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게도 강원도는 오래전부터 양악(洋樂·클래식 음악)의 변두리로 인식돼 온 게 사실이다. 물론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적 음악문화 관점에서 그렇게 보였음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원도는 그럴 수밖에 없는 지리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점이 오히려 설득력을 갖는다. 이를테면,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양악이 유입되고, 프란츠 에케르트에 의해 최초의 양악대가 창단된 역사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서양 음악문물은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전파됐거나 안착했기에 그렇다. 뿐만 아니라, 평양의 숭실학교라든가 서울의 배재학당과 이화학당같이 서양 음악교육을 기본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던 교육기관이 당시 강원도엔 거의 없었고, 그나마 비슷한 시기에 포교(布敎)를 위해 강원도에 파송된 미국 선교사들의 활동 영역 또한 소극적이었거나, 그들이 미션의 도구로 음악을 적극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원도는 상대적으로 양악의 수혜권(受惠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곳이 됐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여건에 놓여 있던 강원도였기에 서양 문물의 유입이 활발하게 전개됐던 다른 지역에 비해 양악의 경험과 혜택이 필연적으로 뒤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접근성이 어려운 산간오지의
고성 건봉사지가 28일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강원도 기념물인 ‘고성 건봉사지(高城乾鳳寺址)’를 28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승격, 지정했다. 신라 법흥왕 7년인 520년에 승려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원각사(圓覺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며 새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어 건(乾)과 봉(鳳)을 합쳐 ‘건봉사’로 바뀌게 되었다. 고성 건봉사는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의 발상지이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교신앙의 중심도량이다. 또 조선시대 세조(재위기간:1455∼1468년) 대에 왕실의 소원을 빌기 위해 세운 ·원당(願堂) 기능을 수행했고,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6.25 전쟁 당시 불에 타면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있으나 ‘고성 건봉사 능파교(보물)’,‘건봉사 불이문(강원도 문화재자료)’ 등 다수의 문화유산이 현존하고 있다. : 미니해설 ■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 : 극락에 오르기 위해 10,000일(약 27년)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 외우며 기도하는 모임 ■ 원당(願堂) : 왕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세우거나 육성한 불교 사찰 한편 고성 건봉사지는 1990년 지표 조사를 시작으로 2002년부터
구글이 국가보훈처와 함께 22일 전세계에 공개한 ‘한국의 비무장지대(Korea's Demilitarized Zone)’ 온라인 전시에 강원도내 콘텐츠가 다수 포함돼 눈길을 끌고 있다. 정전 7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온라인 전시의 자연부문 전시에는 양구 DMZ 자생식물원과 펀치볼, 두타연의 모습은 물론 대한민국 람사르 습지 1호인 인제 대암산 용늪과 한탄강, 접경지대의 희귀동식물 등의 콘텐츠가 담겨있다. 특히 펀치볼과 용늪 등 일부 콘텐츠는 구글 스트리트 뷰 기술을 활용해 실제 현장을 걸으며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것 처럼 구성하는가 하면 현장에서 녹음한 자연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했다. 이번 온라인 전시는 역사부문과 자연부문 , 예술부문등 3개로 분류한 주제별 전시에서, 전쟁기념관과 국립생태원 등 9개 파트너 기관이 협력, 제공한 60여개 분야 5,000여점의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부문은 6·25전쟁의 주요 과정과 사건, 유엔군·참전 국가의 헌신, 전쟁 중 임시수도였던 부산에 대한 이야기 등을 소개하고 있고, 예술부문에서는 영월출신 이불 작가를 비롯해 백남준, 승효상 작가들에게 DMZ라는 공간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를 보관·전시하게 될 ‘국립조선왕조실록기념관(이하 국립실록기념관)’이 오는 10월 개관한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14일 문화재청 관계자들과 오대산 월정사를 방문, 퇴우 정념 주지스님과 만난 자리에서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는 