐이다.

 

 

◆"뿔이 셋 달린 소"와 소나무

 

축용봉에서 굽어보는 청량사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저 위태위태한 터에 자리한 청량사는 어떻게 창건되었을까? 한 채의 암자라면 모르겠거니와 유리보전과 요사(寮舍: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을 부르는 총칭)채 등등 여러 채의 절집이 절벽 한 중앙에 들어선대 대한 의문이 인다. 오로지 인력에만 의존한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건축물이고 보니 더욱 그렇다. 청량사는 663년(신라 문무왕 3년)경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써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뿔 셋 달린 소와 더불어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청량산에서 멀지 않은 남면에 남씨 성을 가진 농부가 소를 키우며 살았다. 어느 날 농부의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점점 자라 성체가 된 송아지는 머리에 뿔이 셋 달린 것이 육중한 체격에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던 소가 어느 날부턴가 먼 곳을 보면서 울며 앉았다. 그 의문은 곧바로 풀려 고승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 졌다. 농부는 마음속으로 "아마도 스님과 인연이 있은 모양이다. 시주나 해버리자!"고 생각했으며 그 때 나타난 스님이 원효대사였다. 대사를 만난 소는 지금까지와는 딴판으로 순한 양이 된다.

 

 

서까래조차 인력으로는 엄두도 못 낼 힘든 불사였다. 대들보와 기둥, 석축 같은 무거운 짐들은 소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 어렵고도 힘든 작업을 삼각의 소는 의연하면서도 꿋꿋하게 견디고 있었다. 그 덕택으로 청량사 불사는 무사히 준공을 보게 된다. 그런 소가 준공을 하루 앞두고 죽어 버린다. 그제야 원효대사는 죽은 소가 '지장보살'의 화신임을 알았다.

 

소의 죽음을 불쌍히 여긴 사람들은 절간 바로 앞(지금의 유리보전)에 고이 묻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신화는 잊혀 진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소의 무덤쯤 되는 자리에서 소나무 한그루가 싹을 틔웠다. 어느 정도 자란 소나무는 이상하게도 가지가 셋으로 벌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전설속의 뿔이 셋 달린 소를 기억하곤 '삼각우송' 또는 소의 무덤을 상기 시켜 '삼각우총'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한 폭의 그림인 청량사

 

축용봉으로부터 하산을 마친 일행은 청량사로 향했다. 청량사 가는 길은 일주문을 통해서 오르는 길 등 여러 갈래가 있지만 입석을 초입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른다. 중간 중간 너덜이 있고 길은 좁아서 두 사람이 겨우 비켜나지만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다. 10여분쯤 오르면 바로 가는 길과 응진전을 둘러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일행은 응진전으로 에둘러가는 길을 택했다. 응진전으로 가자면 얼마간의 오르막은 필연이다. 반면 응진전에서 골바람을 맞으며 내려다보는 풍광 또한 일품이다. 응진전을 지나 얼마가지 않아 총명수를 만나고 어풍대를 만난다. 어풍대는 고대 중국의 열어구란 사람이 바람을 타고와 보름동안 놀다 간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풍대를 지나 곧장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를 오르면 김생굴, 김생폭포, 경일봉, 자소봉을 등등을 지나 하늘다리를 건너면 최고봉인 장인봉까지 종주할 수 있다. 만약 종주가 힘에 부친다면 청량사를 들렸다가 뒷실고개를 올라 장인봉을 거쳐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어느 코스를 택하든 능선까지 오르는 30~40여분의 수고는 어쩔 수 없다.

 

어풍대에서 20m쯤 하여 청량사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는 청량산 전경이 아닌 청량사 전경을 한 눈에 볼 수도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다. 가을빛을 담뿍 받아 하얗게 빛나는 칠층석탑이 수문장을 자처한 듯 우뚝하고 독야청청 삼각우송이 시퍼렇다. 그 위로 늘씬한 사슴의 등을 닮은 유리보전의 용마루가 완만한 곡선으로 늘어져 눈에 시원하다.

 

가을이 익은 청량사가 한 폭의 그림이다. 이 가을의 풍경을 어찌 그냥 보낼 수 있을까? 절을 찾는 사람과 전설을 기억하려는 사람들, 울긋불긋 채색을 마친 단풍바다에 풍덩 빠지려는 사람들이 환한 웃음을 몰아 등산로 가득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오간다. 그중 한사람으로 행렬 속으로 은근슬쩍 낄 적에 청량사 유리보전의 풍경소리가 덩그렁 땡그랑 산행에 지친 심신을 다독인다.

 

글·사진 이원선 시니어매일 편집위원 lwonss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