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엎드린 마을 들머리 중늙은이 하나 소를 몰고 지나간다 물방개와 가시연꽃 그림자를 밟으며 비닐 돗자리를 든 아이들이 통통거리는 오후다 발길마다 폴폴 이는 흙먼지에 아지랑이가 어리고 길섶 풀더미엔 이름 모를 꽃들이 얼굴을 열었다 몇 굽이 들길을 돌아 흐르는 봄기운에 만 년 뻘의 깊이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듯 부산을 떠는 벌과 나비가 시간을 섬기고 있다. 흙 좋고 넓은 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철석같은 저 원시의 등짝은 아직도 진화를 멈추지 않았는데 물 좋고 산 좋으니 마음 급할 게 없다 먹이를 입에 문 새 한 마리 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솟구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호들갑을 떠는 곳 신(神)들은 모두 소풍을 가버렸는지 불과 얼음을 꿈꾸고 있는 소벌*에서 지은 죄보다 덮어쓴 게 더 많은 나이 괜히 내 마음이 촌스럽다 * 소벌 : 우포의 우리말. 지금도 나이 든 창녕 사람들은 우포를 소벌이라 부른다. ☞ 우포늪은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 대지면 등 4개면에 걸쳐있는 총면적 250만5000㎡로 광활한 늪지이다. 우포늪에는 800여종의 식물류, 209종의 조류, 28종의 어류, 180종의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 17종의 포유류 등 수많은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
갈 수도 있었던 길 - 산청 대원사에서 방장산 계곡 물소리를 업고 걸었다 굽어진 돌계단 입구를 들어서니 어쩌자고 절 마당에 파쇄석을 깔았을까 어지러운 생각 마냥 적요 깨는 발소리 죄 짓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대웅전 뒤편 언덕 홀로 앉은 저 비구니 함께 출가 맹세했던 그날의 단발머리, 아닌 줄 알지만 힐끔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서둘러 합장하고 돌아서는데 산그늘이 좋다던 성문 스님 생각에 자꾸만 뒤가 신경 쓰였다 3월의 엷은 해가 좌선한 장독대 곁 아직은 빈 가지 사이 비껴가는 새를 본다 지금은 어느 절에서 마음 닦고 계시나 내 안의 잡념은 시시때때 일렁이는데 천광전 기둥에 매달린 목탁 서성이는 내 눈길을, 바람이 먼저 알고 두드리고 가는 구나 ☞ 지리산을 다른 말로 방장산, 또는 두류산이라고도 한다. 성리학자 남명 조식 선생은 자신을 ‘방장산의 노인’이라고 칭하지 않았던가. 산청 대원사 일주문 현판에는 ‘방장산 대원사’라고 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절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면 계곡의 물소리가 바람과 함께 온몸을 휘감는다. 대원사는 숱한 세월과 사건 뒤 1955년 ‘지리산 호랑이’라 불린 당대 여걸 만허당 법일스님이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도량으로 만들었
202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5개 부문 당선작이 확정됐습니다. ▲소설 ‘하루에 두 시간만’ 김단비 (서울시 성북구) ▲시 ‘냄비의 귀’ 장이소 (부산시 연제구) ▲시조 ‘숫돌을 읽다’ 허정진 (창원시 의창구) ▲수필 ‘고주박이’ 김순경 (부산시 동래구) ▲동화 ‘내 이름은 구름이’ 남경희 (창원시 성산구) ※심사위원 △소설= 김홍섭(소설가), 김은정(문학평론가) △시= 성선경(시인), 김경복(문학평론가) △시조= 김연동(시조시인), 서일옥(시조시인)△수필= 양미경(수필가), 강현순(수필가) △동화= 배익천(아동문학가), 김문주(아동문학가) ※시상식은 코로나19로 인해 개최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