오대산문화축전 기간에 맞춰 리모델링이 완료된 국립실록기념관 전시실을 일반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월정사와 강원일보 등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올해 오대산문화축전이 10월 둘째주(13~15일)에 개최되는 점을 감안하면 오대산사고본 문화재 원본의 환지본처(還至本處·제자리로 돌아감)는 빠르면 올 9월, 늦어도 10월 초께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계획대로 이관작업이 진행되면 1913년과 1922년 일제에 의해 무단으로 약탈된 오대산사고본 실록과 의궤는 각각 110년, 101년만에 평창으로의 귀향(歸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국립실록기념관으로 옮겨지는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1932년과 2006년, 2018년 등 모두 세차례에 걸쳐 일본에서 되돌아 온 75책, 의궤는 간 나오토 일본 총리 도서 반환계획에 따라 2011년에 반환된 82책 등이다. 다만 올해 책정된 국립실록전시관 운영 예산이 당초 계획에 비해 삭감되면서 건물
올해 그래미상 수상자인 비올리스트 네이튼 슈램(Nathan Schram)이 천년고찰 월정사를 찾는다. 네이튼 슈램이 그의 음악 친구인 춘천 출신 바이올리스트 우예주와 함께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NYCC 앙상블’을 이끌고 오는 10월께 월정사를 방문, 오대산사고 앞에서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들의 연주회는 ‘국립조선왕조실록전시관’ 개관 축하 연주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NYCC 앙상블 월정사 방문 계획은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의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감) 소식을 전해들은 NYCC 앙상블 멤버들이 그들의 국내 에이전시인 한테크 측에 연주회 의사를 밝혀오면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춘천시 명예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NYCC 앙상블은 이미 2015년과 2016년 월정사 경내에서 연주회를 선보인 인연이 있고, 특히 네이튼 슈램은 ‘월정사 랩소디(Rhapsody in Woljeongsa)’를 작곡하고 이 곡의 세계 초연무대를 월정사 대법륜전에서 가진 바 있다. 슈램이 월정사 랩소디를 작곡하게 된 것은 월정사 산사 체험과 함께 퇴우 정념 월정사 주지스님과의 ‘차담(茶談)’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정념스님이
소설가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한겨레출판 刊)’은 2003년 출간 당시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문장으로 공감을 얻어내며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장편소설이다. 올해로 출간 20주년을 맞는 이 작품은 당시를 추억하는 사람들이라면, 특히 삼미슈퍼스타즈의 연고지에 살면서 짧은 기간 이 도깨비 같은 팀의 팬으로 살았던 사람이라면 일단 펼친 책장을 덮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삼미슈퍼스타즈는 MBC 청룡,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1982년에 창단했다. 소설은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의 모습들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하고 있다. “MBC 청룡-배팅 자세의 청룡 삼성-야구공을 문 사자(중략)삼미는-아아, 우리의 삼미는...슈퍼맨이었다” 뭐 이런식이다. 이후 뜬금없이 영화 ‘슈퍼맨’ 얘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는가 싶더니 우승팀은 삼미라는 결론을 내 버린다. 바로 이런 글쓰기가 이 소설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다. 필자는 2020년에 출간된 개정 2판을 다시 읽었다. 소설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알겠지만 소설의
강원도 최고(最古)의 문학축제인 ‘강원일보 신춘문예’는 1947년 강원일보 학생신춘문예로 시작해 주옥같은 작품과 함께 지역 문단의 주축들을 대거 발굴해 내며 문청(文靑·문학청년)들이 꿈꾸는 작가 등용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어오고 있다. 2023년에도 5명의 당선자가 탄생했다. 난 18일 ‘2023 강원도문화예술인 신년교례회 및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열린 춘천베어스호텔에서 각 부문 당선자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문학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시기부터 문학에 대한 꿈을 꾸게 됐는가 △한소은 단편소설 당선자=“중학교 국어 시간에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 후편을 쓰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때 낸 소설을 잘 썼다며 다른 반에도 읽어주셨는데, 처음으로 나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백숙현 시 당선자=문학을 꿈꾸었다기 보다는 언제나 책과 함게 살았습니다. 