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우리나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국내 재계 총수들의 존재감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부각하는 장이 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등 주요 그룹 리더들이 첨단 기술과 공급망, 방산·조선 협력 등 글로벌 경제 아젠다를 중심으로 활발한 행보를 펼치며 한국 기업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젊은 재계 리더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전통 제조업을 고도화하고 인공지능(AI)·친환경·우주·방산 등 미래 먹거리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온 차세대 경영자들은 국제 무대에서 메시지를 내놓고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며 세대교체 흐름을 분명히 했다.
정의선 회장과 이재용 회장은 APEC 기간 중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를 만나며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두 사람은 최근 ‘깐부치킨 회동’으로 불린 모임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만나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최태원 회장도 글로벌 기업인과의 접촉면을 넓히며 반도체·통신·에너지 분야 협력 기반을 다지는 데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역시 엔비디아와의 협업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장을 도입해 ‘AI 팩토리’를 만들고, 제조 AI 플랫폼 옴니버스를 활용해 ‘제조 AI 클라우드’를 구축한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APEC의 공식 기업 자문 기구인 APEC 기업자문위원회(ABAC)를 이끈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의 광폭 행보도 눈길을 끈다.
그동안 ABAC를 이끌어 온 조 부회장은 행사 준비 단계부터 각국 정부와 기업을 직접 접촉해 참석을 독려하고 기업 리더들의 논의를 조직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난 5월 ‘제7차 APEC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기업 의견을 제시한 데 이어 7월에는 베트남 주석에게 정상회담 참석 초청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9월에는 ‘경북 APEC 나이트’ 등 국내외 일정을 소화하며 민간 외교 무대를 조율했다.
업계에선 조 부회장의 행보가 향후 HS효성의 글로벌 사업 확장과도 연계될 것으로 보고 있다. 친환경 섬유·수소·에너지 솔루션 등 그룹 신사업과의 시너지가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이번 APEC 퓨처테크 포럼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올라 한미 조선 협력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미 해군 차세대 함대 건조와 조선소 재건을 포함한 미국의 새로운 해양 정책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강조하며 한미 조선 협력 ‘마스가’(MASGA) 프레임을 내세웠다.
김동관 한화 부회장은 APEC 정상회의를 활용한 해외 순방 일정을 이어가며 공격적인 글로벌 세일즈에 나섰다. 지난 10월 APEC을 앞두고는 미국 마러라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글로벌 기업들과 회동했고 이후 폴란드·루마니아 등 유럽 현장을 잇달아 방문해 방산·우주·에너지 분야 협력 확대 등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