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안상기 전 동부건설 부사장 별세 ▲안상기(전 동부건설 부사장·68세)씨 별세,영수(회사원)·창수(캐리어에어컨 김포총판대표)씨 부친상=15일 오전11시25분 별세.△발인=18일 오전6시20분 △장지=정선군 임계면 선영 △빈소=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지상2층) △연락처=010-5147-1088 [부고]최동규 강릉농악 예능보유자 별세 최동규 국가무형무화재 제11-4호 강릉농악 명예보유자가 16일 오전10시30분 별세했다. 향년 80세. 고인은 강릉출신으로 1996년 강릉농악 전수조교가 된 뒤 지난 2019년 명예보유자가 돼 강릉농악 발전에 헌신했다.유족은 부인 윤숙자씨와 최종빈·종태·미옥·미영씨 등이 있다. △발인=18일 오전 8시3 △장지=강릉 청솔공원 △빈소=강릉동인병원 장례식장 1호실 △연락처=010-6388-5558 강릉=조상원기자 jsw0724@kwnews.co.kr
【강릉】속보=천연기념물 제484호 오죽헌 율곡매가 고사(본보 지난 24일자 12면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문화재청이 현장에서 율곡매의 상태를 살펴보고 천연기념물 지정 해제를 예고해 파장이 일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26일 오죽헌을 찾아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된 율곡매의 상태를 살펴보고, 현재 가지 두 개 정도만 살아 있고 나머지 90%가량이 고사한 상태임을 확인, 이와 같이 지정 해제를 예고했다. 문화재청은 율곡매를 천연기념물에서 해제하는 시기는 내년 봄 이후로 보고,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 되면 보존 처리해 국민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율곡매는 현재 자리에 계속 두면 썩어 없어질 수 있어 경화제 처리를 해 실내에 전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문화재청은 율곡매의 후계목을 육성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율곡매의 씨가 떨어져 자란 것으로 추정되는 율곡매 인근 매화나무의 DNA를 분석해 후계목 여부를 확인하거나 현재 살아남은 율곡매 가지를 접목하는 방안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올해 율곡매의 씨앗을 발아시켜 후계목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율곡매 잔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생명을 되살리기는 어려울 것”
주인공들 만난 '방사제' 명소로 떠올라 인근에 BTS버스정류장…전국서 발길 수산시장·카페·야시장 즐길거리 풍성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2016년 12월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이하 도깨비)'가 첫 전파를 탄 뒤 주문진바닷가 방사제에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때는 12월이었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드라마에서 처연하도록 외로운 주인공 지은탁(김고은)이 생일을 맞아 혼자 생일 케이크에 있는 초를 부는 순간 도깨비 김신(공유)이 나타났다. 이 둘이 처음 만난 주문진 바닷가 방사제는 그렇게 연인들이, 가족들이, 친구들이 함께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됐다. 외로운 지은탁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메밀꽃을 내미는 애잔한 바닷가 랑데부로 로맨틱한 명장면이 연출됐고 이후 메밀꽃과 우산, 빨간 목도리를 빌려주는 신종 아르바이트가 생겨날 정도로 주문진 방사제는 떠오르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사실 이곳은 낚시 명소였다. 주문진 큰 다리 건너 방사제와 등대가 있어 바다로 더 나아갈 수 있고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라 고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적한 이곳은 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명륜당 정착 과도기 형태 남아 동무·서무·전랑 보물 2089호 조선시대 위패보관 양식 보전 강릉향교 명륜당과 동무·서무·전랑이 지난달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강릉향교 명륜당(明倫堂)'을 보물 제2088호로, '강릉향교 동무·서무·전랑'은 보물 제2089호로 지정했다. 강릉향교 명륜당은 전국 향교 명륜당 중 가장 큰 규모의 누각형 건물이다. 특히 다른 일반 향교와 달리 문 위에 집을 지은 누각 문루형으로, 이는 조선시대 초기 문루에서 명륜당으로 정착되는 과도기를 담아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동무·서무·전랑은 보물 214호 대성전을 둘러싼 부속건물로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해 안자와 자사·증자·맹자를 모시고 있으며, 동·서무에는 중국과 한국의 유학자를 모시고 있다. 현재 다른 지역의 향교는 동·서무에 있는 중국과 한국 유학자의 위패를 대성전에 함께 모시거나 철거했는데, 강릉향교만이 유일하게 조선시대의 양식 그대로 모시고 있다. 또 지방 향교로는 규모가 가장 크고 그 규모가 웅장한 편이며 한국전쟁 때에도 건축물이 불타지 않아 옛 규모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 가치를 더한다. 강릉향교는 고려 충선왕 5년(1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 작은 골목길을 지나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0호 '대동법 시행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이 비는 대동법 시행에 대한 김육(1580~1658년)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 문제는 늘 백성을 고통스럽게 했다. 있는 사람일수록 더 안 내려고 했고 없는 사람일수록 낼 수 없는 세금 문제로 고통스러워했다. 조선시대 공납제도는 재산 규모와 상관없이 부과하던 세금이었는데 각 지방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을 집집마다 거둬들이는 것으로 백성들의 부담이 컸다. 조선 건국 초에는 각 지방의 특산물과 호구조사가 잘 이뤄져 있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중종반정 등을 거치며 훈구세력이 대상인과 결탁하면서 공납은 가진 자들의 배를 채워주는 수단이 됐다. 상인들이 백성이 납부할 공물을 대신 바치고, 수수료와 이자를 보태 원금의 몇 배로 백성들에게 받아내는 방납이 전국적으로 이뤄지면서 그 피해가 커졌다. 명종 때 '임꺽정의 난'이 발생한 것도 관리들이 가혹하게 백성들을 수탈했기 때문이며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에 1569년 율곡이 쌀로 공물을 납부하자는 대공수
경상북도 성주읍 경산리 286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성주 성산관은 조선시대 성주목의 목사가 공적인 일을 처리하던 관아 건물이다. 그런데 이곳이 463년 전인 1557년 9월 율곡 이이가 결혼한 장소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에게 장가를 든 율곡은 이후 동생 이우도 성주와의 인연을 통해 장가를 보내는 등 인연이 더욱 깊어진다. 1551년 음력 5월17일 어머니 신사임당이 별세한 후 율곡은 파주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3년 여묘살이를 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율곡은 이듬해 1554년 3월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와 연을 맺는다. 신사임당은 죽으면서 남편에게 재혼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소용없었다. 이원수는 부인이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율곡의 큰형인 이선과 동갑내기 권씨를 후처로 들였다. 이 때문에 큰형 이선은 내내 새어머니와 다퉜고 율곡 선생 또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아버지에 대한 반항 또한 커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삶과 죽음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던 율곡은 결국 그 답을 찾기 위해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금강산으로 사라진다. 1555년 봄,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