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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개발 바람’에 뭉텅뭉텅 잘려 나가는 보수동 책방골목

 

전국에서 유일한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이 ‘개발 광풍’에 속수무책으로 스러지고 있다. 신축 건물 착공으로 대형 책방 3곳(부산일보 10월 18일 자 2면 보도)이 문을 닫게 되면서 책방골목 전체가 존폐 기로에 놓였다. 이 3곳이 보유한 서적은 보수동 책방 전체 보유 서적의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3년간 재개발로 자리를 뺏기거나 임차료가 올라 폐점했거나 예정인 책방이 12곳(지도)에 달한다. 책방골목 일대 상업 개발로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이 예견된 지 오래지만 ‘책방골목이 미래 유산’이라 홍보하던 부산시와 중구청은 사유지라며 팔짱만 끼고 있다.

 

지난해 건물 신축 시작하며 8곳 폐점

최근 통매각된 건물 서점 3곳 존폐 기로

3곳 보유 서적량 골목 전체의 절반 달해

부산시·중구청 “사유지라…” 팔짱만

‘미래유산’ 지정했지만 보존은 소유자 몫

지구단위계획 수립 등 대응방안 찾아야

 

 

 

■도미노식으로 매각

 

28일 중구청과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 등에 따르면 현재 책방골목에 있는 서점은 31곳이다. 그런데 최근 책방골목 내 건물 2곳이 ‘통매각’됐다. 매각된 건물에 책방 3곳(지도 ②구역)이 입점해 있었다. 주변 책방 중 규모가 제일 크고 보유 서적이 가장 많은 곳이다. 폐점이 확정되면 책방골목 전체 서적의 절반이 사라진다.

 

민간 상업 개발에 따른 책발 건물 ‘통매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책방골목 입구에 상업건물 신축 공사가 시작되며 사라진 책방만 8곳(지도 ① 구역)에 달한다.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개발이 된 것이다.

 

책방골목 상가가 속속 매각되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인 책방골목은 점차 제 모습을 잃어간다. 책방 상인들은 현재 인근에서 공사 중인 18층 규모의 상업 건물이 완공되면 인근 상가도 줄줄이 팔릴 것으로 본다. 상업용 건물이 들어설 경우 주변 인프라도 개선되는 만큼 책방골목 재개발에도 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책방을 운영 중인 A 씨는 “오피스텔이 들어서면 분명 주차장과 차가 드나들 수 있는 길이 필요할 테니 개발업자들이 대로변 서점들을 대거 사들일 것”이라며 “지킬 힘이 없는 사람들이니 돈만 주면 다 뜯겨나가지 않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이 일대에는 부동산 업자들이 책방 건물주를 상대로 웃돈까지 얹어 가며 매입에 혈안이다. 대다수 책방이 장기간의 불황으로 임대료를 동결한 경우가 많아 건물주들도 매각에 적극적이라는 게 책방 상인들의 주장이다.

 

보수동책방골목상인회에 따르면 최근 매각된 책방 건물 2곳 중 1곳은 1억 원으로 거래됐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소 대표는 “일대 건물의 평균 매입가는 6000만~7000만 원”이라며 “개발 소문이 나 가격이 많이 뛰었다”고 설명했다.

 

 

■이름뿐인 ‘미래유산’

 

부산시와 중구청의 무관심까지 더해지며 책방 골목의 쇠락은 가속도가 붙었다. 2019년만 해도 부산시는 보수동 책방골목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그러나 그 근거인 ‘부산시 미래유산 보존 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에는 부산시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 조항은 없다. ‘소유자 등은 미래유산을 자발적으로 보존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 없는 문구만 있다. 유산으로서 부산시가 가치는 인정하겠지만, 보존 관리에 대한 책임은 건물주가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다.

 

부산시 박은자 문화유산과장은 “당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시 차원에서 유산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일 뿐이라, 재정적 지원을 할 법적 근거가 사실상 없다”며 “사유재산을 제한하는 부분인 만큼 문화재 지정 등도 어디까지나 소유자 의지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중구청도 뾰족한 대책은 없다는 입장이다. 중구청 정애경 문화관광과장도 “조례나 법령으로 개발을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며 “개발업자와 접촉을 해서 1층에 책방을 위한 우선 세입을 요청하는 등 책방 보존을 위한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보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부산시 등 광역지자체가 도심개발과 문화재 보존의 딜레마에서 공공이 개입해 중재자로 나선 경우도 있다. 서울시는 종로구 재개발 사업지였던 공평 1·2·4 지구에서 근대 건물터와 길이 발견되자 시행사에 ‘공평동 룰’을 제시한 사례가 있다. 발굴된 역사 자원을 전면 보존하는 전시관을 만드는 조건으로 용적률을 높여 준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는 등 난개발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신병윤 동의대학교 건축과 교수는 “사전에 지구단위계획 등으로 묶어 놨다면 재개발 범위나 용도 변경 등을 제한할 수 있는데 부산시가 한발 늦은 부분이 있다”며 “프랜차이즈 등이 범람하는 걸 막기 위해 지구단위계획으로 미리 못을 박아 둔 감천문화마을처럼 지금이라도 골목에 남은 책방의 문화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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