가끔은 시나 시 비슷한 것을 끄적이는 일도 있었지요. 이순이 지나서 부터 본격적으로 꾸준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까지의 제 삶을 한번 마무리 하고, 후반기를 새롭게 펼치고 싶은 의미에서 였습니다.” △이지영 동화 당선자=“중학생 때 친구들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는 게 제일 즐거웠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의 콘텐츠화 작업이 본격화 된다.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 범도민 환수위원회(이하 환수위)’는 올 1분기 내로 환수위의 법인화 작업을 모두 마무리하고 조직의 명칭을 가칭 ‘사단법인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 선양위원회(이하 선양위)’로 변경, 실록과 의궤의 문화·관광콘텐츠화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선다고 15일 밝혔다. 향후 설립되는 선양위는 오대산사고본 실록·의궤의 ‘환지본처(還至本處·제자리로 돌아감)’를 주도적으로 이끈 월정사와 강원일보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 환수위 조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강원도와 평창군은 물론 학계와 축제·이벤트전문가, 문화·IT 전문 인력 등이 참여하는 분과별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활동하게 된다. 특히 오대산사고본 실록·의궤가 다른 사고본들과 달리 유일하게 일제에 의해 약탈됐고, 일부 멸실된 후에도 대대적인 환수운동을 통해 환국했다는 역사적인 사실 그리고 강원도가 중심이 된 또다른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통해 귀향이 결정된 최초의 사례라는 점 등 드라마틱한 서사를 적극 활용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충북 청주시가 ‘직지심체요절’을 활용해 매년 대규모로 개최하고 있는 직지문화재나 전북 전주시가 ‘조
춘천 출신 한국화가 안용선(47·사진)은 그림 그리는 철학자다. 아니 철학하는 한국화가라는 표현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학부와 대학원 석사까지 한국화를 전공한 후, 박사과정에서는 동양철학을 선택한 것도 그렇지만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 심오함도 한 몫하고 있다. 그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谷-姿(곡-자)’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부터다. 대자연, 그 중에서도 계곡을 자신의 주관적인 시선에서 재해석해 풀어내는 이 시리즈를 통해 그의 독특한 화법은 화단에서 큰 주목을 받는다.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 존재한다는 ‘상대적인 개념’을 자신의 작품을 구성하고 표현하는 일종의 방법론으로 찾아낸 것이다. 그러던 그는 돌연 작품의 주제를 ‘천음(天音)’으로 변경한다. 안 작가의 표현대로 풀이하면 천음은 ‘자연의 천연적인 예술요소’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정의하자면 상대성의 합일(合一)을 통해 터득한 회화적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안용선 작업의 서사 속에서 단절이 아닌 연속성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곡-자’와 ‘천음’은 표현양식과 의미상의 차이가 다소 있어보이지만 사실 지향하고 있는 곳은 같다고 볼 수
남자의 두꺼운 손이 소년의 머리를 치던 날, 쇠기둥에 이마가 깊게 패었다. 핏물이 눈물처럼 소년의 얼굴로 흘러내렸다. 피를 닦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가 저쪽 나라로 떠났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믿을 수 있었다. 소년은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낯선 곳에서부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밤새 멈출 것 같지 않았던, 어둠을 뚫고 쏟아지던 눈은 이제 흰 빛으로만 남았다. 이마를 덮은 젖은 머리칼이 바람에 날린다. 바람은 남동쪽에서 불어온다. 지금 그가 가려는 곳, 그는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본다. 어둡고 거대한 산에 가려진 미지의 공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숲의 냄새가 폐로 스며온다. 발목까지 쌓인 눈이 달빛에 드러난다. 바람은 쉬지 않고 틈새를 파고든다. 주머니 속에서 뻣뻣하게 얼어가는 양손을 빼내 천천히 비벼 본다. 감각이 사라진 손끝에 통증이 밀려온다. 그는 하얗게 눈이 덮인 거대한 나무들 사이에 서 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들이 꺾이며 눈 속으로 파묻힌다. 도착할 때만 해도 검게 드러나던 아스팔트 길은 눈에 덮여 사라졌다. 나무들 사이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내들이 초조하게 몸을 뒤척인다. 사내들이 움직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