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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외롭고도 힘들었던 삶 “마지막 길이라도 쓸쓸하지 않길”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 상주 맡은 광주 5개 구 담당자들에게 들어보니
광주 무연고 사망자 올해 30명 가족 해체·경제난에 매년 증가
유골함 5년 보관 후 산에 뿌려 팍팍한 삶에 유족들 인수 포기도
“씁쓸함 속 예의 갖춰 배웅하죠”

 

“마지막 가는 길만이라도 쓸쓸하지 않길 바랍니다.”

가족이 없거나 혹은 장례비 부담으로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한 사망자, 일명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 길을 끝까지 지켜주는 이들이 있다.

광주시 5개 자치구의 복지담당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무연고 사망자의 상주를 맡아 이승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광주시 서구 금호동의 한 아파트에서 50대 남성이 70대 여성 A씨를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광주서부경찰은 피해자의 연고가 없는 것으로 확인하고 친척을 찾고 있다.

A씨와 같은 사망자가 발견되면 경찰은 신원조회를 하고 범죄 혐의점을 조사한다.

망자가 무연고로 확인되면 장례절차는 구청에서 담당한다. ‘장사 등에 관한 법’과 보건복지부 행정지침인 ‘2021년 장사업무 안내’ 등에는 무연고자의 장례 절차, 책임 주체가 관할 지방자치단체라는 점에서다.

광주시 5개 자치구에 따르면 광주지역 무연고 처리 사망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9년 20명이었던 무연고자 사망자가 올해에는 9월 까지만 30명까지 늘어 3년만에 50% 이상 증가하고 있다.

늘어나는 무연고자 사망자 탓에 한달에 한번씩은 상주를 맡고 있다는 게 자치구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광주시 북구 복지정책과 이모 주무관도 매달 낯선 이의 상주를 맡고 있다.

 

이씨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절차를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매달 겪는 일이지만 참 어렵다”면서 “저 세상으로 떠나는 분에게 마지막이나마 예의를 갖춰 배웅해 드리려고 애쓰고 있다”고 어렵게 입을 뗐다.

그는 지난달에도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렀다. 광주 영락공원 화장장 대기실에서 소주와 과자 몇 봉지를 놓고 묵묵히 지켜봤다는 것이다.

이처럼 매달 상주를 하는 자치구 담당자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하기도 한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을 다녀오면 며칠동안 마음이 벌렁벌렁하며 우울감이 2~3주 정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들어온 지 얼마 안된 젊은 직원들은 장례식장에 한번씩 다녀오면 굉장히 힘들어한다는 것이 이들의 호소다. 한 담당자는 “몇 년 전 이 업무를 맡아 유골함을 처음 들었을 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유골함의 따뜻한 느낌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 유행 탓에 최근 장례식은 거의 치르지 않고 있다. 광주 영락공원에서 화장한 뒤, 유골함은 무연고 안치실에 따로 보관된다. 구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무연고 사망자 1인당 장례비용은 80만원 선에서 진행된다.

이 비용 안에서 최대한 좋은 장례를 치러 주려 애쓴다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자치구 담당자들은 최근에는 연고자가 없는 경우보다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아 안타깝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법적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연고자로 인정되는 가족은 부모, 자식, 형제·자매 뿐이다. 이들이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경우, 관할 경찰 혹은 구청은 ‘시신처리위임서’를 받고 장례를 치른다.

남구의 김모 주무관도 최근 망자의 4남매에게 연락했지만 모두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고 한다.

김 주무관은 “망자의 화장을 하며 연고자들에게 한 번 더 연락해 ‘마지막 가는 길인데 오시는 것이 어떻냐’고 말했지만,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다”며 “오랫동안 떨어져 살거나 연락을 하지 않는 등 가족관계가 해체되면서 이런 일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1일 무연고자 장례를 치른 서구의 성모 주무관도 “이번 무연고자의 경우 어머니와 4형제가 있었지만 각자 생계가 어렵거나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국 구청에서 무연고자로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변사사건을 담당하는 광주북부경찰 관계자는 “살기가 팍팍하고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는 탓에 최근 형제자매 뿐 아니라 부모 장례도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면서 “무연고 처리를 위한 서류 작성을 위해 경찰서 방문을 요청해도 연고자들은 ‘내가 왜 가야 하느냐’고 말하기 일쑤지만, ‘망자의 집에 전세금이 남아있다’ 등의 말을 하면 그제서야 경찰서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어 씁쓸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광주시 영락공원 무연고자 유골함에는 약 1000기의 무연고자가 안치돼 있다. 5년이 지나도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이들은 영락공원의 산에 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