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은 겨울철에 청어·꽁치가 많이 나 이를 보관하는 말리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과메기다. 하지만 청어와 꽁치를 거치면서 꾸준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 남은 것은 포항 과메기가 유일하다.
◆MB 시절 전국적 이름 알려
포항 과메기가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때는 지난 2007년 1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대 대선에서 당선된 후 정권인수위 시절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008년 1월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가 출입기자들을 위해 '과메기 파티'를 열었다.
포항에서 공수된 과메기 300인분 파티는 다음날 언론들에 일제히 실렸다. 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 목포 홍어가 인기를 끌었고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인수위 시절에도 홍어 파티가 있었다는 기사들 처럼….
그해 12월에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포항 과메기에 대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후쿠오카시 에서 열린 상가 이벤트 행사에 해외 연수 중이던 포항시 직원들이 과메기를 손님들에게 대접한 것이다.
◆원래 맛은 역시 통마리 과메기
1980년대까지는 과메기는 포항 사람들, 그리고 애호가들만의 것이었다. 과메기라고 하면 당시엔 '통마리' 뿐이었다. 통마리는 요즘 대세인 쪼개서 말린 '배지기'와는 달리 꽁치 그대로 새끼줄에 묶어 처마 밑이나 응달에 그대로 걸어둔다.
'꾸덕꾸덕' 해지고 너무 '추지지' 않으면 먹을 때가 된 것이다. 지느러미·머리를 자르고 반으로 갈라 젓가락에 돌돌 말아 초장에 쿡 찍어 먹었다.
옛날에는 경주에서도 통마리를 즐겼던 모양이다.
1967년 신동아에 실린 김동리 선생의 식도락에 대한 글이다.
"내 고향은 慶州이다. 경주에는 관메기(과메기)라는 것이 있었다. 청어 온 마리를 배도 따지 않고 소금도 치지 않고 그냥 얼말린 것(冷結乾燥)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중략)그 맛은 모든 표현을 다 갖다 대어 보았자 다 쓸데없는 소리이다."
포항의 60대 이상이면 김동리 선생이 전하는 표현할 수 없는 통마리의 추억에 공감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계절, 퇴근 무렵 포항의 잛아지는 해는 과메기 애호가들의 마음을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삼삼오오 옛 포항시청 인근 옛 KBS포항방송국 인근에 있던 '워커힐'과 포항시 북구 죽도시장 인근 삼성생명 건물 뒤편 '해구식당', 그리고 포항시 북구 신흥동 옛 포항우체국(현 북포항우체국) 건너편 골목의 '갈비집' 등으로 모였다.
직장 동료 친구 선후배와 만난 그때 청춘들은 드럼통 테이블에 둘러 앉아 직접 가위를 들고 배를 따고 껍질을 벗겼기고는 얼얼한 30도(현재 16.9도) 쓴 소주잔을 "캬~" 한마디에 털어 넣고 쭉쭉 찢어 먹었다.
◆'黃軍'들의 영양식
포스코가 포철(포항제철·2002년 사명 변경)이던 시절 노란색 제복에 목이 긴 안전화(군화오 흡사)를 신었던 황군(黃軍·제철보국의 사명감에 포철맨들은 스스로를 자부심을 높여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들에게도 과메기는 잊을 수 없는 겨울 별미였다.
특히 1982년 1월 자정 통행금지가 사라진 후 현장 근로직 3교대 근무자들 중 11시 퇴근자들의 과메기 사랑이 대단했다.
당시 포철 건설 과정에서 이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곳이 포철에서 형산강 다리를 넘자마자 오른쪽에 형성된 포항시 남구 해도동 일대 이른바 블록 주택가였다. 인근에 시장과 크고 작은 음식점 술집들이 많는데 겨울 특미를 따라 그곳으로 퇴근했다.
박승대 포항문화원장은 "당시엔 삼겹살도 쉽게 굽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난 다음 동료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산업역군들에게 과메기는 더없이 중요한 겨울철 영양 공급원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고 회고했다.
과메기에 단단히 맛을 들인 사람들에게는 통과메기가 겨울철 나들이 땐 더 없이 간편한 휴대 음식이기도 했다.
등산을 할 때면 눈 밑에 과메기를 묻어 놓고 하산 때 다시 파내 맛 본 이야기 하는 이도 있고 겨울철 무주리조트 베란다에 널어 놨다 맛 본 과메기 추억도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청어가 등장한다. 청어를 말려 군사들의 원기를 보충하고 내다 팔아 군량미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것이 지금의 청어 과메기인 셈이다.
전쟁기념관 자료는 청어 과메기가 이순신 장군의 비밀병기였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70, 80년대 한국 성장을 이끌었던 포항의 산업역군들의 힘찬 발걸음에도 과메기는 함께 했다.
김대호 기자 dhkim@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